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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둘레길 산책

50대 중반에 느끼는 소소한 행복감

by 호호아줌마

나에게는 오래된 친한 친구가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났으니 벌써 40년간 내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해 온 친구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속속들이 알고 편하다. 결혼 후에는 생활 반경이 달라져 자주 만나지 못했지만, '친구'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그 친구가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나뭇잎만 굴러가도 까르르 웃던 시절에 만난 우리는 이제 아이들을 다 키우고 노년에 대해 이야기하는 50대 중반이 되었다.


매달 한 번씩 둘레길 산책을 하자고 제안했을 때 친구가 흔쾌히 동의했다. 7월의 무더운 날씨에 시작한 첫 산책, 비가 올 듯 말 듯했지만 다행히 비가 내리지 않아 완주할 수 있었다. 이날의 코스는 서울 둘레길 17코스로, 구파발역에서 시작해 불광역 근처 북한산생태공원까지 이어지는 중급 코스였다. 구름 낀 하늘 아래, 구파발천을 걸으며 시작된 산책은 서울의 깔끔함과 잘 정비된 둘레길 덕분에 쾌적했다. 곳곳에 안내 표지와 깔끔한 데크가 있어 안전하고 편안하게 걸을 수 있었다


KakaoTalk_20240731_172620212.jpg 서울둘레길 안내 표지판



중간에 뷰포인트에서 주변 경치를 구경하고, 내가 아침에 싸 온 삶은 달걀과 복숭아를 나눠 먹으니 행복한 마음이 충만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3시간 정도 코스를 완주하고 맛있는 점심을 먹은 후 친구와 헤어졌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문뜩 한 연구가 떠올랐다. 미국 은퇴자협회(AARP)와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미국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제2의 인생 연구'이다. 연구에 따르면 '당신은 현재 얼마나 행복한가?'라는 물음에 가장 많이 '매우 행복하다'라고 응답한 연령대가 바로 80대 이상이었다. 40대에서 50대, 60대, 70대로 올라질수록 행복감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흥미로웠던 것은 85세 이상 고령자들이 인생의 최고 10년을 꼽으라 했을 때 50대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는 점이다. 내가 그들이 말하는 50대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이나 다른 나라와 사뭇 다른 결과를 보인다. 세계 행복도 조사에 따르면 연령에 따라 행복도는 U자형의 곡선 모양을 보인다. 즉 40대를 기점으로 행복도가 최저점을 찍고 다시 상승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는 하향사선형(↘)을 보인다. 나이가 들수록 행복도가 지속적으로 낮아진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래서 노인들에 대한 심리, 정서적 지원에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노인 빈곤율이 가장 높은 것과 전혀 상관없지는 않을 것이다. 경제적 불안이 낮은 행복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예측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앞으로 교육 수준과 경제 수준이 높은 중장년 인구가 노년층에 진입하면 빈곤율은 줄어들고 노년을 준비한 기간이 늘어나는 만큼 행복 수준도 높아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물론 행복에 미치는 요인은 그 이외에도 많겠지만 말이다.


나이 들수록 생물학적 기능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주관적이고 정서적인 웰빙 수준은 높아지는 노년기 패러독스가 작용한다고 한다. 일상의 스트레스에 덜 민감해지고 부정적 감정이 사라지면서 자연스럽게 행복감이 올라가는 것이다. 40대를 넘어 나의 50대, 신체적 기능을 유지하는 노력과 함께 앞으로 다가올 노년을 잘 준비해 간다면 노년기 패러독스의 영향과 더불어 점점 행복해지지 않을까? 오늘 서울 둘레길을 친구와 함께 걸었을 때의 느낌처럼 말이다. 점심에 먹은 도토리 전과 시원한 막걸리가 소소한 하루의 행복을 가져다준 것처럼 이러한 일상들이 쌓여 만들어질 앞으로의 삶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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