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연재 중 꿈의 숲 28화

28화 감옥의 성

가슴속 메아리!

by 우산을 쓴 소녀
글, 그림: 우산을 쓴 소녀

28화 감옥의 성

-가슴속 메아리!-

등장인물: 루미나, 소피아, 테오, 하얀 원피스의 아이, 관리인 부부


달팽이 버스는 숲 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지는 테오의 모습에 급히 멈춰 섰다.

“테오다!!!”

루미나와 소피아는 급히 버스에서 내려 아이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봤어요?”


“네! 우리 테오 맞는 것 같아요!”


둘은 다급히 숲 속으로 뛰어들었지만, 신발을 신지 않은 소피아는 점점 속도가 느려지며 뒤처지기 시작했다. 루미나는 그런 소피아를 돌아볼 새도 없이, 테오가 달아난 방향으로 쫒았다.


정신없이 달리던 루미나의 뒤에서 소피아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우리 테오! 잘 부탁해요! 루미나! 꼭 찾아줘요!”


결국 두 사람은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서로 다른 길로 흩어졌다. 그리고 루미나는 또다시 길을 잃고 헤맸다.


“또 길을 잃었네, 소피아...”

루미나는 숨을 고르며 중얼거렸다.


꿈의 숲에서는 길을 잃는 일이 워낙 흔한 탓에, 이제는 그마저도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한참을 걷던 루미나는 숲 너머로 오래된 성처럼 보이는 건물을 발견했다.


멀리서도 성 안의 불빛이 환하게 새어 나왔고,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가 숲 전체에 울려 퍼졌다. 성 안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밤의 파티를 즐기고 있는 듯했다.


‘파티 중인가? 무슨 노랫소리가 이렇게 크지? 꼭 콘서트를 하는 중인 것 같네...’


한밤중—


강가에 우두커니 서 있는 기이한 분위기의 성을 루미나는 숲 속 그늘에서 조용히 지켜보았다. 혹시 모를 검은 연기의 사람들을 피해, 그녀는 숨을 죽인 채, 성을 향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저 안에 누가 있는지 알 수 없으니, 일단은 몰래 들어가 보자.’

루미나는 성으로 이어진 돌다리를 조심스럽게 건넜다.


성과 가까워질수록 음악 소리는 점점 더 커졌고, 안으로 발을 들이자, 귀를 울릴 정도로 빠르고 강한 템포의 음악이 터져 나왔다.


당황한 루미나는 순간, 두 손으로 귀를 꼭 막았고, 낯선 성 안을 경계하듯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이 철창들은...?’


성 안을 돌아다니던 루미나는 곧 그곳이 단순한 파티장이 아닌, 잘 꾸며진 공간임을 알아차렸다. 돌 벽 사이로 철창이 줄지어 있었고, 방마다 무언가 갇혀 있을 듯 어둡고 조용해 어떤 것도 볼 수 없었다.


루미나는 조심스럽게 철창 복도를 따라 걸었다.


그러던 중, 성 안을 돌아다니던 루미나는 감옥의 관리인 부부와 마주쳤다. 그들의 눈빛에는 낯설고도 묘한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


“누구예요? 못 보던 얼굴인데?”

루미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


“우리는 위험한 사람 아니에요. 그저, 어쩐 일로 그렇게 멀뚱히 서 있나 싶어서요.”

관리인 부부는 한 걸음 다가서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어서 와요. 꿈의 숲 여행자죠?”


“네, 그렇습니다. 몰래 들어오려 던 건...”


“여긴 아무나 들어와도 되는 곳이에요. 그들만 아니라면, 걱정 말아요. 이곳은 모든 이들이 파티를 즐기다 각자의 길로 떠나는 사람들도 있고, 우리처럼 정착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이 성의 프로그램들을 자세히 알려줄 테니 따라와요.”


루미나는 검은 연기의 사람들이 아님을 확신한 뒤, 부부의 뒤를 따랐다.


“혼자 왔어요? 대부분 여러 명이 함께 오던데.”


“네, 혼자 왔어요.”

루미나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소피아가 함께 왔다는 사실을 부부에게 숨겼다.


“그랬군요. 이곳의 여정은 어땠나요?”

머뭇거리는 그녀의 표정을 살핀 관리인 남편이 거들며 말했다.


“우린 이곳에 방문하는 모든 여행객들에게 물어봐요. 여정에 관하여. 우리 부부는 꽤 오래 이곳에서 지냈어요.

외부 세계에서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체감상 한 20년 정도는...?”


“20년이요?”


“그래요. 아마도 우리 부부가 가장 오래 머물렀거나, 또는 더 오래 머무른 사람들도 이곳에 있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 부부는 수많은 여정 끝에 이곳에 정착하기로 했죠.”


“성이 굉장히 마음에 드셨나 봐요. 이곳을 둘러보니 철창들이 많던, 과거 감옥이 아니었나 싶었어요. 그런데 왜 하필 이런 곳이었죠?”


"참 묘했죠.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이 감옥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에겐 가장 편안한 안식처처럼 느껴졌으니까요."


“이곳의 여정이 힘드셨군요. 저도 그런 곳들을 가보았지만...”


“혹시 꿈을 빼앗는 자들과 만난 적이 있어요?”


“네, 역시나 보셨겠군요. 그 검은 연기의 사람들...”


“아직도 그런 사람들이 존재하는군요. 우리가 이곳에 막 도착했을 때도 그런 극악무도한 사람들이 존재했어요. 그래서 우린 이곳, 그들이 가장 무서워할 만한 감옥을 집으로 정한 거죠. 하지만 외관과 다르게 내부는 이렇듯 안락한 곳이랍니다.”


“우리 부부가 이 성에 처음 왔을 때는 이곳도 굉장히 으스스 무서웠어요. 우리가 20년간 이곳을 이렇게 변화시켰고요.”

남자는 부인의 얼굴에 키스를 한 뒤, 말을 남기고 방을 나섰다.


“남편분과 사이가 참 좋아 보이세요.”


“맞아요. 우린 서로가 없으면 버틸 수 없어요. 서로가 함께하기 때문에 이렇게 살아가고 있죠. 그런 루미나는요?”


“저는 꿈의 숲에 혼자 왔고, 중간중간 동료들이 생기기도 했었지만, 지금은 각자 흩어진 상태예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죠.”


“그 심정 이해해요. 저희도 꿈의 숲에서 여정을 하며 많은 동료를 잃었고, 또 꿈을 찾아 떠나는 모습을 많이 보았어요. 특히 이 성에서 많은 이들이 꿈을 찾아 떠났죠.”


남자는 루미나가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각종 한약재를 다린 따끈한 물을 가져오더니, 작은 오크통에 담아 그녀에게 권했다.


“이게 다 뭐죠?”


“우리 부부가 여행자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에요. 이건 각종 한약재를 달여 만든 족욕물이에요. 피로를 풀기에 좋을 거예요. 무엇보다 상처 소독에도 도움이 되고요. 거기 하얀 천에 소량만 묻혀서 몸에 바르세요. 얼굴도, 거기 목도요.”


루미나는 부부의 말에 따라 상처 부위를 소독하고, 따끈한 족욕물에 발을 담갔다.


관리자 부부는 친절했고, 순수하면서도 천진해 보이는 그녀에게 호감을 느끼는 듯했다.


“노곤노곤한 게 피로가 싹 풀리는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우리는 이런 낙으로 살아요. 외부 세계에서는...”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잠시 망설이다,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탕비실로 향했다.


덜그럭 소리가 몇 차례 적막을 뚫고 들려왔고, 관리자 부인은 루미나에게 따뜻한 차와 다과를 내어주었다.


그들은 그곳에 정착한 사람들과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우린 이 성을 관리하고 있어요. 정착할 때부터 다양한 예술가들이 이곳에 머물다 갔죠.”


“그럼 감옥은 이제 사용하지 않는 건가요?”


“아! 그 감옥은...”


“아직 감옥을 사용하나요? 이유가 궁금한데요?”


“그곳은 갈 곳을 잃은 아이들을 위한 숙소로 바꾸었어요. 부모와 함께 왔다가 길을 잃은 작은 천사들을 위해서요.”


“그렇군요. 좋은 일을 하시네요.”

루미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관리인 부부는 성을 돌보며, 그곳을 새로운 용도로 관리하고 있는 듯했다. 그들의 역할은 단순한 관리가 아닌, 이곳을 찾은 이들의 안식처를 지키는 일 같았다.


“문만 열어두면 되죠. 문까지 잠그면, 그건 정말 감옥이잖아요?”


루미나의 말에 부인은 잠시 입술을 달싹였지만,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조용히 일어나 방을 나서자, 문이 부드럽게 닫히며 방 안에는 다시 고요만이 남았다. 홀로 남겨진 루미나는 부인의 마지막 표정을 떠올리며, 테이블에 놓인 차를 한 모금을 삼켰다.


족욕을 마친 그녀는 달콤한 와플 조각 하나를 입 안에 우물거리며, 오크통에서 천천히 발을 뺐다. 따뜻한 열기와 함께 긴장이 조금씩 풀리는 듯했지만, 마음 깊은 곳의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루미나는 부인이 놓고 간 깨끗한 천으로 발을 닦고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간의 환대는 여전히 따뜻했지만, 그 너머에 감춰진 진실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듯했다.


똑똑—


“네, 족욕은 충분히 했습니다!”


“그럼 이제 성을 구경시켜 줄게요. 따라와요.”

부인은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그림과 미술품이 가득한 공간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꿈의 숲을 찾았던 수많은 예술가들이 남긴 작품과 어린아이들이 그린 순수한 그림들이 함께 걸려 있었다.


“여기, 멋지지 않나요? 이 성을 찾은 이들이 그려두고 간 것들이에요. 화가들은 이런 곳에 오래 머물 수 없죠.

그들에겐 낯선 경험이 곧 영감이니까요.”


“어린아이들의 작품도 있네요?”


“내가 아이들을 좋아해서요. 우리 남편도 그렇고...”


탁자 위에는 한 아이가 그린 듯한 그림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이건 직접 그리신 거예요?”


“아, 아니에요. 어떤 꼬마 작가분이 다녀가며, 그려주고 간 거랍니다.”


“아... 네.”


“초면에 너무 구구절절 말하는 것 같지만, 우리는 젊은 시절 아이를 잃고 이곳에 들어오게 되었어요.

그 일 이후로 살아갈 희망조차 없었죠. 그러다 꿈의 숲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어요. 처음엔 여기 오면, 우리 아이의 환영이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뿐이었죠.”


루미나는 순간, 옛 마을의 할머니가 떠오르자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혹시... 아이를 찾을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오신 건 아니시죠?”

부인은 조용히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죽은 아이를 어떻게 만날 수 있겠어요. 여정을 거치며, 우리 부부는 많은 걸 배웠어요. 받아들이는 법도, 놓아주는 법도요.”


“그러셨군요. 이제는 괜찮으세요?”


“아이를 잃은 부모가 괜찮을 순 없죠. 하지만 이곳에서 길을 잃은 아이들의 소망을 이루어주며, 작은 기쁨을 얻고 있어요.”


“아이들의 꿈을 찾아주는 일인가요?”


“그런 셈이죠. 뭐, 비슷한 일이에요.”


그림의 방을 나오자, 루미나의 눈앞에 화려한 파티장이 펼쳐졌다. 그곳은 유명 감독과 제작진으로 북적이는 촬영팀의 회식 장소였다.


“저 감독은 외국에서 엄청난 작품들을 남긴 유명한 분 아니에요?”


“맞아요. 워낙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죠.”


“저분도 이미 꿈을 이뤘을 텐데... 아, 어릴 적 꿈.”


“그렇죠 뭐. 외부세계의 성공여부와 관계없이 꿈의 숲은 누구나 찾아오니까요.”


“그런데 전부터 궁금했어요. 아이들은 왜 꿈의 숲에 오는 걸까요? 아직 어린아이들이라 잃어버린 꿈이 있을 리 없잖아요.”


"부모... 때문이죠.”


“네?”


“대부분 꿈의 숲을 찾는 아이들은 부모님과 함께 오죠. 이유를 직접 묻기는 어려워요. 아이들 사정이 천차만별이라서요.”


“그럼, 아이들은 여정 중에 길을 잃은 거군요? 부모님이 꿈을 찾아 떠난 사람도 있을 테고...”


“아무리 그래도 자식을 두고 나가는 부모는 없겠죠. 아이 혼자 꿈의 숲을 나가면 모를까...”


“네? 아이 혼자요?”


“위험하겠죠? 부모님 중 한 분만 들어온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외부세계에서는 혼자 살기 힘들어요.

그래서 우리 부부가 갈 곳 잃은 아이들을 돌보고 있죠.”


“아...”


화려한 파티의 소란 속, 한쪽에 홀로 서 있던 아이가 루미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하얀 원피스에 긴 생머리를 늘어뜨린 아이 주변으로는 마치 연기처럼 희미한 기운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 연기는...?”


바로 그때, 홀 안에서 갑작스러운 건배사가 터져 나왔다. 그 소리에 루미나의 시선은 아이에게서 순식간에 사람들에게로 향했다.


“위하여!!!! 모두들 수고했어!!! 이번 연극도 모두를 기쁘게 할 거야!!! 오늘 밤 여기 남은 사람들이라도 신나게 놀아보자고!!”

촬영팀은 포도주와 맥주를 들고, 막 끝난 연극의 한 장면을 추억하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흰 원피스의 아이는 마치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 같았다.


시끌벅적한 파티 속에서 아이와 두 눈이 마주치자, 아이는 급히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루미나는 주저 없이 아이를 뒤따랐다. 아이의 걸음에 맞춰 성의 복도를 달리던 그녀의 눈에 곧 옛 감옥의 흔적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은 부인이 말한 대로, 아이들을 위해 꾸며진 감옥이었다. 화려한 장난감과 인형들이 놓인 방마다 묵직한 자물쇠가 하나씩 걸려있었다.


‘자물쇠는 필요 없을 텐데...’


흰 원피스를 입은 아이는 복도 끝에서 루미나를 흘끗 돌아보더니, 따라오라는 듯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저 아이는 도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아이가 그녀를 이끈 곳은 콘서트가 열리는 작은 공연장이었다. 그곳에서는 많은 아이가 나이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노래하고 춤추고 있었다. 관람하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넋을 잃은 듯 그들에게 환호를 보냈다.


그곳은 루미나가 겪었던 꿈의 숲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사람들은 공연에 완전히 매료되어, 이곳에 온 이유조차 까맣게 잊은 것처럼 보였다.


“와!!! 잘한다!!!”


“여기 좀 봐줘!!!”


사람들은 고함을 지르며 무대 위 그들에게 환호성을 보냈고, 노래는 점점 커지고 춤은 더욱 격렬해졌다. 그들은 그곳의 사람들에게 선물을 던지기 시작했고,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공짜예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루미나는 그런 소란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곳을 조용히 지나치려 할 때, 누군가 그녀 앞으로 명품 립스틱 하나를 던졌다.


루미나는 손에 쥐어진 립스틱을 바닥에 내던지고는, 곧바로 아이를 찾기 위해 달려갔다.


아이는 다시 그녀를 이끌었다. 루미나는 그 신비한 기운에 이끌려 성 안 깊숙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곧 또 다른 장면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번에 그녀가 본 장면은 반대편 감옥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아이들이 갇혀 있던 감옥과는 다르게, 그곳은 마치 위장된 특별한 공간 같았다. 그곳에서는 부모들과 아이들이 한창 풀장 파티를 즐기고 있었고, 공간은 마치 고급 호텔의 객실처럼 꾸며져 있었다.


루미나는 그 이상하고도 낯선 장면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대체 이곳은 어디지?...’


아이들이 갇혀 있던 감옥과는 너무도 다른 풍경이었다. 그 극명한 대비 속에서 루미나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깊은 곳에서부터 밀려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하...’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것은 루미나뿐만이 아니었다. 홀연히 나타난 하얀 원피스의 아이는 루미나의 옆에 선 채, 그녀와 함께 같은 장면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아이와 다시 눈이 마주친 순간, 아이는 망설임 없이 성의 또 다른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고, 루미나는 다시 아이의 뒤를 따랐다.


아이는 천천히 건물 한쪽 끝으로 걸어가더니, 몸을 돌려 루미나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달빛 아래 은은하게 빛나는 그녀의 머릿결과,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듯한 슬픈 눈빛은 루미나의 가슴을 아리게 만들었다.


“아가야, 나랑 같이 이곳을 나가자.”


“당신도 어른이잖아. 당신도 똑같아!”

아이의 음성은 마치 차가운 메아리처럼 성안 전체에 가득 울려 퍼졌다.


“그렇지 않아, 나는 몰랐어. 이런 곳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이제는 알았으니, 내가 널 구할 수 있을지도 몰라. 함께 떠나자. 내가 너의 엄마를 찾아줄게...”


“엄마? 아니, 난 이제야 자유로워요.”

아이는 가는 미소를 지으며 창밖으로 몸을 던졌다.


루미나는 다급히 손을 뻗어 붙잡으려 했지만, 이미 심신이 지쳐 있던 그녀의 손끝에서 아이의 팔은 미끄러지듯 빠져나갔다.


소녀는 강물 위로 떠올랐다, 이내 가라앉기를 반복했고, 루미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순간, 멍해진 그녀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커다랗게 울려 퍼졌다.


'루미나, 꿈의 숲 속에선 아무도 죽지 않아요!'


“엇?!”

루미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파티가 한창인 성 안을 조심히 빠져나온 그녀는 감옥 뒤편에 연결된 강가로 향했다. 숨이 턱에 찰 만큼 달려 도착한 강가에서 아이를 애타게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아가야!!! 어딨어!!! "


다만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강가에 빛과 같은 하얀 연기가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 연기를 바라보던 루미나는 그곳으로 손을 뻗었다. 그렇게 빛을 내던 연기는 작은 속삭임으로 변해 루미나를 향해 소리쳤다.


“어른들은 왜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나요?”

반짝이던 연기는 그 말만을 남기고 그녀 앞에서 사라졌다.


‘흰 연기였어... 그렇다면 저 형체는 심연 속에 잠든 아이?’

그녀는 한동안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강가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때, 강 반대편 숲 속에서 밝게 빛나는 노란 머리의 테오의 시선이 느껴졌다. 멀리서도 아이의 눈은 녹색의 호수처럼 빛났고, 그 모습을 본 루미나는 곧장 테오가 있던 숲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keyword
월, 수, 금,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