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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연료로 달리는 기차

기차가 달리기 위해 나는 소중한 추억을 뗄감으로 넘길 수 밖에 없었다.

by SeaWolf

추억을 태울 때마다 은하수 기차의 석탄 연기는, 그의 심장보다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퇴직 후 지훈의 일상은 낡은 라디오의 다이얼처럼, 미세한 균열에도 쉽게 흔들리는 주파수를 반복했다. 아침은 신문 활자의 희미한 잉크 향 속에서, 점심은 식당 기름 냄새의 끈적임 속에서, 저녁은 TV 화면의 낯선 얼굴들 속에서 희미하게 녹아내렸다. 수아가 떠난 지 1년, 그의 시간은 오래된 유리 구슬 속 풍경처럼 정지된 듯 흘러갔다.


오늘도 그는 수아의 사진을 꺼내 들었다. 빛바랜 사진 속 그녀는 마치 오래된 악보처럼 섬세한 주름을 새기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밤하늘을 담은 깊은 호수처럼 푸르렀고, 그 안에 별들이 끊임없이 춤추고 있었다. 그 미소를 볼 때마다 지훈은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나는 정말 수아를 기억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저 그녀의 잔상에 매달려, 완벽한 환영을 조각해낸 것인가? 기억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거를 선물하는 동시에 미래를 제한하는 감옥이기도 했다.


라디오에서 ‘별 헤는 밤’이 흘러나왔다. 그들의 첫 데이트 날, 어색한 침묵을 깨고 수아가 흥얼거렸던 노래였다. 별빛 아래 펼쳐진 작은 공원, 서툴렀지만 설렜던 키스, 그리고 그녀의 따뜻한 손길… 그 모든 순간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가슴을 적셨다. 지훈은 문득 깨달았다. 그는 수아를 잊고 살아온 것이 아니라, 그녀를 완벽하게 기억하기 위해 애써 왔던 것이다. 잊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그의 기억을 더욱 촘촘하게 엮어왔던 것이다. 마치 겨울 왕국 속 얼음 결정처럼 아름답지만 쉽게 부서질까 두려웠다.


기차는 증기기관차 특유의 둔탁한 울림과 함께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석탄 연기는 밤하늘을 검게 물들이며 은하수를 닮은 기차의 궤적을 따라 흘러갔다. 기차 안에는 다양한 승객들이 타고 있었다. 모두 슬픈 표정으로 창밖을 응시하거나, 손에 든 사진을 애틋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슬픔은 마치 오래된 옷처럼 낡고 익숙했지만, 각각 다른 색깔과 질감을 지니고 있었다. 한 젊은 여성은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며 남자친구와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었고, 옆 좌석의 노인은 먼 듯 가까운 고향을 떠올리며 희미하게 미소짓고 있었다. 현대인의 고독이 응축된 듯한 공간이었다. 각자의 세계에 갇혀 서로에게 무관심한 그들은 마치 거대한 도시 속 홀로 떨어진 섬들 같았다. 스마트폰 속 가상 세계에 갇혀 현실 속 고독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었다.


지훈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희미하게 빛나는 별들이 기차의 움직임에 따라 길게 늘어졌다 줄어들었다. 별빛은 마치 오래된 사진처럼 희미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따뜻하고 위로 같았다. 그는 생각했다. 별들은 수아와 함께 보냈던 밤들을 기억하고 있을까? 별들은 그의 슬픔을 알고 있을까? 아니면 그저 무관심한 우주의 먼지일 뿐일까?


기차 안에는 작은 화로가 있었다. 승객들은 자신의 추억을 하나씩 화로에 던져 넣었다. 추억이 타오르면서 기차는 희미한 빛을 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지훈은 떨리는 손으로 수아와의 첫 만남 사진을 집어 들었다. 대학교 캠퍼스, 벚꽃이 흩날리는 봄날, 수아의 수줍은 미소… 그는 사진 속 그녀를 마지막으로 바라보며 화로에 던졌다. 추억이 타오르면서 그의 가슴속에도 작은 불꽃이 피어올랐지만, 곧 그 불꽃은 점점 작아지고 희미해졌다. 기억은 마치 모래성처럼 조금씩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추억이 사라질수록 기차는 더욱 빠르게 달렸다. 석탄 연기는 더욱 무거워졌고, 그의 심장은 더욱 무거워졌다. 그는 불안감을 느꼈다. 이 기차가 어디로 향하는 걸까? 그리고 그는 이 기차에서 무엇을 얻게 될까? 그의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불안과 기대가 뒤섞여 있었다. 은하수 기차는 마치 그의 영혼을 삼켜버릴 듯 조용히 앞으로 나아갔다. 기차 안에는 마치 시간 여행자처럼 낡은 가방을 든 노인이 있었다. 그의 가방에서는 희미한 꽃향기가 풍겨 나왔는데, 그것은 지훈이 어릴 적 맡았던 할머니의 꽃향기와 비슷했다..


기차가 터널 속으로 들어서자 잠시 어둠이 찾아왔다.. 터널 끝에서 빛이 보일 때쯤, 지훈은 문득 깨달았다.. 그는 단순히 수아를 기억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통해 자신의 삶 전체를 되돌아보고 있었던 것이다.. 슬픔과 그리움 속에 숨겨져 있던 것은 자기 성찰과 새로운 시작에 대한 갈망이었다..


추억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그는 다시 한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아의 미소를 떠올렸다.. 그 미소는 더 이상 과거의 잔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지훈에게 힘과 용기를 주는 미래의 약속이었다.. 은하수 기차는 이제 그의 영혼을 삼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가능성으로 이끌어가고 있었다..


추억을 태울 때마다 은하수 기차의 석탄 연기는 심장을 짓누르는 중력처럼 무거워졌다. 두 번째 추억, 서투른 프로포즈를 화로에 던져 넣자 연기는 짙어져 객실 안을 삼켰다. 빛바랜 세피아 사진처럼, 수아의 얼굴은 점점 윤곽을 잃어갔다. 처음에는 명확했던 미소, 반짝이던 눈빛, 부드러운 목소리가 이제는 희미한 잔상처럼 아련했다. 불안은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처럼 지훈의 가슴을 꿰뚫었다. 다른 승객들의 모습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모두 오래된 인형처럼, 슬픔에 잠긴 채 텅 빈 눈으로 창밖의 어둠을 응시하고 있었다.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는 낡은 레코드판처럼, 그들의 슬픔은 정지된 시간 속에서 미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기차는 덜컹거리는 소리를 내며 앞으로 나아갔다. 석탄 연기는 밤하늘을 뒤덮은 검은 장막처럼 짙어져 갔고, 기차는 죽은 자들의 세계로 향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의 슬픔을 달래기 위한 환상일 뿐일까? 자리에서 일어나 객실을 둘러보았다. 생각보다 넓은 공간, 다양한 승객들이 각자의 고독을 즐기고 있었다. 먼지 쌓인 사진첩을 펼쳐 흐느끼는 노인,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젊은 여성. 마치 거대한 슬픔의 망에 걸려든 물고기들처럼, 그들은 무력하게 표류하고 있었다.


그때, 한 남자가 지훈에게 말을 걸어왔다. “처음 타시는군요?” 그의 목소리는 낮고 건조했으며, 체념과 함께 깊은 고독이 스며 있었다.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남자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대부분 처음에는 망설이죠. 모든 추억을 태우고 나면… 슬픔의 형태만 남겠죠.” 그의 말은 예언처럼 들렸다. 불안감을 감추며 지훈이 물었다. “모든 추억이 사라진다는 건… 무슨 뜻이죠?” 남자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더 이상 아파하지 않게 되는 거죠. 다만… 기억 속의 ‘나’도 함께 사라질 뿐입니다.”


기차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석탄 연기는 더욱 무거워졌고, 객실 안은 점점 더 고요해졌다. 지훈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별빛들은 오래된 기억 조각처럼 반짝였다 사라졌다 했다. 수아가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별 헤는 밤’이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첫 데이트 때 함께 들었던 노래였다. 수아는 밤하늘의 별들을 보며 “저 별들처럼 우리 사랑도 영원할 거야”라고 말했었다. 지금 그의 사랑은 과연 영원할까? 아니면 이 기차 안에서 모든 추억과 함께 사라져 버릴까?


현대 사회는 개인에게 끊임없이 선택을 강요한다. 시간과 공간, 관계와 욕망… 우리는 매 순간 무언가를 선택하고, 그 선택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진다. 그러나 때로는 선택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 된다.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상품화하고, 감정조차 소비의 대상으로 만든다. 은하수 기차 안의 승객들은 마치 상품처럼 자신의 추억을 소비하며 슬픔을 달랜다. 그들에게 추억이란 과거를 회상하는 즐거움이 아니라, 현재의 고통을 잊기 위한 일회용 도구일 뿐이다. 지훈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수아와의 추억을 통해 외로움을 달래고 있었지만, 동시에 그 추억에 갇혀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있었다。 끊임없이 업데이트되는 SNS 피드 속에서 그는 수아와의 과거 사진들을 올리며 ‘행복했던’ 모습을 전시했고, 좋아요 숫자에 따라 자신의 슬픔의 정도를 가늠했다。


그때, 차장이 다가와 지훈에게 말했다. “다음 역에 도착하면 세 번째 추억을 태울 시간입니다.” 차장의 목소리는 부드럽지만 어딘가 모르게 냉정했다。 깊게 숨을 쉬고 화로를 향해 걸어갔다。 세 번째 추억은 ‘함께 본 첫눈’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사진 한 장을 꺼내 화로에 던졌다…. 사진이 타오르면서 기차는 더욱 희미한 빛을 내며 출발했다…. 아름다운 설경과 수아의 웃음소리를 떠올리며 잠시 행복했지만 곧 추억이 점점 흐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석탄 연기는 그의 심장을 더욱 무겁게 짓눌렀다….


그때, 옆 좌석에 앉아 있던 노인이 지훈에게 말을 걸어왔다。 "젊은 양반, 슬퍼하는 모습 보니 딱 내가 젊었을 때 모습이랑 똑같구먼." 노인은 먼지 쌓인 사진첩에서 한 장의 사진을 꺼내 지훈에게 보여주었다。 "내 아내였지。 아주 예쁜 여자였어。" 사진 속 여인은 밝게 웃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너무 사랑했지만, 너무 바쁘게 살았지。 그녀와 함께 했던 시간을 충분히 음미하지 못했어。“ 노인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을 이었다。“이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지만 말이야。” 노인의 눈에는 깊은 슬픔과 체념이 어려 있었다. "추억이란 건 원래 그래。 잡으려고 하면 잡힐수록 멀어지고, 흘려보내면 더 선명해지지."


석탄 연기는 더욱 짙어졌고, 객실 안은 점점 더 고요해졌다. 지훈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별빛들은 마치 오래된 기억 조각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사라졌다 했다. 그는 문득 깨달았다. 수아와의 추억은 단순히 과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자신을 만들어가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그녀와의 사랑은 영원히 지속될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변형되어 그의 삶 속에 녹아들 것이다. 그는 수아가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별 헤는 밤’이라는 노래를 다시 떠올렸다. 이제 그는 그 노래를 들으며 슬퍼하기보다는, 그녀와의 아름다운 추억들을 감사하며 살아갈 것이다.


기차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석탄 연기는 더욱 무거워졌지만, 지훈의 심장은 조금씩 가벼워지고 있었다. 그는 다음 역에서 어떤 추억을 태울지 망설였다. 하지만 이제 그는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모든 추억이 사라진다 해도, 그는 새로운 추억들을 만들어갈 수 있을 테니까. 은하수 기차는 그렇게 어둠 속으로, 혹은 새로운 새벽으로 향하고 있었다…


추억을 화로에 던질 때마다 은하수 기차의 석탄 연기는 그의 심장보다 무거워졌다. 캠퍼스 잔디밭에 흩뿌려진 햇살 조각들을 닮은 첫 만남의 기억이 화로 안으로 스러져 내리자, 기차는 희미한 금빛 가루를 흩뿌리듯 앞으로 나아갔다. 지훈은 객실 창밖을 응시했다. 별들은 조금 더 선명해진 듯했지만, 그의 시선은 묘하게 뿌옇게 흐려졌다. 마치 오래된 TV 화면처럼, 기억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느낌이었다. SNS 속 수아의 셀카들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필터로 보정된 완벽한 미소, 현실의 수아는 그보다 조금 더 자연스러웠다.


그녀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수아는 늘 햇살처럼 밝았지. 그는 손으로 수아의 얼굴을 만지려는 듯 허공을 움켜쥐었다. 대학 시절, 수아는 늘 그의 어색함을 귀엽게 웃어넘겼다. 마치 세상 모든 비밀을 알고 있는 듯, 맑은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 눈빛은 마치 지금도 그의 심장을 간지럽히는 작은 전류 같았다. 하지만 이제 그 전류는 점점 미약해지고 있었다. 기억 속 수아는 수정처럼 빛났지만, 현실의 수아는 물감 번지듯 희미해져 갔다. 그녀의 작은 습관들, 투정 부리던 모습, 가끔씩 짓던 멍한 표정까지… 모두 기억의 침전물처럼 가라앉아 사라져갔다. TV 속 연예인들의 웃음소리가 끊임없이 그의 외로움을 자극했다.


석탄 연기가 코를 찔렀다. 연기는 단순히 과거를 태우는 매개체가 아니었다. 그것은 시간의 응축이었고, 슬픔의 증기였으며, 무엇보다 그와 수아를 연결했던 보이지 않는 실이었다. 연기가 무거워질수록, 그는 그녀와의 연결고리가 점점 느슨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오래된 선반 위에 놓인 먼지 쌓인 사진첩처럼, 추억들은 점점 빛바래고 있었다. 특히 SNS 속 ‘좋아요’ 숫자에 매달렸던 자신과 수아의 모습이 떠올랐다. 관계마저도 평가받고 소비되는 시대였다.


다음 추억은 좀 더 강렬했다. 함께 본 첫눈이었다. 캠퍼스 커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따뜻한 호빵을 나눠 먹던 날, 수아는 그의 목도리를 꼭 끌어당겨 그의 뺨을 발갛게 만들었다. 그는 서툴렀지만 용기를 내어 고백했고, 수아는 환하게 웃으며 그의 손을 잡았다. 그 손길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마치 봄날의 햇살 같았다. 그때, TV 뉴스에서는 연일 북한의 핵실험 소식이 전해졌다. 불안과 위협 속에서 피어난 사랑이었으므로, 더욱 애틋했던 것일까?


기차는 더욱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객실 안에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다른 승객들은 각자의 추억을 태우며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가면처럼 무표정했고, 눈동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그들은 추억을 소비하며 슬픔을 달래고 있었다. 마치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품을 구매하듯, 감정마저 상품화된 듯했다.. 한 젊은 여성은 전 남자친구와의 데이트 사진을 태우며 눈물을 글썽였다.. 옆 좌석 중년 남성은 성공했지만 공허한 삶을 상징하는 승진 기념 사진을 태웠다..


그때 지훈은 한 노부부를 발견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있었고, 할아버지는 눈물을 글썽이며 추억 하나를 화로에 던졌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괜찮아요, 여보.”라고 속삭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따뜻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체념이 느껴졌다.. 지훈은 그들의 모습에서 전통적인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의 희생이 얼마나 당연하게 여겨졌는지 깨달았다.. 그녀는 자신의 슬픔을 숨기고 남편을 위로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삶 자체를 남편에게 바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에는 깊은 애정과 연민이 담겨 있었다.. 마치 오랜 세월 동안 함께 해온 나무처럼 서로에게 깊게 뿌리내린 관계였다..


다음 추억은 서투른 프로포즈였다.. 그는 수아를 레스토랑에 데려가 떨리는 목소리로 반지를 건넸다.. 수아는 감동해서 눈물을 글썽이며 “네”라고 대답했다.. 그때 그는 온 세상을 얻은 듯 행복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 행복은 조금씩 변질되어 있었다.. 기억 속 수아는 완벽한 모습으로 그의 앞에 나타났지만, 현실 속 수아는 좀 더 복잡하고 입체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이상화된 사랑에 얼마나 매달려 있었는지 깨달았다.. TV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완벽한 사랑을 꿈꿨지만, 현실은 조금 더 지저분하고 불완전했다..


석탄 연기는 더욱 짙어져 객실 안을 가득 채웠다… 지훈은 숨 막힐 듯한 고독감에 휩싸였다… 그의 머릿속 수아의 얼굴과 목소리는 점점 흐릿해져 갔다… 다른 승객들이 추억을 모두 태운 후 종착역에서 영혼 없는 텅 빈 껍데기가 되어 내리는 모습을 보고 불안에 휩싸였다… 그들의 눈에는 슬픔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마치 꼭두각시 인형처럼 움직이는 모습이었다…. 기차 창밖으로 도시의 불빛들이 스쳐 지나갔다… 빛나는 도시만큼이나 차가운 도시였다…


그때 차장이 다가와 말했다.“다음 역입니다… 다음 추억은 무엇으로 태우시겠습니까?” 차장의 목소리는 무미건조했고, 그의 눈빛은 깊이를 알 수 없었다…. 지훈은 마지막 MP3를 꺼냈다… 거기에 담긴 것은 수아가 암 투병 중 지훈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이었다… “너무 슬퍼하지 마 오빠야… 난 항상 당신 옆에 있을 거야…” MP3를 화로에 던지는 순간 그의 심장은 격렬하게 요동쳤다…. 모든 것이 사라질 것 같았다…. 갑자기 기차가 크게 흔들렸다…. 객실 조명이 깜빡거렸다…. TV 화면에서는 전쟁 발발 속보가 흘러나왔다…. 혼돈스러운 세상 속에서 작별 인사를 해야 하는 슬픔이었다….


수아가 남긴 마지막 유언이 끝나자 MP3에서 희미하게 또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오빠야… 혹시 내가 살아남으면… 우리 다시 SNS에서 만날까?” 그녀의 마지막 말은 지훈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디지털 세상에서도 그녀와의 연결이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니라는 희망이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수아의 인스타그램 페이지를 열었다... 마지막 게시물에는 그녀가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과 함께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삶은 계속된다!"


추억을 태울 때마다 은하수 기차의 석탄 연기는, 그의 심장보다 무거워졌다. 두 번째 추억은 ‘함께 본 첫눈’이었다. 낡은 사진 속 수아는 붉은 목도리를 두르고, 콧등에 매달린 눈방울은 손등 위에서 유리구슬처럼 반짝였다. 지훈은 그 옆에서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그날, 수아는 감기에 걸려 코를 연신 훌쩍였지만, 마치 세상 모든 아름다움이 그 눈물 속에 담겨있는 듯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는 사진을 화로에 던졌다.


타오르는 추억은 잠시 따스한 온기를 내뿜었지만, 곧 희미한 푸른빛으로 변해갔다. 연기 속에서 나는 미묘한 단내, 오래된 설탕과 눅눅한 겨울옷 냄새가 뒤섞여 코를 간지럽혔다. 기차는 마치 숨을 고르듯 느릿하게 움직이다, 다시 힘차게 앞으로 나아갔다. 창밖으로 보이는 별들은 더욱 가깝게 다가왔지만, 어딘가 모르게 공허해 보였다. 처음에는 반가웠던 석탄 연기가 이제는 그의 목을 조여오는 듯 답답했다. 연기는 과거의 시간들을 녹여낸 슬픔의 응축액이었고, 그 슬픔은 점점 그의 심장을 짓눌렀다.


다음은 ‘서투른 프로포즈’였다. 지훈은 수아를 위해 준비한 작은 다이아몬드 반지를 손가락에 끼워주려 했지만, 긴장한 나머지 반지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수아는 깔깔 웃으며 반지를 주워 그의 손에 끼워주었다. 그 웃음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율 같았다. 사진 속 수아의 미소를 보며 지훈은 잠시 행복에 잠겼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추억이 타오르면서 수아의 얼굴 윤곽이 점점 흐릿해지고, 그녀의 웃음소리도 점점 멀어져갔다. 재는 섬세한 먼지처럼 기차 안을 떠돌았다.


기차 안의 승객들은 각자의 추억을 태우며 침묵 속에서 슬픔을 삼키고 있었다. 한 노인은 젊은 시절 아내와 함께 찍었던 흑백사진을 태우며 눈물을 흘렸고, 한 젊은 여성은 남자친구와 주고받았던 편지를 태우며 떨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들의 눈빛에는 깊은 슬픔과 함께 어딘가 모르게 체념적인 표정이 감돌았다. 마치 상품처럼 자신의 감정을 소비하며 슬픔을 달래는 듯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감정조차 상품화되는 현실이 지훈의 가슴을 묵직하게 눌렀다. 추억이라는 상품은 누가 만들어 판매하는 걸까? 기차 회사의 이익 구조와 승객들의 욕망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가 있었다.


그때, 옆 객실에서 희미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지훈은 고개를 돌려 울고 있는 한 여자를 발견했다. 그녀는 남편과의 추억이 담긴 사진들을 한 움큼 들고 흐느끼고 있었다. 지훈은 그녀에게 다가가 “힘내세요.”라고 위로했지만, 그녀는 고개만 만 끄덕일 뿐이었다.. 그녀의 눈에는 슬픔뿐 아니라 깊은 절망이 담겨 있었다..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모습이었다.. 그녀의 울음소리는 기차 안의 다른 소음을 삼키며 더욱 크게 울려 퍼졌다..


기차 안에는 점점 더 많은 승객들이 추억을 태우기 시작했다. 석탄 연기는 더욱 짙어져 기차 안을 자욱하게 뒤덮었다.. 지훈은 다른 승객들이 추억을 모두 태운 후 종착역에서 영혼 없는 침묵 속에 내리는 모습을 보며 불안에 휩싸였다.. 그들의 눈에는 더 이상 슬픔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마치 꼭두각시 인형처럼, 그들은 기차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존재들 같았다..


기억 속의 수아는 점점 완벽해져 갔다. 그녀는 늘 환하게 웃고, 늘 따뜻했고, 늘 지훈에게 최고의 모습만을 보여주었다.. 반면 현실 속 수아는 때로는 짜증도 내고, 때로는 서툴렀으며, 때로는 완벽하지 않았다.. 지훈은 자신이 이상화된 사랑에 얼마나 매달려 있었는지 깨달았다.. 그는 수아의 결점까지 사랑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낸 완벽한 수아를 사랑했던 것이었다.. 사랑이란 기억의 재구성인가? 그는 TV에서 MP3로, 그리고 SNS를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는 수아를 기억하고 있었다.. TV 속 수아는 청순했고, MP3 속 수아는 세련되었으며 SNS 속 수아는 자유분방했다… 각각의 순간들을 그는 충실히 기록하고 또 망각하며 현재의 수아를 만들어냈다…


"차가운 손길…" 지훈은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석탄 연기가 그의 폐 속까지 스며드는 듯 숨쉬기가 어려워졌다.. 창밖으로 보이는 별들은 점점 희미해지고, 기차는 더욱 빠른 속도로 종착역을 향해 달려갔다.. 그는 자신이 이 기차에서 내려야 할까? 아니면 계속해서 추억을 태우며 수아를 따라가야 할까? 그의 마음속에는 불안과 설렘이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화로에서 피어오르는 푸른 연기는 그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그 그림자는 마치 다른 세계로 향하는 통로처럼 보였다…


기차 안에는 석탄 연기 특유의 매캐한 냄새와 함께 타버린 추억들의 잔해가 떠돌았다… 어떤 사람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마지막 남은 추억들을 붙잡으려 애썼고, 어떤 사람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다음 추억을 찾아 화로 앞에 앉았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거대한 소비 기계에 의해 움직이는 꼭두각시 인형 같았다… 종착역에서는 영혼 없는 침묵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그들은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더욱 깊어진 고독? 혹은 새로운 추억을 시작할 희망?


석탄 연기는 그의 심장보다 무거워졌다. 이제는 거의 의례처럼, 지훈은 다음 추억을 골라 화로 앞으로 다가섰다. 객실 안의 웅성거림은 점점 희미해져 마치 깊은 바닷속에서 듣는 조용한 포효처럼 몽롱하게 울렸다. 그는 승객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대부분의 눈은 빛을 잃은 진주처럼 탁했고, 떨리는 손가락들은 빛바랜 사진을 붙잡고 있었다. 그들의 슬픔은 각기 다른 향기를 풍겼지만, 모두 삶이라는 거대한 무게에 눌린 듯했다.


그의 옆자리에 앉은 노부부는 서로에게 기대어 있었다. 할머니의 눈가는 오랜 세월 짓눌린 땅처럼 깊게 갈라져 하얀 손수건으로 끊임없이 눈물을 적셨다. 할아버지는 무릎에 놓인 빛바랜 가족사진을 쓸어만졌다. 사진 속 젊은 청년의 미소는 이제 먼 별처럼 희미했다. “오랜 여행이시네요.” 지훈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할머니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지훈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오래된 호박처럼 깊고 어두웠다. “그래요… 우리 손주 녀석… 사고로 데려갔지 뭐예요. 겨우 스무 살이었는데…” 그녀의 목소리는 갈라진 도자기처럼 위태롭게 떨렸다. “세상에, 꽃 피기도 전에…”


할아버지는 조용히 덧붙였다. “우리 집안 대대로 농사꾼이었어요. 녀석도 꼭 농사를 이어가겠다고 했는데… 이제 그 꿈은 검은 석탄 연기 속으로 사라졌지.” 그의 목소리에는 체념과 슬픔, 그리고 미묘한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 지훈은 그들의 슬픔에 깊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자신의 추억을 태울 때마다 조금씩 자신의 삶도 함께 태우는 듯한 기분이었다. 타버린 추억의 재는 그의 영혼에 섬세하게 내려앉아 새로운 색깔로 물들였다.


조금 더 안쪽 객실에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성이 홀로 앉아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완벽하게 그려진 듯한 미소가 있었지만, 그 뒤에는 어딘가 모르게 차가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지훈이 말을 걸자 그녀는 약간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어떤 추억을 태우시는군요?”


여성은 냉소적인 미소를 지었다. “결혼식 날이에요.” 그녀는 손에 들린 사진 액자를 보여주었다. 사진 속에는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와 남편이 있었다. “모두가 완벽하다고 했죠. 부유하고 잘생긴 남편, 아름다운 결혼식… 하지만 그는 늘 숫자에만 몰두했고, 저는 그의 성공을 위한 아름다운 장식품에 불과했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차가운 다이아몬드처럼 날카로웠다.“이제 그 완벽한 가면을 벗어던지고 싶어서요.” 그녀의 손목에는 은은한 향수 냄새가 감돌았다 – 값비싼 향수일수록 더욱 차가운 슬픔을 감추려는 듯했다..


지훈은 여성의 이야기에 섬뜩함을 느꼈다. 마치 자본주의 사회의 축소판 같았다. 사람들은 행복이라는 상품을 소비하며 슬픔을 달래고, 관계는 이해관계라는 정교한 계산 속에서 시작되고 끝나는 것이다. 그의 시선은 다른 승객들에게로 향했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슬픔을 소비하고 있었다 – 어떤 이는 과거의 영광을 되새기며, 어떤 이는 현재의 불행을 위로하며, 또 어떤 이는 미래의 희망을 꿈꾸며… 마치 거대한 공동묘지에서 서로에게 위로를 건네는 영혼들 같았다..


그때, 한 남자가 화로 앞에서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내 청춘… 내 열정… 모두 다 이 빌어먹을 회사 때문에!” 그는 서류 다발을 화로에 던졌다. 서류들은 순식간에 불길에 삼켜졌고, 검은 연기가 하늘로 피어올랐다.“나는 늘 최고의 자리를 향해 달려왔어! 가족과의 시간도 희생하고, 친구들과의 만남도 미루면서! 하지만 결국 얻은 건 무엇인데? 늙고 병든 몸뚱이와 몇 푼 안 되는 퇴직금 뿐이야!” 그의 울부짖음은 객실 안에 울려 퍼졌고, 다른 승객들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함께 눈물을 흘렸다.. 그의 분노는 개인적인 불행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 그것은 경쟁적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인간 존재의 절규였다..


지훈은 문득 깨달았다.. 이 기차는 단순히 죽은 연인을 만나기 위한 여정이 아니었다.. 이것은 살아있는 모든 이들이 타고 있는 기차였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추억이라는 연료를 태워가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마지막 추억까지 태우고 종착역에서 내려야 한다…. 그때 우리는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영원한 평화? 아니면 더욱 깊어진 고독? 아니면 또 다른 기차를 타고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게 될까? 이 기차는 삶 자체였고, 추억이란 삶이라는 거대한 엔진을 움직이는 연료였다..


그때, 차장이 다가와 지훈에게 말했다.“다음 역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지훈 씨… 마지막 추억을 준비하세요.” 차장의 목소리는 어딘가 모르게 서늘했다…. 지훈은 마지막 유언이 담긴 MP3를 손에 꽉 쥐었다…. 그의 심장은 점점 더 무거워졌다…. 석탄 연기는 더욱 매캐하게 풍겨왔다…. 그리고 은하수 기차는 어둠 속으로 힘차게 달려갔다…. MP3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어머니의 자장가였다 - 어린 시절, 어머니 품에서 듣던 따뜻한 자장가는 그의 불안정한 심장을 간신히 붙잡아 주었다..


그때 그는 깨달았다 – 마지막 추억이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힘이며 미래를 만들어가는 원동력이다.. 그는 어머니의 자장가를 통해 어린 시절의 순수한 행복과 희망을 되찾았다.. 마지막 추억을 태우면서 그는 과거와의 작별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작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석탄 연기는 더욱 매캐하게 풍겨왔지만,, 이제 그의 심장은 무거움보다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은하수 기차는 어둠 속으로 힘차게 달려갔다 – 종착역에서 무엇을 발견하게 될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는 두렵지 않았다….


추억을 태울 때마다 은하수 기차의 석탄 연기는, 그의 심장보다 무거워졌다. 마지막 추억, 수아가 남긴 낡은 MP3 플레이어. 손바닥 안에서 미지근하게 식어가는 플라스틱 조각은, 그녀의 마지막 숨결이 응축된 듯했다. 수아는 암 투병 중에도 틈틈이 노래를 녹음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지훈에게 삶의 활력소였고, 고통을 잊게 해주는 마법이었다. MP3 안에는 그녀가 가장 좋아했던 재즈 스탠다드 곡들과, 지훈에게 전하는 짧은 메시지들이 담겨 있었다. 그 메시지들은 단순히 위로를 넘어, 지훈의 무의식 깊숙한 곳에 뿌리내린 불안과 트라우마를 어루만지는 듯했다.


기차는 점점 속도를 내고, 석탄 연기는 짙어져 밤하늘의 별들을 삼킬 듯 했다. 연기는 단순한 검댕이 아니라, 과거의 조각들이 녹아든 액체 그림자 같았다. 승객들의 슬픈 표정은 지훈의 또 다른 자화상 같았다. 각자의 상실, 각자의 고독. 은하수 기차는 슬픔을 공유하는 영혼들의 정거장이었다. 지훈은 MP3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희미한 노이즈를 지나 수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빠야, 또 라디오 드라마처럼 웅얼거리네. 너무 슬퍼하지 마 오빠야… 난 항상 당신 옆에 있을 거야.” 그녀의 목소리는 예전보다 조금 더 가늘고 떨렸지만, 특유의 밝은 웃음소리가 섞여 있었다. 그녀의 웃음은 마치 겨울 햇살처럼 따뜻했고, 지훈의 얼어붙은 심장을 녹였다. 지훈은 눈을 감았다. 마치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오르는 수아의 미소. 그녀는 햇살을 닮아 작은 균열에도 금빛을 뿌렸다.


그 순간, 차장이 다가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차장의 얼굴은 어딘가 모르게 슬픈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의 눈빛에는 오랜 슬픔과 연민이 담겨 있었다. “지훈 씨, 이제 거의 다 왔습니다.” 차장은 잠시 말을 멈추고, 이어 충격적인 진실을 고백했다. “여긴 병원입니다… 지훈 씨.”


지훈은 눈을 크게 떴다. “병원… 이요?”


“네, 당신은 지금 정신병원 침대에 누워 있습니다. 수아 씨는 살아있어요… 1년 전 당신을 떠났을 뿐입니다.” 차장은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당신은 수아 씨가 세상을 떠난 후 깊은 슬픔에 빠져 일상생활이 어려워졌죠. 담당 의사 선생님이 당신의 병적인 집착을 태우기 위해 이 가상현실 치료 프로그램을 제안했습니다.”


은하수 기차는 가상현실 프로그램이었다? 모든 것이 환상이었던 것일까? 지훈은 혼란스러웠다. 지금까지 경험했던 모든 것 – 석탄 연기의 매캐한 냄새, 승객들의 슬픈 표정, 별빛 아래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 – 모두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허상이었단 말인가? 그는 천천히 눈을 떠 주변을 둘러보았다. 병실 침대에 누워 있었고, 주변에는 흰 가운을 입은 의료진들이 서 있었다. 창밖으로는 흐릿한 도시 풍경이 보였다. TV에서는 끊임없이 SNS 피드가 흘러나왔고, 사람들은 완벽해 보이는 삶을 과시하고 있었다.. 환풍기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는 점점 더 희미해져갔다..


그는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았다. 따뜻하고 촉촉한 감촉이 느껴졌다. 환상이지만 너무나 생생했다.. 그에게 은하수 기차는 단순한 가상현실 치료 프로그램 이상의 의미였다.. 그는 그 기차 안에서 수아와의 추억들을 다시금 되새기고, 그녀를 향한 사랑을 확인했다.. 비록 그 추억들이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그에게는 소중한 보물이었다.. 그는 기차 안에서 만나는 승객들의 얼굴에서 자신의 고독과 불안을 발견했고, 그들의 슬픔 속에서 위로를 얻었다.. 은하수 기차는 그의 무의식을 투영한 거울이었다..


“그렇다면… 수아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건가요?” 지훈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수아 씨는 재활병원에서 꾸준히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차장은 답했다.“조금씩 회복하고 있고, 곧 퇴원할 예정입니다.”


지훈은 잠시 침묵했다. 현실로 돌아가서 수아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수아는 예전의 수아가 아닐 것이다.. 암 투병으로 인해 조금 달라진 모습일 것이다.. 그는 새로운 수아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는 이상화된 사랑에 얼마나 매달려 있었던 것일까? 그의 마음속에는 복잡한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자신이 만들어낸 완벽한 수아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의 수아도 충분히 사랑할 수 있을까?


그는 마지막으로 MP3 플레이어를 꼭 쥐었다…. 이것마저 태우면 완전히 수아를 잊게 될 것이다…. 그의 손가락이 망설였다…. 망설이다 마지막 결정을 내렸다…. 그는 MP3 플레이어를 화로에 던졌다….


MP3가 타오르면서 병원의 풍경이 유리처럼 깨져나가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진짜 별들이 흐르는 저승의 강이 나타났다…. 석탄 연기는 더욱 무거워지고 은하수 기차는 힘차게 달려갔다…. 그의 심장은 이제 무거움보다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차장은 슬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 강한 의지가 기어이 진짜 길을 열었군요…” 차장의 눈빛에는 알 수 없는 슬픔과 축복이 함께 담겨 있었다.. 그는 지훈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존재였다..


지훈은 망설임 없이 진짜 저승으로 향하는 길을 선택했다… 비록 현실에서의 삶도 살 만하지만,, 그는 은하수 기차 안에서 느꼈던 따뜻함과 위로를 잃고 싶지 않았다…. 그는 환상 속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행복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증거라고 믿었다…. 그의 사랑은 현실적인 완벽함보다는 내면적인 공명에 기반하고 있었다… 기억이란 과거를 재구성하는 과정이고, 현실이란 끊임없이 변화하는 흐름이다… 그는 그 흐름 속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찾기로 결심했다… 은하수 기차는 그에게 단순한 도피처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위한 발판이었다…. 그의 심장은 이제 무거움보다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추억을 태울 때마다 은하수 기차의 석탄 연기는 그의 심장보다 무거워졌다. 이제는 희미한 석탄 연기가 아니라, 폐 속 깊숙이 스며드는 매캐한 고독의 냄새, 혹은 시간의 침식에 의해 서서히 부식되는 쇠붙이의 냄새였다. 차장은 덤덤한 표정으로 지훈을 병실 침대로 안내했다. 하얀 시트 위, 아직 은하수 기차의 석탄 먼지가 희미하게 묻어 있는 듯했다. 마치 오래된 사진처럼 색이 바래가는 현실의 공기가 낯설게 느껴졌다.


병원 창밖은 잿빛으로 스며든 도시 풍경이었다. 라디오에서는 익숙한 광고가 흘러나왔다. ‘스트레스 해소엔 최신형 가상현실! 현실 도피는 이제 선택!’ 아이러니했다. 그는 현실의 조각난 자아를 모아 붙이기 위해 가상현실에 들어왔는데, 그 가상현실마저 현실의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한 또 다른 껍데기라니. 마치 거울 속 거울처럼 끝없이 반복되는 환상의 굴레 같았다. 은하수 기차는 그의 불안을 먹고 자라는 거대한 괴물처럼 느껴졌다.


“1년 전 교통사고로 수아 씨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차장의 말은 메마른 풀잎처럼 가슴을 간지럽혔다. “당신은 사고 후유증으로 깊은 슬픔에 잠겼고,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은하수 기차는 당신의 담당 의사가 개발한 최첨단 가상현실 치료 프로그램 중 하나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지훈은 그 안에 숨겨진 연민과 약간의 안타까움을 느꼈다. 차장 역시 자신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 이 기차에 오른 건 아닐까?


지훈은 침대 머리맡에 놓인 사진들을 바라봤다. 수아의 사진이었다. 웃고 있는 모습, 생각에 잠긴 모습, 함께 찍은 여행 사진들… 기억 속 수아는 완벽했고, 때로는 까다롭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의 수아는 조금 더 인간적이었고, 조금 더 따뜻했다. 그녀의 작은 주름과 어색한 웃음이 문득 그리워졌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이상화된 사랑에 매달려 있었는지 깨달았다. 완벽했던 그녀에게 자신의 결핍을 투영했던 것은 아닐까?


“기차 안에서 만난 승객들은 모두 다른 환자들의 분신입니다.” 차장은 말을 이어갔다. “각자의 슬픔과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죠. 그들은 추억을 태우면서 자신의 고통을 조금씩 치유해 나갑니다.” 그녀는 잠시 침묵하더니 덧붙였다. “하지만 결국 그들이 태우는 것은 추억만이 아닐 겁니다. 자신들의 일부를 태우는 것이겠죠.”


지훈은 생각했다. 그들은 상품처럼 자신의 슬픔을 소비하고 있었던 걸까? 그들의 추억은 단순한 연료였던 걸까? 석탄 연기처럼 스르륵 타오르는 덧없는 시간의 흔적이었던 걸까? 아니면 그 연기는 그들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증거였던 걸까?


그때, 옆 침대에 누워있던 노인이 눈을 떴다. 그는 지훈에게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젊은이, 너무 슬퍼하지 마시오. 추억은 언제나 우리 안에 살아있으니까.” 노인의 눈에는 슬픔보다는 오랜 숙고가 담겨 있었다. 그는 마치 오래된 자장가처럼 지훈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추억은 죽어가는 존재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있는 존재에게 과거를 선물하지.” 노인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말을 이었다.“시간이란 것은 결국 기억이라는 화로에 던져지는 연료와 같으니…”


지훈은 다시 창밖을 바라봤다. 흐릿한 도시 풍경 속에서 작은 꽃 한 송이가 피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콘크리트 건물 틈새에서 피어난 연약하지만 강인한 생명력… 그것은 마치 희망의 상징처럼 보였다. 그는 자신도 그 꽃처럼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 아니면 꽃잎처럼 스르륵 타올라 사라질까?


“선택할 수 있습니다.” 차장이 말했다. “현실로 돌아가서 조금씩 수아 씨를 다시 알아갈 수도 있고, 아니면 마지막 추억을 태우고 진짜 저승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그녀는 잠시 지훈의 눈을 바라보며 속삭였다.“하지만 진정한 저승은 어디일까요? 현실과 환상의 경계는 얼마나 모호할까요?”


지훈은 망설였다. 현실로 돌아간다면 조금씩 수아를 다시 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된 그녀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환상 속에서 느꼈던 따뜻함과 위로를 잃고 싶지 않았다. 그는 기억 속 수아에게 너무 익숙해져 버린 것이다. 마치 오래된 연인의 손길처럼 편안하고 익숙한 그녀의 온기… 하지만 그 온기는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중요한 것은 현실인지 환상인지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느꼈던 감정이었다.. 추억을 태우면서 느꼈던 슬픔, 그리움, 행복… 그것들은 모두 그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들이 그를 살아있게 만들었다는 것을… 기억이란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재구성되는 것이기에, 수아 역시 기억 속에서 끊임없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을…


지훈은 마지막 유언이 담긴 MP3를 집어 들었다.. 수아가 암 투병 중에 녹음했던 메시지였다.. "너무 슬퍼하지 마 오빠야… 난 항상 당신 옆에 있을 거야… 별이 빛나는 밤하늘처럼." 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망설임 없이 MP3를 화로에 던졌다..


MP3가 타오르면서 병원의 풍경이 유리처럼 깨져나가기 시작했다.. 창밖으로는 진짜 별들이 흐르는 저승의 강이 나타났다.. 석탄 연기는 더욱 무거워졌지만, 이제는 무거움보다는 찬란한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은하수 기차는 힘차게 달려갔다…. 그의 심장은 더 이상 슬픔으로 무거워진 것이 아니라, 찬란하게 빛나는 별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저승으로 향하는 길은 쉽지 않았다.. 기억의 파편들이 끊임없이 그의 주위를 맴돌았고, 그는 마치 검은 바다를 헤엄치는 듯한 불안감을 느꼈다.. 은하수 기차 안에서는 다른 승객들의 모습도 희미하게 보였다.. 그들은 각자의 추억을 태우며 고독한 여행을 계속하고 있었다.. 지훈은 그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혼자라는 것을... 그리고 그 혼자라는 것이 바로 삶이라는 것을...


추억을 태울 때마다 은하수 기차의 석탄 연기는, 그의 심장보다 무거워졌다. 이제 남은 것은 MP3 하나, 수아의 목소리가 갇힌 작은 검은 상자였다. 병원 침대에 반쯤 기대어 앉은 지훈은 창밖을 바라봤다. 희미하게 빛나는 도시의 불빛들은 마치 깨진 거울 조각처럼 흩어져 있었다. 차장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여긴 병원입니다… 수아 씨는 살아있어요…’


살아있다. 그 짧은 문장은 지훈의 머릿속을 텅 빈 회랑처럼 만들었다. 그는 그동안 수아를 완전히 잃어버렸다고 믿었다. 그녀의 웃음, 그녀의 습관, 그녀의 모든 것을 기억하려고 애썼지만, 사실은 자신이 만들어낸 이상적인 수아를 쫓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기억 속 수아는 항상 완벽했고, 그는 그 완벽함에 매달려 현실의 수아를 조금씩 잊고 살았다. 시간은 곧 회전하는 나선이었고, 그는 그 나선의 꼭대기에서 완벽한 수아를 붙잡으려 애썼다.


기차 안의 승객들은 여전히 각자의 슬픔을 태우고 있었다. 한 노인은 오래된 가족사진을 화로에 던졌고, 젊은 여성은 찢어진 편지를 태웠다. 그들의 얼굴에는 슬픔조차 희미하게 남아있지 않은 무덤덤함이 감돌았다. 마치 상품처럼 자신의 추억을 소비하며 슬픔을 달래는 현대인의 초상 같았다. 디지털 시대의 슬픔은 아날로그 시대보다 더 가볍고 빠르게 소모되는 것 같았다. SNS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처럼, 슬픔도 클릭 몇 번으로 해결될 수 있는 시대였다. 좋아요는 위안이었지만, 동시에 고독을 증폭시키는 작은 울림이기도 했다.


지훈은 MP3를 손에 쥐었다. 수아가 가장 좋아했던 재즈 선율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항상 이 노래를 들으며 “오빠야, 이 노래 들으면 마치 은하수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아?”라고 말했었다. 그때는 당연하게만 느껴졌던 그녀의 말이 이제는 새롭게 다가왔다. 그녀는 현실에서도 은하수처럼 반짝이는 사람이었는데, 그는 왜 그렇게 완벽한 모습만을 원했던 걸까? 완벽함이란 환상일 뿐이었다. 마치 플라톤의 동굴 속 그림자처럼, 현실의 수아는 끊임없이 변했고 그는 그 변화를 두려워했다.


“현실에서의 삶이 어딘가 모르게 공허하고 메마르게 느껴지는군요.” 차장이 그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가상현실 속에서 당신은 완벽한 수아와 함께였지만, 현실의 수아는 조금 달라졌습니다. 암 투병으로 인해 외모도 성격도 조금 변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차장의 눈빛은 부드러운 석탄 연기처럼 지훈을 감쌌다.


지훈은 차장의 말을 곱씹었다. 달라진 수아… 그는 과연 그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는 완벽한 수아를 너무 오랫동안 갈망해왔다. 그녀의 결점까지 사랑했던 걸까? 아니면 그저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 속에서 위안을 찾았던 걸까? 환상은 때로는 현실보다 더 편안했다. 하지만 환상 속에서 영원히 살 수는 없었다.


그때 그의 눈에 한 가지 독특한 풍경이 들어왔다. 기차 객실 벽면에 설치된 TV 화면에서 뉴스 속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최근 급증하는 정신병 환자들, 가상현실 치료 효과 입증!’ 자막 아래에는 은하수 기차와 똑같은 풍경의 가상현실 치료 장면이 나타났다. 환자들이 VR 헤드셋을 쓰고 은하수 기차 안에서 슬픔을 태우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지훈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반전이군요.” 지훈은 나지막이 말했다. “모든 것이 가상현실이었다니…”


차장은 미소를 지었다. “당신의 의지가 없었다면 이 길을 열 수도 없었겠죠. 당신은 추억이라는 연료로 달리는 기차를 통해 자신의 집착을 끊고 새로운 시작을 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차장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을 이었다.“인간은 결국 스스로 만들어낸 감옥 안에 살죠.. 그리고 그 감옥을 탈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당신은 그 노력의 과정 속에 있었던 겁니다.”


지훈은 MP3를 다시 한번 손에 쥐었다. 이제 MP3는 단순한 추억 저장소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집착과 불안, 그리고 진정한 사랑에 대한 질문을 담고 있는 작은 우주였다.. MP3에서 흘러나오는 재즈 선율은 더 이상 위안만이 아닌.. 새로운 도전을 알리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그 순간 MP3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석탄 연기는 더욱 짙어져 그의 심장을 휘감았지만, 더 이상 무겁게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하고 부드러운 포옹처럼 느껴졌다.. 연기의 색깔은 깊이를 알 수 없는 밤하늘처럼 검푸르고 신비로웠다.. 기차가 힘차게 달려나갔다.. 창밖으로는 진짜 별들이 흐르는 저승의 강이 나타났다.. 은하수 기차는 종착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저승의 강 위에는 희미한 빛깔의 꽃잎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마치 기억의 조각들이 부서져 내리는 듯했다..


눈을 떠보니 지훈은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하지만 이전과는 달랐다.. 그의 눈에는 희망과 설렘이 가득했다.. 그는 이제 현실 속에서 수아를 다시 만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조금 달라진 모습일지라도… 그는 더 이상 완벽한 수아를 찾으려 애쓰지 않았다.. 그녀가 가진 모든 모습을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때 병실 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그녀는 예전보다 조금 야윈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머리카락은 짧게 잘려 있었고,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와 함께 깊은 사색이 어려 있었다.. 바로 수아였다.. 그녀는 지훈에게 다가와 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오랜만이야, 오빠야…” 그녀의 목소리는 예전보다 조금 더 낮고 부드러웠지만, 지훈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율처럼 들렸다... “이제 다시 시작하자.”


추억을 태울 때마다 은하수 기차의 석탄 연기는, 그의 심장보다 무거워졌다. 마지막 MP3 플레이어가 화로 속으로 던져지는 순간, 연기는 짙어져 마치 밤하늘을 삼킨 듯했다. 병원 침대에 기대앉은 지훈은 눈을 감았다. 차장의 말, “이게 가짜라 해도 내겐 유일한 진실이었어…”가 귓가에 맴돌았다. 가짜일까? 진짜일까? 어쩌면 둘 다였을지도 모른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는 늘 모호했고, 중요한 것은 그 모호함 속에서 자신이 느꼈던 감정의 진실이었다.


MP3 안에는 수아의 마지막 유언이 담겨 있었다. “너무 슬퍼하지 마, 오빠야… 난 항상 당신 옆에 있을 거야.” 그 메시지를 태우는 건, 수아를 완전히 잊는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지훈에게 그것은 잊음이 아닌, 더 깊은 곳으로 품는 행위였다. 그의 기억 속 수아는 완벽했지만, 때로는 까다롭기도 했다. 현실의 수아는 약간의 결점이 있었지만, 따뜻하고 유머러스했다. 그는 이상화된 사랑에 얼마나 매달려 있었는지 깨달았다. 이제 그 모든 걸 내려놓고, 그녀를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이다. MP3에는 수아의 목소리만이 아니라, 지훈이 젊은 시절 꿈꾸던 음악가의 모습, 아버지와의 마지막 다툼, 대학 시절의 풋풋한 설렘까지 담겨 있었다. 그의 삶 전체가 응축된 작은 디지털 세계를 태우는 것은 곧 자신의 과거와 작별하는 의식과 같았다.


병원의 풍경이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하얀 벽은 빛바랜 필름처럼 일렁이고, 차가운 형광등은 마치 차가운 디지털 눈처럼 지훈을 응시했다. 끊임없이 울려 퍼지던 환풍기 소리는 도시의 백색 소음처럼 그의 뇌리를 파고들었다. 모든 것이 별빛으로 변하며 창밖으로 쏟아졌다. 저승의 강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강물은 은하수처럼 빛났고, 그 위로 수많은 영혼들이 조용히 흘러가고 있었다. 석탄 연기는 더욱 무거워졌지만, 이제는 슬픔만이 아닌 연결의 무게였다. 수아와의 추억이라는 연료를 태워 얻은, 고독하지만 아름다운 여정의 무게였다.


차장은 슬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강한 의지가 기어이 진짜 길을 열었군요.” 그는 지훈에게 손을 내밀었다. “현실로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당신은 자신만의 저승을 선택했습니다.” 지훈은 망설임 없이 차장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은 따뜻했고, 손끝에서 희미한 온기가 스며들었다.. 차장의 손에는 오래된 먼지 냄새와 함께 희미한 커피 향이 배어 있었다.. 그는 수많은 승객들의 손을 잡아왔다.. 그의 눈빛에는 오랜 슬픔과 따뜻함이 공존했다.. "저승이란 죽음의 종착역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지요." 차장은 나지막이 덧붙였다..


기차는 힘차게 달려갔다. 객실 안에는 다른 승객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들은 모두 각자의 추억을 태우며 저승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떤 이들은 슬픈 표정으로, 어떤 이들은 담담한 표정으로, 또 어떤 이들은 희망에 찬 표정으로… 그들의 다양한 모습은 삶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는 듯했다. 한 젊은 여성은 끊임없이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하며 마지막 인스타그램 피드를 확인하고 있었다.. 한 노인은 오래된 가족사진을 품에 안고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한 사업가는 서류 가방에서 계약서를 꺼내 마지막 거래 결과를 확인하고 있었다.. 지훈은 문득 생각했다. 우리는 왜 그렇게 슬픔을 두려워 할까? 슬픔이야말로 우리를 더욱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아름다운 감정인데 말이다. 디지털 시대의 편리함 속에 숨겨진 고독과 불안… 자본주의적 경쟁 속에서 잃어버린 진정한 자아… 슬픔은 우리를 성찰하게 만들고 성장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저승의 종착역이 가까워질수록 별빛은 더욱 찬란하게 빛났다. 기차는 부드럽게 멈춰 섰고, 지훈은 객실에서 내려 천천히 발을 내딛었다. 눈앞에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푸른 잔디밭과 아름다운 꽃들, 그리고 저 멀리 반짝이는 호수가 보였다.. 호숫가에는 수아가 서 있었다.. 그녀는 예전보다 조금 달라져 있었다.. 머리카락은 조금 더 길어졌고, 얼굴은 더욱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미소는 여전했다.. 그녀의 미소는 마치 오래된 사진 속에서 막 걸어나온 듯 따뜻하고 포근했다...


“오랜만이야, 오빠야.”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예전보다 조금 더 낮고 부드러웠지만, 지훈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율처럼 들렸다...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따뜻하게 포옹했다.“이제 다시 시작하자.” 그녀의 손길은 따뜻했고, 그녀의 눈빛은 깊었다... "여기서는 시간도 공간도 의미가 없어." 수아가 속삭였다.. "우리는 모든 가능성을 탐험할 수 있어."


지훈은 수아와 함께 호숫가를 걸었다... 별빛 아래 두 사람은 마치 오랜 연인처럼 다정하게 속삭였다... 그들의 대화는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들의 웃음소리는 저승의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슬픔에 잠겨 있지 않았다…. 그는 그녀와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디지털 시대의 소외감과 자본주의적 삶의 부조리… 그는 이제 모든 것을 초월하여 진정한 행복을 찾았다…. 그는 이곳에서 다시 음악가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수아는 그의 옆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예술 작품은 저승의 풍경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었다….


마지막 석탄 연기가 완전히 사라지고 은하수만이 찬란하게 빛났다... 은하수 기차는 새로운 승객들을 기다리며 다시 출발할 준비를 했다... 그리고 지훈과 수아는 영원히 함께 저승에서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었다… 그들은 언젠가 다시 태어나 다른 모습으로 만나 서로를 다시 사랑할 것이다… 영원히 순환하는 기억의 뫼비우스띠 속에서….


추억을 태울 때마다 은하수 기차의 석탄 연기는, 그의 심장보다 무거워졌다. 마지막 MP3, 수아와 함께 듣던 데이비드 흄의 강연이 화로 속으로 사라지는 순간, 병원의 하얀 벽은 마치 오래된 사진처럼 갈라져 나갔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는 유리 조각처럼 흩뿌려졌고, 창밖은 더 이상 흐릿한 도시 풍경이 아닌, 별들이 춤추는 저승의 강으로 변모했다. 차장의 말대로, 그의 강한 의지가 기어이 진짜 길을 열어젖힌 것이다. 그 의지는 때로는 집착이었지만, 결국 그를 이 곳으로 이끌었다.


기차는 힘차게 달려갔다. 석탄 연기는 완전히 사라지고, 은하수는 찬란하게 빛났다. 그 빛은 단순한 별들의 집합이 아니었다. 수아의 웃음, 그녀의 눈빛, 그녀가 좋아했던 ‘별 헤는 밤’의 멜로디, 그리고 그녀가 SNS에 남겼던 짧은 시 구절들이 녹아든 빛이었다. 지훈은 이제 완벽히 기억 속 수아와 현실의 수아 사이의 간극을 넘어섰다. 그녀는 완벽했고, 결점도 있었고, 그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오래된 사진처럼 약간 바랜 그녀의 모습은, 마치 어머니가 늘 입던 자주색 스웨터를 입은 것처럼 편안하고 깊은 위로를 건넸다. 그 스웨터는 수아가 가장 추웠던 겨울, 지훈이 선물했던 것이었다.


종착역에 다다르자, 기차는 부드럽게 멈춰 섰다. 문이 열리고, 지훈은 떨리는 발걸음으로 발을 내딛었다. 저승은 생각보다 고요했다. 은은한 달빛 아래 펼쳐진 들판에는 수많은 영혼들이 유유히 거닐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슬픔보다는 평온함이 깃들어 있었다. 마치 오랜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 같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들의 눈빛에는 각자의 삶에서 남겨진 흔적들이 어른거렸다. 어떤 영혼은 손에 스마트폰을 들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검색하고 있었고, 어떤 영혼은 TV 화면 속 뉴스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그때, 지훈의 눈에 익숙한 미소가 번졌다. 수아가 그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환갑을 바라보는 어머니가 입던 자주색 스웨터를 입고 있었고, 머리카락에는 은빛 가닥들이 섞여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반짝였다. 마치 오랫동안 기다려온 듯 따뜻하고 애틋했다. 은빛 머리카락은 그녀가 삶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랑과 슬픔을 경험했는지 보여주는 듯 했다..


“오빠야, 드디어 왔네.”


수아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이전보다 훨씬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마치 오래된 비단처럼 매끄러웠다. All of his anxieties melted away when she held his hand.. “너무 오래 걸렸어.”


“미안해… 조금 집착했었나 봐.”


“괜찮아. 그게 바로 사랑이니까.”


그들은 말이 없어도 서로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수아는 지훈을 저승의 들판으로 이끌었다. 그곳에는 작은 집 한 채가 서 있었다. 집 앞 정원에는 수아가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라벤더가 만개해 있었다.. 라벤더 향기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라벤더 꽃잎 위에는 작은 이슬방울들이 반짝였다..


“우리 여기서 같이 살자.”


“응, 좋아.”


그들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소박하지만 아늑한 공간이었다.. 벽난로에서는 은은한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수아가 직접 만든 따뜻한 차를 마시며 그들은 지난 시간을 이야기했다… 환상 속 기차 여행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현실에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 TV에서는 끊임없이 뉴스 속보가 흘러나왔고, 창밖에서는 영혼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세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좀 더 느리고 평온하게 시간이 흘러가는 듯 했다….


하지만 지훈의 마음 한구석에는 미묘한 불안감이 남아있었다… 이 모든 것이 진짜일까? 아니면 또 다른 환상일까? 그는 차장에게 물었다… “저희는 이제 영원히 여기에서 살게 되는 건가요?”


차장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영원이라는 건 존재하는 걸까?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 행복하게 사는 것만이 중요하지 않을까?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끊임없이 순환하는 나선이지… 너희도 언젠가는 다시 새로운 승객들을 기다리는 기차에 오르게 될 거야.”


그 순간 지훈은 깨달았다… 중요한 것은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있느냐라는 것을… 그는 수아의 손을 더욱 꽉 잡았다… 석탄 연기처럼 무거웠던 그의 심장은 이제 가볍게 춤추고 있었다…. 마치 오래된 레코드판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음악처럼…. 그는 이제 더 이상 과거에 갇혀 있지 않았다.. 그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미래를 꿈꾸고 있었다….


별 헤는 밤이었다... 찬란한 별빛 아래, 지훈과 수아는 서로에게 기대어 앉아 영원히 함께 할 미래를 꿈꿨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은하수 기차는 다시 새로운 승객들을 기다리고 있었고, 또 다른 추억들이 연료가 되어 달리기 시작할 것이다…. 순환하는 기억의 뫼비우스띠 속에서…. 그리고 언젠가 지훈과 수아도 다시 태어나 다른 모습으로 만나 서로를 다시 사랑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삶이고, 죽음이며, 사랑이다…. 저 멀리 다른 승객들을 태우기 위해 은하수 기차가 다시 힘차게 출발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희망과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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