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자극에서 마음의 배움으로
9월에 들어서니 무더운 여름이 물러가고 아침저녁으로 신선한 바람이 느껴진다. 특히 어제 비가 내린 뒤라 그런지 더욱 청량감이 느껴지는 일요일이다. 편도 20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고 4박 5일의 출장을 마치고 온 남편은 피곤과 시차로 종일 잠과 휴식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옆에서 함께 먹고 자다 보니 나 역시 몸이 무겁고 나른했다. 책을 읽으려니 또 졸음이 오기에, 남편이 자는 시간에 옷을 챙겨 입고 혼자 집을 나섰다.
오늘은 한강 대신 국립중앙박물관과 용산가족공원 쪽으로 향했다. 박물관의 호수와 울창한 나무들, 조각품이 늘어선 길은 항상 걸을 때마다 즐겁다. 그런데 오늘은 늘 자주 가던 맨발걷기 장소가 눈에 들어왔다. 가족공원에 위치한 맨발걷기 공간에 맨발로 걷는 사람들을 많이 보기는 했지만 한 번도 시도해 본 적은 없었다. 굳이~라는 것도 있었고, 신발을 벗는 수고만큼 그 이점이 크게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은 웬일인지 나 혼자 간 김에 시도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신발장에 신발을 벗어 놓고 걷기 시작했다.
║세 바퀴가 알려준 삶의 리듬 ║
총 세 바퀴를 걸었는데 바퀴를 돌 때마다 느낌도 달라지고 깨달음도 깊어졌다.
첫 번째 바퀴는 통증의 시간이었다. 자잘한 자갈과 모래가 발바닥을 찌르며 생각보다 크게 통증이 느껴졌다. ‘이렇게 아픈 거였어? 오래 못 걷겠는데’ 하는 생각이 앞섰다. 그런데 맞은편에서 오는 한 중년 여성은 느리지만 맨발로 뛰고 있었다. 뛰면 발바닥에 느껴지는 압력이 더 크게 느껴질 텐데 말이다.
두 번째 바퀴는 가능성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통증이 확연히 줄어들면서 ‘아~ 이래서 뭐든지 힘들다고 한 번에 포기하지는 말아야 하는 거구나’하는 깨달음이 왔다.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스승님(지도교수)이 산에서 맨발로 걷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말씀하신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 돌아와서 맨발걷기에 대해 대강 찾아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대충 좋은 것이라는 정도로 알고 있었던 이야기가 이제는 몸으로 와닿았다.
세 번째 바퀴는 즐거운 자극의 시간이었다. 발바닥에 얇은 보호막이 생긴 듯, 자극이 더는 고통이 아니라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걷는 자세도 한결 자연스러워졌고, 몸과 발이 균형을 찾는 듯했다. 물론 다시 마주친 그 중년의 여성처럼 뛸 정도는 아니지만 이제는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내 걸음을 찾을 수 있었다.
세 바퀴를 다 돌고 나니 앞으로도 맨발걷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으로 돌아와 맨발걷기의 효능을 찾아본 것도 그만큼 내 안에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맨발걷기의 확산과 효능║
맨발걷기는 이미 우리나라에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아가는 것 같다. 10여 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해, 2023년 기준으로 전국에 230여 곳의 맨발걷기 장소가 조성되었다고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 많은 사람들이 이미 동참하고 있었던 것이다.
맨발걷기의 효능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지압효과와 접지효과이다.
우선 지압효과는 자갈과 흙길의 굴곡이 발바닥을 자극하면서 나타난다. 발바닥은 우리 몸의 모든 장기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 자극이 전신의 혈액순환을 촉진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모든 감각 자극은 뇌를 활성화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발바닥을 통한 촉각 자극 역시 뇌 기능을 깨우며 인지기능 향상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두 번째 접지효과는 맨 발로 흙을 밟으며 땅과 직접 연결될 때 나타나는 효과를 말한다. 땅과 인간의 단절을 이어주고 그 과정에서 에너지를 받는다는 의미로 ‘어싱(earthing)’이라고 한다. 인체는 일상 속에서 전자파와 활성산소 등 산화 스트레스에 노출되는데, 흙과 맞닿으면서 이 활성산소가 중화되고 체내 균형이 회복된다고 알려져 있다.
과학적으로 아직 모든 부분이 완전히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맨발걷기를 통해 피로 회복, 면역력 강화, 수면 질 개선과 같은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했다고 한다. 설령 그 효과가 플라시보라 하더라도 신체뿐 아니라 마음의 안정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맨발걷기는 충분히 의미 있는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주의가 필요하다. 맨발걷기용으로 조성된 장소가 아니라면 부상의 위험이 있다. 뾰족한 물체에 찔리거나 발바닥 상처로 생기는 감염, 피부질환 등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평발이나 발바닥이 약한 체질의 경우에는 더욱 조심할 필요가 있다. 모든 운동이 그러하듯, 자신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 강도와 빈도를 조절하고, 반드시 안전하게 마련된 장소에서 실천하는 것이 맨발걷기에도 적용된다.
║작은 시작이 주는 변화║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일은 항상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남들이 하는 것을 볼 때는 단순해 보이지만 막상 내가 직접 해보면 전혀 다르게 다가온다. 달리기 하는 사람들을 볼 때는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2km를 뛰는 것도 실제 해보니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책을 쓰고 출판하는 일, 헬스나 근력운동을 꾸준히 이어가는 일도 마찬가지이다.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잘하는 것이 아니라 시작해보는 것 자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이제껏 내 일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던 것들조차, 이제는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그 과정 속에서 나를 위한 배움과 변화가 조금씩 쌓여갈 것이다.
윤정희·서금란, '자연을 느끼는 발걸음: 맨발걷기 하위문화의 특성과 기능', <한국스포츠사회학회지> 37(3), 2024.
'땅과 발이 만나는 순간 치유가 시작된다', <중앙일보>, 2023.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