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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윌리를 찾아서 Aug 23. 2023

친구 나 술 한잔 사줄 수 있어?

18살 쯤 되던 때 일이다.

학교에서 집까지 자전거로 30분 가량 되는 거리다 보니 어두운 밤이면 무서워 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날도 학교에서 늦게까지 활동을 하고 자전거를 타고 귀가 하던 중이었다.




어두운 밤 자전거 라이트 앞을 한 군인이 가로 막는다.

"학생이야?"

"예. 고등학생입니다. 왜요?"


"부탁하나만 하자. 담배 있으면 한대만 줘"

북한에서는 고등학생들이 담배 피우는 것은 일반적이다. 물론 대놓고 피우지는 않지만...




군인의 요구에 자전거에서 내려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져 담배 한대를 건넷다.

"저도 한대 피겠습니다."


그렇게 어두운 밤길에 모르는 사람과 담배 한대를 피우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그 군인은 그날 입당하는 날이라고 한다. (노동당에 가입하는 일)




북한에서는 군에 입대를 하게 되면 거의 대부분이 입당을 하고 전역 하게 된다.


이 군인은 황해도 해주에서 함경북도도 군 입대를 하였고, 입당을 하게 되는 기쁜 날이지만 집에 갈 수도 없고 좋은 소식을 고향에 알릴 수도 없고, 받은 것은 당원증 하나뿐이라며 허무해 한다.


중학생이라고 해도 될만한 외소한 몸과 당장 버려도 가져 가지 않을 것 같은 군복,

담배 한 개비 살 돈도 없는 군인의 형편이 너무 안쓰러워 보였다.




담배의 솜 부분이 탈 정도로 피울 때 쯤

"나 부탁 하나만 더 해도 될까?

"뭔데요?"

"나 오늘 너무도 기쁜 날인데... 주머니에 돈 한푼도 없어. 술 한잔 사 줄수 있니?"




순간 망설였다. 북한에선 군인들은 도둑놈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먹을 것이 없어 민가로 내려와 돼지며 작물들을 훔쳐가기 때문이다.

이 사람도 혹시?? 하면서도 그럴 마음이 있는 사람이면 이미 나를 때리고 자전거를 훔쳤을 것이다. 담배 한 개비에 감사하다는 군인을 보면서 의심은 이내 사라지고 술을 사주겠다고 승낙했다.


자그마한 구멍가게에 들어가 두부 한모에 소주 한병을 주문하여 같이 마셨다.

촛불에 비친 나의 행색을 보더니 부럽다고 하면서 자기 부모님은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으며 입 하나라도 덜려고 일찍 군에 입대 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북한은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고 배운다. 또한 김씨 가문에 의해 선군정치, 선군노선, 국방력 강화 등등의 군인들을 우선시 하는 슬로건들을 흔히들 볼 수 있다.

하지만 내 앞에 군인은 어떤가? 먹고 살기 힘들어 가정에 입을 하나라도 덜려고 군에 일찍이 입대한 그는 지금 내 앞에서 담배를 구걸하고 있다.

자기보다 어려보이는 학생앞에서 자존심이란 이미 없어진지 오래된 것처럼 보인다.


그 길에서 얼머나 서성거렸을지,,

그 골목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지나쳤을지 가늠할 수 없다.

그게 나여서 다행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날 그에게 평생 잊지 못할 사람이

되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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