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몸과 뇌를 깨우다
어제 오랜만에 달리기를 했다. 습하고 더운 여름, 게다가 한동안 허리를 다쳐 회복을 핑계로 뛰지 못했었다. 토요일 아침, 일찍 눈을 뜨고는 주섬주섬 운동복을 챙겨 입었다. 밤새 비가 내렸는지 땅이 촉촉이 젖어 있었지만, 비가 오면 그냥 맞으리라는 마음으로 집을 나섰다.
늘 그렇듯이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수많은 핑계가 떠오른다. 그럴 때마다 조카가 해준 말을 떠올린다. 하루는 운동으로 단련된 조카에게 물었었다. "나는 운동하려고 하면 하기 싫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데, 넌 어떻게 그렇게 꾸준히 하니? 운동하는 게 좋아?" 조카는 이렇게 답했다. "저도 운동하려면 힘들고 하기 싫어요. 그래서 그냥 아무 생각 안 해요. 그냥 옷을 입고, 그냥 운동화를 신고, 그냥 나가는 거죠. 그러면 결국 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나도 그냥 옷을 입고 그냥 운동화를 신고 그리고 그냥 문을 나섰다.
9월 초의 아침 공기는 여름의 무더위가 한풀 꺾여 청량했다. 주말이었지만 한강을 찾은 사람도 많지 않았다.
가볍게 손목과 발목을 돌린 후 달리기를 시작했다. 늘 그렇듯 처음 발을 떼면 숨이 언제부터 가빠질지 걱정이 앞선다. 너무 빨리 지치면 ‘그동안 많이 쉬었구나’ 하는 자책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다행히 어제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2km 남짓, 길지는 않지만 나에겐 여전히 도전적인 거리. 숨이 차오르면서도 “아직 내 몸이 살아 있구나”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사실 내가 달리기를 시작하게 된 건 책 한 권 덕분이었다. 정세희 작가의 『길 위의 뇌』. 저자는 재활의학과 의사이자, 20년 넘게 달리기를 실천해 온 사람이다. 책 속에는 여러 환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운동 대신 약만 달라고 조르는 환자, 운동하겠다고 약속해 놓고 다음 진료에서 시도조차 하지 않은 환자, 그리고 반대로 운동을 통해 예상보다 훨씬 큰 회복을 이룬 환자들의 이야기까지.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중년이 되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들 하지만, 사실 그때부터 책임져야 하는 것은 얼굴만이 아니다. 바로 내 몸 전체다.”
책 전체를 흐르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오늘의 운동이 내일의 내 몸과 뇌 건강을 결정한다.
나이 들어서 근력 운동과 유산소 운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신체 건강은 인지 기능을 지키고, 인지 기능은 다시 정서적 건강을 지켜준다. 몸과 마음이 선순환하기 위해서는 결국 움직임이 필요하다. 이전에는 이런 연결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작년 여름부터 필라테스와 헬스를 시작했고, 달리기는 그 연장선에서 새롭게 더해진 것이다. 아직은 자주 뛰지 못한다. 길게 달리지도 못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시작했다는 것이다. 조금씩 달리다 보면 언젠가는 달리기가 내 몸에 스며들어, 하지 않으면 오히려 허전하고 근질거리는 습관이 될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