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시골마을에서 10년 전의 나와 마주치다
“어머, 이 시골에서 뭐 하고 계세요?”
반가움과 동질감이 동시에 내 입에서 터져 나왔다.
“워킹홀리데이로 영주권 받으려고 왔어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말했다.
Whitehorse,
캐나다 땅이라고는 하지만 알래스카와 더 가까워 비행기가 회항을 하게 되면 앵커리지로 가야 하는 곳.
어젯밤 밴쿠버에서 화이트호스로 가는 막차를 운행한 나는 자정이 지나서야 호텔에 도착했다. 출출한 배를 부여잡고 침대에 누워 이 근처에는 어떤 맛집이 있나 구글 맵을 펼쳤다. 호텔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에 통통하게 부푼 크루아상을 파는 카페를 발견했다. 내일 아침 출근 전에 갓 구운 빵을 사서 크루들이랑 아침으로 먹어야겠다. 설레는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새벽안개가 아직 걷히지 않은 시간,
쌀쌀한 공기에 발걸음을 서둘렀다.
카페 문을 여니 그녀가 있었다.
영어로 친절하게 나를 맞았지만 한국인으로 보이는 여자가 파일럿 유니폼을 입고 이 새벽에 나타났으니 그녀의 눈동자도 살짝 커질만했다.
나는 시나몬 번과 커피를 주문하면서 그녀를 조금 더 유심히 보았다.
둥근 얼굴, 밝은 피부톤, 한 듯 안 한 듯 자연스러운 화장.
그녀가 한국인이란 걸 직감했다.
실례가 될 수 있는 걸 알지만 그보다는 반가움이 더 클 거라 생각해서 말을 걸었다.
“Are you Korean?”
“YES!!!!”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대화는 주문한 커피가 나오고 내 뒤의 손님이 슬쩍 눈치를 줄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영주권을 목표로 캐나다에 왔다고 한다.
시골에서 취업을 하면 영주권을 받을 수 있는 확률이 높다는 걸 알고 한국에서 미리 일자리를 구해 이 낯선 마을에 도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부지고 생활력 강해 보이는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녀에게서 10년 전 나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캐나다 시골에서의 삶은 정말 힘들다.
우선 겨울이 정말 길다.
일 년 중 6개월이 겨울이고 추운 날에는 영하 40도까지 내려간다.
그때는 학교도 문을 닫는다.
여름은 아름답지만 찰나에 지나간다.
우리 같은 이방인에게 캐나다 시골은 더욱 척박하다.
한국 식재료가 매우 귀하다.
물가도 정말 비싸다.
마음 터놓고 대화할 친구를 사귀기 어렵다.
동네가 작아서 소문이 빨리 퍼진다.
그러다 보니 점점 나를 가두게 된다.
정신적, 물리적, 심리적으로 감옥에 갇힌 느낌이다.
사스카츄완 시골에 살 때 나의 유일한 낙은 당시 미국에서 유학을 하던 단짝 친구와 주기적으로 하던 영상통화였다.
내가 입고 있던 파일럿 유니폼을 보고 그녀가 말했다.
영주권을 받고 나면 그녀도 내가 다니는 항공사에서 승무원으로 일하고 싶다고
그 꿈이 지금의 현실과는 너무 멀게 느껴지는지 아련하게 말했다.
그녀에게 조금이라고 힘이 되고 싶어 10년 전 나의 이야기를 해줬다.
한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한 뒤 맨땅에 헤딩하듯 캐나다에 워킹홀리데이로 왔던 내가 파일럿의 꿈을 꾸고 지금은 그 꿈에 그리던 삶을 살고 있다고.
그러니까 너도 할 수 있다고.
캐나다 시골마을 곳곳에 한국인들의 자취가 있다.
우리가 태어나고 자란 한국이라는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더 나은 미래를 꿈꿨던 이들.
자신의 인생을 타고난 환경에 맞기길 거부한 이들.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며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는 이들.
닥쳐오는 시련과 도전을 온몸으로 맞으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전진하는 이들.
욕심이 많고 긍정적이고 진취적이고 독립적인 이들.
오늘도 지구 어딘가에서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모든 이들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