We are one! / A new world
30화 네버 엔딩 스토리
-우리는 하나-
등장인물: 루미나, 에드, 카일라, 소피아, 테오, 이연
한참을 기다려도 에드가 돌아오지 않자, 카일라는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좋아요. 그이는 늘 길을 잃어버려서..."
“에드는 길을 잃은 게 아니에요. 꿈의 숲은 원래 길을 잃기 쉬운 구조거든요.”
“그래요?”
"다들 길 잃고 헤매는 거죠. 카일라처럼 처음부터 운 좋게 제자리를 찾은 경우는 드물고요."
“호호호, 맞아요. 내가 운이 좀 좋은 편이죠.”
“에드가 너무 늦어지는데요? 카일라, 혼자 있을 수 있겠어요?”
“버스에? 이 유리창도 없는 버스예요? 이 한밤중에?”
“에드랑 테오, 찾으러 가야죠. 혹시나 위험한 사람들과 마주치게 될까 봐서요.”
“그 어둠의 그림자들이요?”
“예... 뭐... 검은 연기... 네, 그런 사람들요.”
“그 사람들은 대체 왜 그런데요! 나 정말 피곤한데...”
“그러니까 카일라, 여기 좀 있어요. 내가 얼른 다녀올게요. 혹시라도 에드를 보게 되면, 카일라에게 당장 가라고 꼭 이야기할 테니까요. 알았죠?”
“알았어요. 잠깐! 그러다가 어둠의 그림자가 나타나면요?”
“그럼, 일단 숨어요! 어디든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요.”
“자... 잠깐만요! 저도! 같이 갈래요. 이제 피곤하지 않아요.”
“그럼, 그럴래요?”
“네, 그냥 같이 가요.”
카일라는 혼자 있을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졌는지, 루미나의 팔짱을 꼭 끼고 함께 걷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성이 보이는 맞은편 숲 속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이미 고요했다. 아이들을 찾던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진 후였다.
어두운 숲길을 걷던 그들의 앞으로 낡고 오래된 콘크리트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네모 반듯한 형태의 건물은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었고, 깨진 창문은 일부 판자로 덮인 상태였다.
그곳은 실험실로 쓰였던 듯 차갑고 무거운 기운이 감돌고 있었고, 숲 속 공기와 뒤 섞이며 음산하고 기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건물은 비밀 실험이 행해졌던 곳처럼 차갑고 으스스했다. 루미나는 삐걱대는 철문의 손잡이를 잡고 컴컴한 어둠뿐인 실험실 안으로 발을 들였다.
끼익—
문이 열리자마자 마주친 사람은 다름 아닌 에드였다.
에드는 갑자기 열리는 문에 소스라치게 놀랐고, 그건 루미나와 카일라도 마찬가지였다.
“아우씨!!! 깜짝이야!”
“에드! 이런 곳에서 뭐 하고 있었어?”
“다들 조용히! 문 닫고 얼른 들어와요.”
에드는 루미나와 카일라를 실험실의 건물 안으로 들여보내고 급히 문을 닫았다.
“루미나를 찾던 사람들이 이곳까지 찾아왔었어. 나까지 의심받을까 봐, 얼른 숨어 들어왔지. 그 사람들이 이 건물은 둘러볼 생각도 안 하고 그냥 돌아나가더라고 “
"딱 봐도 흉흉해 보이는 건물인데, 누가 일부러 들어오려고 하겠어? 나 같아도 이런 곳은 그냥 지나쳤을 거야."
“우리가 이 숲에 들어왔을 때는 아무리 소리 없이 조용했어요. 그들이 다른 쪽으로 간 건 아닐까요?”
"그래도 좀 더 있다가 나가요. 그들은 위험해 보이지 않았지만, 뭔가 중요한 걸 잃어버린 사람들처럼 행동했어요. 그런 눈빛은 살면서 처음 봤지만, 그렇게 긍정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고..."
“아마 그랬을 거예요. 아이들을 필요로 한 건 관리자 부부뿐만이 아니었으니까요.”
달그락—
툭—
“어머! 에드!”
어디선가 물건들의 마찰음과 함께 인기척이 났고, 놀란 카일라는 반사적으로 에드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어머!"
루미나는 소리가 난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한 실험실 안 구석에서 작은 몸을 웅크리고 있는 테오를 발견했다. 테오는 계속해서 몸을 숨기려고만 했고, 루미나는 그런 아이에게 신중히 다가가 차분히 말을 건넸다.
“테오, 안녕? 난 루미나라고 해. 널 찾으러 왔어.”
“…”
“이 어두운 곳 말고, 우리 밖으로 나가자. 이제 여기 있는 어른들이 널 지켜줄게.”
아이는 머뭇거리며 다가 오기를 망설이다, 조용히 기다려 주는 루미나의 곁으로 한 걸음씩 다가가기 시작했다. 루미나는 그렇게 자신의 곁으로 다가온 테오를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이제 빨리 나가요.”
에드는 컴컴한 실험실 안이 여전히 불안하듯 그녀들을 재촉하며 출구를 향해 앞장섰다.
그렇게 네 사람은 안전하게 실험실을 빠져나왔다.
순간, 긴장이 풀린 카일라가 그들을 와락 껴안으며 말했다.
“다들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이제 얼른 이곳에서 벗어나자!”
그들은 달빛에 의지해 어두운 숲을 헤치고 감옥 성을 빠져나왔고, 에드가 운전하는 달팽이 버스를 타고 숲의 길을 따라 오랫동안 달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평온함이 루미나의 몸을 나른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창틀에 기대어 떠오르는 태양을 말없이 바라보다, 조용히 잠에 들었다.
한잠을 달리자, 멀리서 히치하이킹을 하고 있는 한 여성이 에드의 눈에 띄었다.
달팽이 버스는 서서히 여성을 향해 달렸고, 에드는 그녀의 얼굴을 확인하자, 화들짝 놀란 듯 카일라의 시야 앞으로 급히 손짓했다.
“어! 저! 사람! 그때 그...”
“안녕하세요! 그때 그 부부시네요. 꿈의 숲에서 함께 출발했던!”
“얼른 타요! 외부 세계로 나가려던 길이죠? “
“네! 맞아요. 여기, 꿈의 구슬을 찾았거든요.”
이연은 주머니 속 깊이 넣어둔 그녀만의 무지갯빛 구슬을 꺼내 보였다.
에드가 이연의 구슬에 마음을 빼앗긴 동안, 버스 안을 둘러보던 그녀는 버스 뒷좌석에 잠든 루미나를 발견했다. 그녀는 살아 돌아온 루미나의 모습에 놀라움과 반가움이 뒤섞인 듯 다급히 그녀에게로 향했다.
이연은 잠든 루미나를 세차게 흔들며 외쳤다.
“바닷가에서! 살아 있었어요?!”
루미나는 잠결에 들려온 이연의 목소리와 흐릿하게 보이는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꿈속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 그녀는 이연의 얼굴을 가만히 쓰다듬으며 말했다.
“이연, 그때 그 바닷가에서... 은정과 심연에 빠진 줄 알았어요. 이건, 죄책감이 만든 꿈일까요?”
루미나는 비몽사몽, 마치 물안개 속을 헤매는 듯한 목소리로 작게 웅얼거렸다. 그녀의 속삭임을 가만히 듣고 있던 이연은 잠시 주저하다 어깨를 다독이듯 쓰다듬으며 말했다.
“은정은... 결국... 찾지 못했어요.”
“심연의 바닷속으로 영원히 잠긴 것이겠죠.”
“네, 저 혼자만 이렇게 살아 돌아왔네요...”
“이연 혼자는 아니죠. 나도 여기 이렇게...”
“은정이는... 심연의 바다에 영원히 잠들었을까요?”
“글쎄요. 꿈의 숲은 항상 예측할 수 없게 흘러가니까요. 혹시 모르죠. 또 다른 바닷가로 쓸려갔을지, 이연과 내가 각자 다른 곳으로 흩어졌던 것처럼...”
그녀들의 대화에 카일라가 불쑥 끼어들었다.
“셋이 하도 붙어 다니니까, 꿈을 찾긴 글렀구나~ 하고 꿈의 숲 설계자가 일부러 흩어 놓은 건 아닐까요? 호호호.”
“카일라, 지금은 웃을 때가 아닌 것 같아요. 쉿, 조용히.”
에드는 이연과 루미나의 눈치를 살피며 나지막이 말했다.
“호호호.”
루미나는 통찰력 있는 그녀의 한마디에 놀라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머, 내가 또 실수를 했어요? 요놈의 입방정…”
카일라는 멋쩍게 웃으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오! 아니에요. 카일라, 저도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요. 바닷가에서 심연으로 가라앉아 있을 두 사람을 떠올리면서도 작은 생명의 움직임이 어디선가 또렷이 느껴졌거든요.”
“어머! 에드! 내가 통찰력이 있었대! 어머머,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네. 안 그래도 요즘 뭔가 좀 달라진 기분이 들긴 했어요. 호호호.”
“꿈의 숲에서 모두가 무언가를 배웠겠죠. 알고 보면, 카일라는 애초에 더 배울 게 없었는지도 모르고요.”
“어머, 아니에요. 고쳐야 할 점도 많고, 아직 배워야 할 것도 많아요. 그래도 저는 제가 좋아요. 가끔 눈치 없단 소리, 푼수 같단 말 들어도... 그냥 이대로, 내 모습 그대로 사는 게 좋아요!”
신나게 말을 마친 카일라는 에드가 운전하는 버스 옆자리에 앉아, 그대로 잠에 들었다.
루미나와 이연은 잠시 서로를 바라본 뒤, 각자의 자리에 앉아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오전의 선선한 바람과 고요한 평온함이 버스 안을 감돌고 있을 때, 에드는 멀리서 소피아가 운전하던 달팽이 버스를 발견했다.
“숙녀 여러분, 저기 보이는 저 달팽이 버스에 대해 아는 사람 있어요?”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카일라는 입가에 흘러내린 침을 닦아내며, 잠꼬대를 하듯 말했다.
“어디~ 달팽이 소스??”
달팽이 버스라는 말에 루미나는 번쩍 눈을 떴다.
“에드, 달팽이 버스요? 어디요?”
“저기, 저~ 앞쪽, 오른쪽 옆 큰 길가에...”
“저 버스, 소피아가 아이들을 태우고 간 버스예요.”
“그래요? 그럼, 얼른 가보죠.”
루미나와 에드, 카일라 부부는 곧장 소피아의 달팽이 버스가 정차되어 있던 오솔길을 따라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에드, 여긴 또 축축하네? 다들 왜 이런 곳만 찾아다니는 거야?”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어쩌다 보니 이런 길을 걷게 된 거겠지. 카일라.”
"난 이렇게 꿉꿉한 숲 속은 싫엉~ 에드."
"알지, 알지."
"소피아가 아이들의 엄마를 찾았을지도 몰라요. 에드."
"그럼, 정말 다행이죠."
그들은 안개가 자욱한 숲길을 걷다 멀리 보이는 작은 오두막을 발견했다.
오두막에 근처로 다가간 그들의 눈에 소피아의 모습이 들어왔다. 그녀는 상심한 듯 축 쳐진 모습으로 부러지듯 놓인 통나무 위에 걸터앉아 멍하니 바닥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린 테오는 엄마의 불안한 기운에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낀 듯 머리만 살짝 내밀고는 루미나의 뒤로 재빠르게 숨었다.
"엄마? 무서워..."
그때, 멀리서 걸어오는 테오의 모습을 발견한 소피아는 눈물을 흘리며 그들에게로 달려왔다. 테오는 그런 소피아의 모습에 오히려 놀란 듯 루미나의 다리를 더욱 세게 붙들었다.
테오의 모습을 본 소피아는 충격을 휩싸인 듯 멈춰 서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자신을 밀어내는 아이에게서 혼란과 답답함이 뒤섞인 감정을 느낀듯했다.
에드는 저항하는 테오를 소피아 앞으로 억지로 끌어내며 말했다.
“테오야, 엄마잖아. 소피아가 널 얼마나 애타게 찾아다녔는지 알아?”
테오의 눈빛은 금세 경계심으로 가득 차 올랐고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루미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곧 울음이 터져 나올듯한 테오를 자신의 품에 꼭 끌어안았다.
“내가 널 지켜주겠다고 약속했지? 아가야, 걱정 마.”
그 모습을 본 소피아는 힘이 빠진 듯 천천히 걸어가 통나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소피아..."
에드와 카일라는 그제야 상황을 눈치를 챈 듯 소피아를 향한 안쓰러운 감정을 드러냈다.
연기가 피어오르던 오두막에는 7명의 아이들과 부모들이 재회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7명의 부모가 어떻게 이 오두막에 다 같이 모여있을 수가 있지? 에드?"
"그러게 말이야. 마치 운명으로 엮인 사람들처럼..."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에드는 무엇인가 깨달은 듯 모두를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자, 모두들! 이 버스는 꿈의 숲 정문으로 갑니다! 아이들의 손을 꼭 붙들고, 차례대로 버스에 탑승하세요!”
오두막을 나서던 부모들은 에드 외침에 화답하듯 이야기했다.
“우린 이미 꿈을 이룬 거였어요!”
"맞아, 맞아. 잠시 잊고 있었어. 내 소중한 보물을..."
그들은 아이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손을 꼭 잡고, 하나둘 달팽이 버스에 올라탔다.
카일라와 에드는 아직 꿈을 찾지 못한 루미나의 어깨에 다정히 손을 올렸다.
“카일라와 나도 외부세계로 돌아가기로 결정했어요. 오랫동안 꿈꿔왔던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해요. 모험도! 열정도!”
그들 부부의 어릴 적 꿈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특별한 여행하는 것이었다. 어릴 적 친구 사이였던 그들은 서로의 꿈과 상상의 세계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곤 했다. 그렇게 성인이 된 둘은 서로의 꿈을 함께하고 싶다는 소망을 가슴속에 품은 채 많은 시간을 여행했지만, 그들에게 만족감을 선사했던 외부세계의 여행은 오래전에 사라진 듯했다.
“에드랑 나. 이곳에서 이미 꿈을 이룬 것 같아요.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졌어요. 마음이 깨끗이 비워진 느낌이에요.”
카일라의 진지한 말을 들은 루미나는 그녀에게서 은은히 풍겨오는 평화로움 속 무언가를 깨달은 듯 보였다.
“잘되었네요. 두 분에게 꿈의 구슬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겠죠?"
"사람 일은 모르죠! 다시 이곳을 떠올리게 될 날이 남아있을지도!"
그들이 탄 달팽이 버스는 오두막을 떠난 지 오래지 않아, 곧장 꿈의 숲 정문으로 향했다. 그곳을 향한 마음이 하나였기에 꿈의 숲은 주저 없이 스스로 길을 열어주었다.
꿈의 숲 정문에 도착한 루미나와 이연, 그리고 카일라와 에드 부부는 작별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가끔, 이곳에서의 환상적인 기억들을 떠올리겠지만, 이제는 바깥세상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마무리하러 가야죠.”
“그럼요, 카일라. 그러셔야죠. 저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으니, 여기서 작별 인사를 나눌까요?”
카일라는 루미나와 작별 인사를 나누는 내내 그녀가 들고 있던 가방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저, 루미나. 그런데 아까부터 메고 다니는 그 가방은 뭐예요? 루미나의 꿈의 물건 이런 거예요?”
“아! 카메라? 제 것은 아니에요. 동료의 물건 같아서요.”
“그래요? 루미나의 동료도 곧 이곳을 떠나겠군요. 좋은 친구를 둔 덕분이네요.”
카일라는 여전히 해맑은 미소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샘, 덕분에 이곳까지 올 수 있었거든요. 모두를 만날 수 있게 도와준 친구..."
한참을 서서 샘을 떠올리던 루미나는 점점 커지듯 흔들어 깨우는 그녀의 목소리에 놀라 대답했다.
"먼저 가세요! 외부 세계로! 출발!”
“그럼, 저희 부부! 이제 갑니다!”
카일라와 에드 부부는 꿈의 숲 문을 활짝 열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기다리던 열차에 올라탔다.
열차가 서서히 움직이자, 꿈의 숲 문도 천천히 닫히며 그들과의 이별을 알렸다.
이제 숲에는, 떠나지 않으려는 소피아와 루미나만이 남아 있는 듯 정막 했다.
테오는 여전히 루미나의 다리를 꽉 붙들고 있었다. 루미나는 소피아에게 테오를 데려다주었지만, 테오는 계속해서 낑낑대며, 루미나의 바지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테오는 곧 울상된 채로 그녀의 다리에 얼굴을 파묻었다.
“소피아, 얼른 테오를 데리고 꿈의 숲을 나가요.”
“하지만..”
“뭘 망설여요! 좀 전의 그 부모들도 아이들과 함께 이곳을 나갔잖아요.”
“난 못 가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혹시 꿈의 구슬 때문이에요? 걱정 마요. 그 부모들과 아이들도 안전하게 나갔고, 카일라와 에드도 무사히 숲을 나갔어요.”
소피아는 어딘가 미련이 남은 듯한 얼굴로 루미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난 나갈 수 없어...”
“설마, 꿈 때문이에요? 그건 나중에 다시 오면 되잖아요. 테오는 아이...”
계속되는 그녀의 설득에도 소피아는 떠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그런 그녀의 눈가에 가득 찬 슬픔을 읽어낸 루미나는 테오의 손을 잡고 결심한 듯 정문을 향했다.
“어쩔 수 없죠... 저라도 테오를 데리고 나갈 수밖에...”
그때였다,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미나!!”
“샘?”
루미나가 뒤를 돌아보자, 샘이 방긋 웃으며 그녀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반가움에 서로 부둥켜안으며 앞다투어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샘, 그동안 어디 있었어요!”
“루미나를 찾느라 돌아다녔죠! 또 어디서 이 사람 저 사람 도와주다 심연에 빠진 건 아닌가 걱정이 돼서요.”
“샘, 나는 이제 강해졌어요!”
“그래 보여요! 루미나! 정말 다행이에요.”
루미나는 샘에게 가방을 건넸다. 가방을 건네받은 샘의 눈가에 서서히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녀는 샘의 모습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꿈을 찾은 그녀를 향해 환하게 웃어 보였다.
“얼른 가요! 샘. 여기까지 정말 잘 왔어요.”
“루미나... 내가 혼자 어떻게 나가요. 난 루미나가 없었으면, 그 숲에 영원히 갇혔을 거예요. 난... 난...”
상처투성인 루미나의 모습에 샘은 왈칵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샘~ 왜 이래요. 나 이래 봐도 이곳 꿈의 숲 속의 마법사라도 된 것처럼 자유롭고, 편안해요. 그러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말고, 샘은 샘의 삶을 살아요!"
루미나는 자신에게 남은 여정 또한 마다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눈빛이었다.
“난 절대 혼자 못 가요... 루미나.”
“내가 그 가방을 어떻게 구했는지 알아요? 그러니까 얼른 나가요. 샘이 나가줘야, 나도 안심하고 내 여정을 시작할 수 있어요.”
“하지만...”
“부탁이 하나 있어요. 여기 테오를 아이 아빠에게 데려다줄 수 있어요? 지금 한국엔 없대요. 외국에 있다던데... ”
샘은 말없이 루미나를 바라보다, 고개를 떨구었다. 눈에 맺힌 눈물이 뺨을 타고 흘렀고, 샘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듯 자리를 서성였다.
"샘!! 날 봐요! 나 정말 아무렇지 않아요! 상처는 온천의 물로 회복할 수 있고, 언제든 바람을 타고 날아요! 구름도 당겨 올 수 있고요... 그러니까, 아무 걱정 말고 샘은 샘의 삶을 살아요. 난 이곳의 여정을 다 끝내고 운명이 이끈 샘을 만나러 갈 테니."
"잘 가! 꼬마! 아니, 테오! 언젠가 다시 만나자!"
샘은 조심스레 테오의 손을 잡았다.
“그럼 먼저 갈게요, 루미나.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요. 인연이 되면 꼭 다시 만나요. 테오야, 어서 가자.”
샘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옮기며, 꿈의 숲 정문 앞으로 향했지만 문은 굳게 닫힌 채 열리지 않았다. 한참을 서성이던 그녀의 머릿속에 문득 떠오른 환영이 스쳐가자, 그녀는 손에 쥔 부엉이 카메라를 떠올렸다.
멀리서 이들을 지켜보던 루미나는 두 사람을 향해 크게 손을 흔들고 있었고, 그 모습에 테오도 환하게 웃으며 화답하듯 돌아보았다.
루미나의 웃음은 마치 햇살처럼 밝게 빛나고 있었다.
“어째서... ”
샘은 잠시 부엉이 카메라에 담긴 추억을 살피다, 루미나가 남겨놓은 놀이동산의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슬며시 미소 지었다. 그리고는 루미나와 자신을 한 프레임에 담듯 그녀들을 향해 셔터를 눌렀다.
카메라에 담긴 루미나의 모습을 확인하던 샘은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루미나...?”
샘의 어깨너머로 사진을 바라보던 테오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루미나와 샘을 가리키며 말했다.
“샘은 루미나! 루미나는 샘!”
순간, 샘의 머릿속으로 수많은 필름들이 스쳐 지나가며, 그녀 자신과의 추억들이 떠올랐다. 그녀는 바라봤고, 웃었고, 일으켰다. 매 순간을 그녀와 함께하며, 울었고 사랑했다. 루미나는 샘의 가장 오래된 친구였다.
샘은 북받치듯 쏟아지는 무수한 감정들에 말을 잊지 못한 채, 빛에 휩싸이듯 사라져 가는 루미나를 바라보았다.
그 빛들은 하나, 둘, 샘을 향해 날아들었고, 강한 빛 폭발과 함께 꿈의 구슬이 되어 샘의 손 위로 살포시 내려앉았다.
“말도 안 돼... 나였어...”
사진 속에는 하나의 인물의 마치 쌍둥이처럼 담겨있었다. 순간, 샘은 사진 속 인물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외부세계에서 자신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한 채 살아가던 그녀. 운명의 이끌림으로 꿈의 숲을 찾았지만, 숲에서 그만 길을 잃고 쓰러져 있던 그녀를 깨우러 온 존재.
그 사실을 깨닫자, 샘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감정이 복받친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테오는 어른이 우는 것이 신기한 듯, 샘을 요리조리 살피다 자신의 옷자락을 들어 샘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리고는 샘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샘... 이제 내가 지켜두게... 옹?”
샘은 아이를 끌어안은 채, 엉엉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이의 품에서 오랜 기억의 상처들이 녹아내렸다.
그때였다.
주머니 속에 잊고 있던 노트가 펼쳐지며, 바람과 함께 또 다른 꿈의 구슬이 되어 그녀의 손으로 내려앉았다. 그렇게 두 개의 꿈의 구슬은 주변으로 광대한 오라를 펼치며, 샘을 빛의 방울로 에워쌌다. 빛에 둘러싸인 샘과 테오는 새로운 길 위에서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은 채, 숲의 문을 향해 당당히 걸었다.
숲의 풀들이 바람에 흩날리며 이별의 손짓을 보냈고, 샘과 테오는 천천히 숲의 문을 열고 외부세계로 발을 내디뎠다. 문 앞에는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꿈의 숲 열차가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열차에 올랐다.
꿈의 숲 문이 서서히 닫히고, 환한 햇살 아래 나비를 쫓는 소피아의 뒷모습만을 마지막으로 열차는 출발하기 시작했다.
31화 다시, 희망이 시작되는 곳
-A new world-
등장인물: 루미나, 이연
샘은 드디어 자신의 안락한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모든 여정이 끝나고도 여운은 계속되었고, 그곳에서의 일들을 천천히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주황빛 스탠드 아래서, 샘의 첫 꿈이 시작되었다.
꿈의 숲에서의 여행기를 읽던 사람들은 그녀의 글이 동화 같다고 했고, 누군가는 잊고 살던 꿈을 깨우는
특별한 소설 같다고도 했다.
6개월 뒤, 그녀의 소설은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소설은 생각보다 빠르게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녀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독자들은 소설 속 이야기를 따라, 진심으로 자신의 꿈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꿈의 숲 속 이후, 샘의 세계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녀는 한 등산로에 사람들이 잠시 머물 수 있는 카페 겸 도서관을 차렸고, 많은 이들이 그곳을 방문하였다.
‘음료는 셀프.’
‘원두 무제한 제공.’
‘10:00 ~ 15:00 마감’
‘책은 알아서 정리 요망.’
그날도 평소처럼 야외 테이블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SNS를 보던 샘은 익숙한 얼굴들을 발견했다.
카일라와 에드.
꿈의 숲에서 만났던 원앙 부부였다. 그들은 여전히 여행 중이었고, 여행가의 삶을 현실에서 이어가고 있었다.
샘은 번역기를 켜고, 에드와 카일라 부부에게 안부 메시지를 보냈다.
“한국에 있는 루미나(=샘)입니다. 잘 지내고 있어요?”
잠시 후, 따끈한 답장이 도착했다.
“그럼요! 우리는 아직도 여행 중이에요! 한국도 꼭 가보고 싶어요! 초대해 줘요!”
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화면을 덮고, 천천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맑은 하늘 위로 수많은 제비 떼가 무리 지어 날아올랐다.
며칠 뒤, 이연이 샘의 도서관을 찾아왔다.
“안녕하세요, 루미나(=샘).”
샘은 책을 정리하다, 낯익은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왔구나! 잘 지냈어! 이연?”
그녀는 반가움에 이연을 와락 껴안았다.
“잘 지내셨어요?”
“나야, 잘 지냈지. 너는? 이리 와서 이야기 좀 더 해줘. 궁금했어.”
이연은 외부 세계로 돌아온 뒤, 그녀의 엄마를 오랜 시간 설득한 끝에 잠시 휴학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제 조금씩, 방향을 찾아가는 중이에요.”
“이연이라면, 충분히 잘 해낼 거라고 믿어. 차 한잔 할래?”
샘과 이연은 한참을 그렇게 못다 한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카페 문을 닫을 시간이 되자, 두 사람은 전화번호를 주고받으며 짧은 작별 인사를 건넸다.
“또 와! 언제든지!”
“연락드릴게요!”
그날 밤.
책상 앞에 앉아, 꿈의 숲에서 만난 구관조 한 쌍을 수첩의 한쪽 모퉁이에 그려 넣고 있을 때였다. 창밖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어딘가에서 날아온 파랑새 한 마리가 창문을 두드렸다.
톡-
톡 톡—
샘은 그림을 그리던 손을 내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뭐지?’
톡—
톡톡톡톡...
“엇?!”
파랑새는 그녀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마치 다시 한번, 꿈의 숲이 그녀를 부르고 있는 것처럼...
샘은 조용히 일어서며, 살며시 수첩을 덮었다.
그 순간,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다시 시작되었음을 느꼈다.
31화 다시, 희망의 시작되는 곳
31화 다시, 희망의 시작되는 곳
31화 다
시, 희망의 시작되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