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참 불공평하다.
“수지야, 다정이가 죽었다”
수화기 너머 엄마의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사촌동생 다정이...
나보다 9살인가 어렸던가...?
모델 같이 키가 크고 늘씬했던 아이
내가 지금 35살이니까 다정이는 20대 중반이었다.
그런 그녀가 죽었다고?
그것도 스스로 목을 매서?
얼떨떨했다.
엄마와 같이 전화기를 붙들고 한참을 울다가 전화를 끊었다.
다음날 비행이 있었던 나는 매니저에게 전화해 소식을 전하고 당분간 좀 쉬어야겠다고 말했다. 그는 위로와 함께 필요한 만큼 얼마든지 시간을 가지라고 했다.
다정이는 둘째아버지의 막내딸이었다.
위로 오빠가 둘이 있는 다섯 가족.
적어도 내가 아주 어렸을 때는...
그러다가 넷이 되었다.
둘째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다.
생각해 보니 그때 그녀의 나이가 지금 내 나이 30대 후반 정도였다.
엄마 없이 유년 시절을 보낸 그들의 인생이 어땠을지 나는 감히 짐작도 할 수 없다.
거기다가 둘째아버지도 온전하지 않으셨다.
약간의 정신질환이 있었다.
어린 자식들을 돌보지 않았고
마땅한 직업이 없었고
집에 쓰레기를 모았고
고집이 센 외골수였다.
삼 남매는 스스로를 돌보며 컸고 성인이 되어서는 아버지와 떨어져 살았다.
엄마를 통해 간간이 소식을 전해 듣던 나는 항상 그들이 짠하고 안타까웠다.
허나 내 앞길을 찾느라 고군분투하던 나에게 그들은 머릿속에서 쉽게 잊혀졌다.
다정이가 죽기 6개월 전
“수지야, 둘째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는 얼떨떨한 상태로 전화를 끊었다.
어떠한 감정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멍했다.
내가 아는 사람이지만 잘 알지 못하는 사람
그동안 왕래가 적어서일까? 그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없어서일까?
아니면 속으로 내가 은근히 그를 미워하고 있어서일까?
나는 차분했고 그래서 괜찮다고 생각했다.
며칠 뒤 밤 비행 스케줄이 있었다.
당시 내가 근무하던 회사는 아마존과 계약을 맺고 밴쿠버에서 밤에 출발해 캘거리에서 짐을 싣고 빅토리아에 내리는 비행업무를 담당하였다.
평소처럼 저녁 9시쯤 출근을 했다. 비행기 점검을 하고 날씨와 경로, 공지사항 등을 확인하고 기장과 함께 비행기에 탔다.
밤이라 밴쿠버 공항은 조용했다.
하늘과 땅의 경계가 구분이 안 되는 어두움
공항 곳곳에 길을 알리는 노랑, 파랑, 하양 조명들 만이 우리의 시야를 밝히고 있었다.
“Cleared for take-off”
이륙 인가를 받자 비행기는 런웨이를 밝힌 조명을 점점 빠르게 밟고 지나갔고 서서히 지면을 벗어나 하늘로 향했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도로의 가로등과, 자동차 전조등과 빌딩의 불빛으로부터 멀어진다.
어둠과 우주에 점점 더 가까워진다.
라디오로 들려오는 관제사의 목소리도 잦아든다.
칠흑 같은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보며 '오늘따라 유난히 별이 밝네...'라고 생각했다.
그때 문득,
그가 생각났다.
학비 낼 돈이 없어서 매번 고등학교 교실에서 쫓겨나야 했던 그
30대 젊은 나이에 사랑하는 사람을 땅에 묻어야 했던 그
어린 피붙이 자식 셋과 이 세상에 덩그러니 남겨졌던 그
정상과 비정상 사이에서 혼란스러웠을 그
그의 인생을 곰곰이 어려보니
한없이 슬펐다.
이토록 처량한 인생을 살았구나
그는
옆에 앉은 기장이 볼까 눈물을 꾹꾹 삼키며 생각을 떨쳐내려고 애썼다.
밤이어서 다행이었다.
인생은 참 불공평하다.
나는 왜 이런 가정에서 이런 외모로 이런 지능으로 태어나서 이 모양 이 꼴인 거야,라고 한탄할 때 누군가에게는 이 모양 이 꼴이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 온다.
‘엄마’를 부르면서 자랄 수 있었던 내가,
밥솥에 항상 흰쌀밥이 있던 집이,
얇은 먼지가 쌓인 우리 집 거실이,
다정이에게는 축복이었겠지.
둘째아버지는 신장투석을 하지 않아 돌아가셨다.
그는 신장기능 이상으로 매주 병원에 한두 차례 방문해 신장투석을 받아야 했는데 어느 날 다정이와 말다툼을 한 뒤 기분이 상해 병원에 가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결국 사망했다.
다정이는 아버지의 사망 이후 죄책감에 시달리다 6개월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큰아버지와 큰어머니가 목을 맨 그녀의 시체를 처음 발견했다고 한다.
당시 다정이의 큰오빠는 군대에 있었고 다정이의 작은오빠는 호주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다정이는 혼자였다.
아빠를 잃었을 때도
자기 자신을 놓았을 때도
나는 다정이의 죽음 이후로 조금 변했다.
평소에 내가 당연히 누리던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함을 더 많이 자주 느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정이의 몫까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