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소 대나무 이야기
만일 내게 나무를 베기 위해 한시간만 주어진다면
우선 도끼를 가는데 45분을 쓸 것이다.
- 링컨 -
링컨 전 미국 대통령의 유명한 명언입니다.
한 시간중 45분이면 3/4에 해당하는 시간입니다. 주어진 시간의 대부분을 '준비'만 하는데에 쓴다는 것이죠.
다른 사람이 볼 때에는 45분이 지나도록 결과물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할겁니다. 대체 언제 하려고 저렇게 도끼 날만 갈고 있냐고 한심하게 바라보기도 하겠죠. 주변의 다른 사람은 45분이 되기도 전에 이미 나무를 다 벴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장 결과물이 없더라도,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멈춰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조급해하지 말고 내 도구를 연마하는데에 시간을 쏟으라는 것입니다.
저는 학생 때 기본기보다는 겉으로 드러나는 결과에만 치중했던 사람입니다. 당장 볼 시험범위의 내용만 달달 외워서 시험은 100점 맞았지만 저는 글을 읽는 법도, 생각하는 법도, 내 생각을 표현하는 법도 몰랐습니다. 그저 단순 암기 기계처럼 주입한 내용을 시험 때 답안지에 찍어내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좋으니 사람들은 저를 칭찬해주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스스로 제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생각하는 것을 싫어해서 어려운 수학 문제가 나오면 고민하기보단 답지를 보려고 했고, 제 생각을 써야하는 논술을 제일 어려워했습니다. 엄마가 아무리 책읽으라고 해도 전 책을 거들떠도 보지 않았습니다. 저희 집에 책이 천권도 넘게 있었지만 제가 20살이 되도록 읽은 책은 10권이 채 되지 않을겁니다.
저는 좋은 내신성적으로 서울의 대학교에 입학했지만, 20살의 저는 머리와 마음이 텅 빈 느낌이었습니다. 더이상 단순 암기로 해결되는 공부는 없었습니다. 긴 글을 읽어야했고 생각을 해야했고 글을 쓸 줄 알아야했습니다. 처음엔 생각을 하려고만 하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당장이라도 책상에서 튀어나가 친구들하고 놀고 싶어졌습니다.
'읽고 쓰고 생각하는 것'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본기임에도 주입식 교육에만 익숙해진 저에겐 너무 생소했던 것입니다. 기본기가 없었던 저는 뭘 하려고 해도 항상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은 '생각하는 것'에서 출발하더라구요. 가장 중요한 공부는 '스스로 생각하고 내 생각을 표현할줄 아는 것'이라는걸 전 성인이 되어서야 알게된 것입니다.
전 뒤늦게 기본기를 갈고 닦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내 길을 정해 안정적인 직장을 가져야할 나이에도 저는 기본기에만 충실했습니다. 한 직장에 정착하는 것보다는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다양한 생각을 갖고 싶었습니다. 단순하기만 했던 제 생각의 폭과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10년동안 다양한 그룹의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며 '말하는 연습'을 이어갔고 일이 끝나고 나면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겉으로 아주 화려했던 저의 10대 시절을 봐왔던 저희 부모님과 친척분들, 저를 아는 어르신분들은 항상 제 소식을 궁금해하셨습니다. 제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었을거라는 기대를 품고 항상 제 근황을 물으셨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 어린 시선과 하나둘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친구들의 소식에 때로는 조바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전혀 신경쓰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입니다. 하지만 저의 거품뿐이었던 과거를 알기에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안심시켰습니다. 겉으로는 멈춰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제 안에서는 그 어떤 때보다도 빠르게 무언가가 채워지고 자라나고 있음이 느껴졌기에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 저에게 힘이 되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모소 대나무'이야기입니다.
중국 동부 지역에서만 자라는 '모소 대나무' 아시나요?
농부들이 씨를 뿌리고 온갖 정성을 다해도 이 대나무는 처음 5년간 3cm 정도밖에 안자란다고 합니다.
다 성장했을 때의 길이가 15미터라는걸 생각했을 때 처음 5년간은 거의 멈춰있다고 보여질 정도이죠.
하지만 모소대나무를 잘 아는 현지 농부들은 실망하지 않고 5년동안 자라지 않는 이 조그만 싹으로 존재하는 대나무를 아주 정성을 들여 키운다고 합니다. 대나무를 심은지 5년이 된 해부터 기적처럼 대나무가 쑥쑥 자라기 시작합니다. 5년동안 3cm 정도의 작은 싹으로만 존재하던 대나무가 한달 반 정도 되는 기간 동안 하루에 30cm씩 자라 15미터 이상의 높이까지 자라게 됩니다.
이 대나무는 5년 동안 대체 무얼하고 있었던걸까요?
이 대나무는 땅 속에서 5년동안 아주 열심히 자라고 있었습니다. 땅 위로는 3cm의 싹만 내고 존재감만 드러냈던 모소대나무가 남들 모르게 땅 속에서 수천미터의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모소대나무의 잠재력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5년동안 자라지 않는 모소대나무를 보며 죽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나라는 손흥민 선수 보유국이라는 말이 있죠.
손흥민 선수의 진가는 '일이 잘 안풀렸을 때' 보여집니다.
다른 선수처럼 좌절하고 무너지거나 자기관리가 안되는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세계 최고의 자리를 지킬 수 있는 비결에 대해 손흥민 선수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의 교육 덕분이었다고. 항상 겸손과 기본기를 강조하신 아버지의 교육철학 덕분에 지금의 자신이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손흥민 선수는 18세 이전까지는 슛연습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축구 선수를 준비하면서 슛 연습하지 않는 손흥민 선수를 보면서 주변에서 얼마나 걱정을 가장한 비난과 비웃음의 시선들이 있었을지 안봐도 뻔합니다. 하지만 손흥민 선수 아버지께서는 누구보다 '튼튼한 뿌리'의 중요성을 알고 계셨기에 주변의 의심에도 흔들리지 않으셨을겁니다. 오랫동안 땅 밑에서 뿌리를 내렸던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손흥민 선수가 있는거겠지요.
제가 다시 10대로 돌아간다면, 저는 화려한 내신성적을 위한 '주입식 공부'보다는 기본기 공부에 충실할 것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학교에서 원하는 답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외우는 것을 훈련해왔고 제 생각은 사라지고 제 마음은 굳어갔고 굳어버린 마음과 머리를 부드럽게 만드는데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아야했는지 모릅니다.
사람은 모두 칭찬받고 인정받고 싶은 본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보통의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겉으로 드러내고 싶어합니다. '특목고'에 진학하고, '명문대학교'를 다니고, '대기업'에 취직한 것들이 마치 무슨 '명품백'을 들고다니는 것처럼 사람들에게 뽐냅니다.
하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것이 다가 아닙니다. 그 진가는 머지않아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씨를 심자마자 쑥쑥 자라서 예쁜 꽃을 피우는 다른 꽃들을 부러워하지 마세요.
빨리자랄수록 강한 바람에도 금방 뽑혀져나가는 법입니다.
한 사람의 진가는 '강한 바람'을 마주했을 때 드러나는 법입니다.
여러분이 지금의 시기를 땅 아래로 깊고 깊은 뿌리를 내리는 시간으로 보내길 바랍니다.
살면서 강한 바람을 만나지 않는 생명체는 없습니다. 누구나 여러번 마주하게 됩니다.
그때 나의 진가가 발휘될 수 있도록 누구보다 강하고 튼튼한 뿌리를 내려두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