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초, 비행기 컨트롤을 잃는 데 걸리는 시간
파일럿으로 살다 보면 동료 파일럿의 부고를 듣는 일이 생긴다.
나이가 들어 은퇴한 파일럿의 죽음은 슬프지만 자연스러운 일
하지만 젊은 파일럿이 비행을 하다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얼굴 몇 번 보고 이름을 기억할까 말까 한 사람인데도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게 나였을 수도 있어서 그럴까?
오늘은 등골이 오싹했던 나의 비행 경험에 대해서 말해볼까 한다
비행 교관으로 근무하던 당시,
우리 학교는 여름이면 중국에서 온 고등학생이 단체 비행 체험을 하러 왔다. 관광버스에서 50명 남짓한 학생들이 우르르 내리면 그들을 학교로 안내해 순서대로 한 명씩 비행기에 태워 이륙한 뒤 공항 한 바퀴를 돌고 착륙하는 식이었다. 학교에 비행기가 네 대 있는데 이 날은 비행기와 교관이 총동원된다. 네 시간 안에 12명 정도의 학생을 태우려면 한 학생에게 할당되는 시간은 약 15~20분. 그 안에 학생을 태우고, 간단하게 비행기 조종 방법에 대해서 알려주고, 관제사에게 교신을 하고, 지상활주(taxi)를 하고, 이륙허가를 받고, 이륙, 선회, 어프로치, 착륙, 택시, 학생을 내리고 태우기를 반복한다.
생전 처음 보는 작은 비행기에 타는 학생들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한다. 그러다가 그들은 이륙을 하고 창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에 환하게 웃음을 짓고 비행기 조종간을 자기가 직접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하기도 한다. 그들의 솔직한 반응을 옆에서 지켜보는 재미가 쏠쏠하기에 나는 고단하지만 나름 이런 행사를 즐거워했다.
2018년 여름,
오늘도 단체 비행체험이 있는 날이다.
하지만 아침부터 구름이 낮게 온통 하늘을 덮고 있었다.
평소의 학교 규정이라면 이 정도의 구름의 높이라면 비행을 취소했겠지만 그날은 달랐다.
학교 매니저가 체험 비행을 감행하게 교관들은 밀어붙였고, 우리는 둥글게 모여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현재 구름의 높이가 1200ft 정도 되니까 우선 비행을 하고 1000ft으로 내려오면 비행을 멈추는 걸로 합시다."
좋은 결정이 아니란 건 모두 알았다. 그러나 항공법에 어긋나지 않고, 공항공역 내에서의 짧은 장주비행(Circuit)이기에 날씨가 안 좋아지면 바로 착륙하면 되니까,라고 생각하고 비행을 갔다.
학생을 태우고 활주로에 들어선 나는 이륙허가를 받고 엔진출력을 올렸다.
장주비행(Circuit)은 보통 이륙한 활주로를 기준으로 1000ft 높이로 올라감과 동시에 직사각형 모양의 패턴을 만들고 다시 착륙을 하는 걸 말한다. 주로 학생 파일럿들이 이륙과 착륙을 연습하기 위해 이 장주비행을 한다. 오늘은 구름의 높이가 낮기 때문에 1000ft 보다 낮은 고도에서 이 장주비행을 해야 한다.
이륙을 하고 고도를 높이며 왼쪽으로 90도 턴을 하고, 다시 90도 턴을 하는데 갑자기 앞이 보이지 않았다. 구름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너무 당황스러웠고 공포감이 몰려왔다.
이때 가장 큰 문제는 비행을 할 때 기준으로 삼는 지평선을 잃어버려 순식간에 공간지각능력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행기가 뒤집어 있는지 똑바로 있는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나는 계기판을 보고 비행기의 방향과 고도를 맞춰 straight and level(수평직진비행) 상태로 만들었다.
여전히 구름 속이다.
‘아까 구름이 이렇지 않았는데...’
‘여기가 유난히 구름이 낮았던 곳이라서 그래’
그 짧은 몇 초의 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내 옆에는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학생이 앉아 있다.
여름 캠프로 캐나다에 와서 한 달 동안 영어를 배우고 중국에 돌아가기 전에 경비행기 체험을 하고 있는 순진한 학생.
학생도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했는지 나에게 서투른 영어로 말했다 "Is everything okay?" (무슨 문제 있어요?)
나는 최대한 나의 불안함을 억누르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Yes, it’s okay, no problem"(아니, 괜찮아. 별일 아니야)
‘내려가자’
나는 고도를 낮췄고 잠시 후 구름에 가려졌던 시야가 트였다.
땅이 보인다.
지평선이 보인다.
‘휴....’
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1954년에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평선을 기준으로 비행을 하는 시계비행(VFR)에 익숙한 파일럿이 실수로 구름 속에 들어갔을 때 공간지각능력을 상실하고 비행기의 컨트롤을 잃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178초, 3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그만큼 교육과 경험 없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 건 위험하다.
지금은 계기비행(IFR)을 하는 에어라인 파일럿이 되어서 구름 속에서 비행을 하는 게 익숙하지만, 안개가 자욱하게 낀 공항의 활주로에 착륙하는 건 모든 파일럿에게 큰 스트레스다.
그날의 실수로 나는 더 좋은 교관이 되었다, 고 생각한다.
가끔 뭉게구름이 몽실몽실 하나씩 떠 있는 날
나는 학생들에게 구름 밑에 살짝 들어가 찰나동안 시야를 잃는 경험을 하게 한다.
그리고 말한다.
"뒤지기 싫으면 구름에서 떨어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