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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후버만,

책도둑(1)

by going solo

(커버이미지: 네이버)

마커스 주삭 지음/ 정영목 옮김/문학동네





그는 꽤나 실력 있는 칠장이입니다. 하지만 가난합니다. 아코디언 연주도 하고요. 독일군으로 1차 대전에 참전했던 경력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사람을 잘 알아봅니다. 고요한 자신의 성품으로 사람을 보기 때문일까요, 그는 종종 사람에게 스며듭니다.


그날, 자신의 양딸이 될 여자애를 처음으로 보았을 때도 그랬을 겁니다. 며칠 전 생모와 기약 없는 이별을 하고 동행하던 동생이 기차에서 죽고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운명을 맡겨야 하는 열 살짜리 아이 얼굴에 울음이 가득했을 때 구경꾼들의 웅성거림을 고요히 가르며 그가 나섭니다. 그는 은빛 눈으로 아이를 내려 보았고 몸을 숙여 아이의 손을 잡아 자신의 판잣집으로 데리고 들어갑니다. 그가 보여준 고요함의 태도에 아이는 울음을 그치진 않았지만 아득했던 불행으로부터 ‘구원’의 희망을 갖게 됩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주 희망을 주는 사람입니다.


엄마가 될 여자의 입에서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욕설을 매질처럼 맞으며 낯선 욕조 앞에서 버티는 아이의 방패가 되어 줍니다. “담배 말 줄 아니?” 뜬금없이 담배 마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그의 엉뚱함은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열 줄 압니다.


처음엔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는 어린 양딸 옆에 앉아 있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괜찮다고 속삭여 줬고요 그리고 어느 날부터는 안아주었습니다. 그렇게 아이의 고통에 다가가 자신의 냄새를 풍겨 다시 잠들 수 있게 해 줍니다. 그 냄새는 뭘까요, 굳이 말로 하자면 신뢰가 적절할 겁니다. 아이는 그것이 뭔지도 모르게 사람의 냄새로 먼저 알게 되었지요.


주름상자에 공기를 넣었다 뺐다 하면서 아코디언에 생명을 불어넣는 사람입니다. 더불어 간밤에도 악몽에 시달리던 양딸과 돼지 ××라는 말을 제일 많이 하는 자신의 아내도 부시시 살아나게 합니다.


훔쳐온, 아니, 정확히 말하면 동생의 무덤을 팠던 사내가 떨어뜨린 ‘무덤 파는 사람을 위한 안내서’를 돌려주지 않은 양딸에게 이걸 읽어보고 싶냐며 대답도 하기 전에 읽는 게 좋겠다고 말해줍니다. 그리곤 본인이 죽거든 제대로 묻는지 봐달라고 합니다. 나름의 유머감각도 갖추고 있습니다. 짧은 웃음에 긴 편안함을 주는 그런 농담을 잘합니다.


글을 모르는 양딸에게 ‘무덤 파는 사람을 위한 안내서’를 교재 삼아 글을 가르칩니다. 학교 수업시간에 읽으라는 교과서는 읽지도 못하고 양아버지와 공부한 내용을 줄줄 외우다가 선생님께 매질을 당할 정도로 열심히 가르쳐 줍니다. 교구는 칠장이용 연필과 사포를 사용하고요 S로 시작하는 단어를 공부할 때는 아이의 양어머니이자 자신의 아내가 입에 꼭 붙이고 다니는 그 욕을 힌트로 주기도 합니다. 그러고 재밌다고 낄낄거리지요.




책도둑(2)

'책도둑의 아버지'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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