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온전히 바칠 만한 꿈
고등학교에 입학하자마자 나는 유별나게 공부를 했다.
학교 기숙사는 소등시간이 정해져 있어서 밤이면 이불 밑에서 몰래 공부를 했고 이도 성에 차지 않아 급기야 기숙사를 나와 학교 앞 독서실에서 살기 시작했다. 딱히 무엇이 되고 싶다는 구체적인 목표는 없었지만 성공하고 싶었다. 더 많은 성공의 기회를 갖기 위해 명문대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으니 사립대에 가는 건 꿈도 못꿨고 그래서 생각한 게 서울대.
막연하게 서울대에 가기만 하면 내 인생이 바뀔 것 같았다.
가난의 굴레에 벗어나 훨씬 더 풍족하고 밝은 미래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고등학교 2학년,
집안 사정이 더 어려워졌다.
아빠가 작은아버지가 하는 사업을 도와주겠다고 집을 떠나 낯선 도시에서 바지사장이 되었고, 사업이 망하자 아빠는 졸지에 신용불량자가 되어 돌아왔다. 불안한 가정환경과 사춘기가 겹쳐 나는 별안간 공부에 흥미를 잃었다. 나보다 공부를 못하던 중학교 친구는 의사 아버지를 두어서 300만원 짜리 과외를 받고 과학고에 갔다. 나는 왜 가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나 내가 가진 잠재력을 충분히 펼치지 못하는지 한탄 스러웠다. 인생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고, 오늘 죽으나 내일 죽으나 별로 다를게 없다는 생각을 하곤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책 한 권이 내 손에 들어왔다.
이원익의 ‘비상’
수업시간이었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 책에 빠져들었고 책을 덮는 순간 나의 세상은 이미 바뀌어 있었다. 이 책은 어렸을 때부터 전투기 조종사가 되고 싶었지만 신체적 결함 때문에 좌절을 겪은 한 남자가, 새로운 꿈을 찾아 앞으로 전진하며 자신만의 인생을 만들어가고 있는 저자의 자서전이다.
'젊은이만이 범할 수 있는 가장 큰 죄악은 평범해지는 것이다'
이 문구가 단숨에 나를 사로잡았고 나의 인생 모토가 되었다.
내가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있었을 때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별 의미 없는 인생,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재미있고 특별하게 살아보자!'라는 생각을 갖게 했다.
나도 파일럿이 되고 싶었다.
갑자기 꿈이 생겼다.
당시 안경을 쓰고 있던 나는 자연시력이 파일럿 기준에 이 꿈은 금방 꺾이고 말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인생의 목적이 생겼다.
‘나는 절대 평범하게 살지 않을거야’
그때부터였다.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다는 갈망, 나와 다른 언어를 쓰고 다른 환경에서 자란, 나와 눈동자 색깔이 다른 이들을 만나고 그들과 친구과 되고 싶다는 꿈이 생긴 게.
그러려면 영어를 해야지.
그때부터 영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한시간 씩 영어단어를 외우기 시작했고
화장실에 갈때나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할 때는 영어로 나에게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영향 이었을까.
나는 영어영문과에 진학 했다.
당연히 서울대는 가지 못했다.
1학년을 마치고 대학교 생활에 회의감이 들어 휴학을 했다.
경기도 이천에 있는 한 골프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땡볕 아래서 모은 돈으로 생애 첫 비행기 티켓을 샀다.
몽골 울란바토르에 가는 싱가포르 항공사의 비행기였다.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이륙을 위해 엔진출력을 올렸다.
나는 비행기의 엔진소리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이륙 직전 몸이 좌석에 달라붙어 꼼짝도 못하게 될 때 생각했다.
이대로 죽어도 좋다고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대신 7년 짜리 세계여행 계획을 세웠다.
워킹홀리데이와 배낭여행을 번갈아 하며 지구를 한바퀴 돌 생각이었다.
캐나다에서 워킹홀리데이로 1년 동안 모은 돈으로 중남미를 여행하고
아일랜드에서 1년 일하고 유럽을 여행하고
영국에서 1년 일하고 아프리카를 여행하고
홍콩에서 1년 일하고 아시아를 여행하고...
그러다가
늙고 지치고 힘들면 한국으로 돌아가야지.
한국에서는 영어만 잘하면 어떻게든 먹고는 사니까, 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2012년 여름, 캐나다에 도착했고 모험심이 강했던 나는 진정한 캐나다인들의 삶을 체험 하겠다고 시골 중에 깡 시골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동네 사랑방 같은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새 종업원이 왔대~’
동네에 소문이 쫙 퍼졌고, 첫 출근날 식당은 커피를 마신다는 핑계로 내 얼굴을 보러 온 동네 사람들로 북적였다.
아침 8시,
동네 사람들이 아침을 시작하는 곳이다.
하나 둘 테이블을 잡고 앉는다.
특이한 점은 암묵적으로 각자 정해놓은 자리가 있다는 것이다.
1번 테이블에 앉는 피터 할아버지는 젊었을 때 동네 여심을 꽤 흔들어 놓았는데, 그 덕분에 결혼을 네 번이나 했다. 4번 테이블에 앉는 밥 할아버지는 커피가 떨어지면 숟가락으로 머그컵을 땅땅 때리는 데 그게 은근히 기분이 나빠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7번 테이블은 동네에서 상류층으로 보이고 싶은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고고히 수다를 떠는 곳이다.
나는 바쁘지 않을 때는 그들과 소소하게 대화를 나누곤 했는데, 어느날 우연히 산책을 하다 본 경비행기 얘기를 했다.
그때 피터 할아버지가 말했다.
"예전에 우리 동네에 비행 동호회가 있었어. 나도 경비행기 한대가 있어서 몰고는 했지."
이 동네는 대부분 카놀라 농사를 짓는 마을인데 한 농부가 가진 땅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크다.
평균 농장 사이즈가 1766에이커인데 이는 여의도 섬 사이즈와 비슷하다. 이 거대한 땅에 살충제나 비료를 뿌리기 위해서 농부들은 오래 전부터 경비행기를 사용했고 이를 크롭 더스팅(crop dusting)이라고 한다. 따라서 농부가 경비행기를 소유하고 집 뒷마당에 땅을 다져서 작은 활주로를 만들어 비행을 하는 게 흔한 일이었다.
나는 캐나다 농사의 스케일에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저렇게 나이드신 양반이 캐나다에서 합법적으로 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다면 젊은 나도 당연히 할 수 있지 않을까?’
고등학생 때 시력 때문에 항공대 진학을 포기해야 했던 나에게 새로운 기회가 온 것 같아 가슴이 뛰었다.
캐나다에서 파일럿이 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 낯선 땅에서 나의 어릴적 꿈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기뻤다.
드디어 나에게 꿈이 생겼다.
열심히 좇을 만한 꿈
내 인생을 온전히 바칠 만한 꿈
파일럿이 되고나서 세계 여행을 하지 뭐,
이렇게 나는 계획을 수정했다.
캐나다에서 파일럿이 되는 경로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항공대학교에 진학해서 자격증 취득과 함께 학위를 받는 것, 다른 하나는 사설비행학교에 등록해서 자격증 취득만 하는 것이다. 항공대에 입학하려면 입학 시험에 통과해야하고 무엇보다 비싼 학비를 일시불로 내야 한다. 사설 비행학교에서 비행을 하면 별다른 입학 시험이 없고 비행을 할 때마다 수업료를 지불하면 된다. 취업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격증을 따는데 6~8천만원이 필요하고, 자격증을 취득하고 캐나다에서 파일럿으로 취업을 하려면 영주권이 필요하다.
당시 내 수중에 있던 돈은 고작 500만원 남짓
돈과 영주권이 필요하다.
항공대에 입학하는 건 돈 없는 나에게 무리다.
사설비행학교를 다니면 지금처럼 식당에서 일을 하고 돈을 벌면서 비행공부를 병행할 수 있다.
식당에서 열심히 일하면 영주권도 딸 수 있다.
식당에서 일하면 팁도 잘 받기 때문에 돈도 모을 수 있다.
한 달에 저축할 수 있는 돈은 200만원, 일 년 이면 2500만원, 3년 이면 7천만원
충분히 가능하다.
할 수 있다!
그렇게 나의 캐나다 파일럿 도전기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