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원 <시와 산책> & 그림책 <살아 있다는 건>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읽지 마라. 절대로 한 글자도 읽지 마라. 달리 할 일이 떠오르지 않으면 춤이라도 춰라.>
참여하고 있는 프로그램의 4주 차 미션이다. 말도 안 된다. 읽어야 할 책들이 점심시간 맛집의 인파처럼 줄을 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란 말인가. 누누이 말하지만 숙제부터 하고 놀아야 마음 편한 삶을 살아왔지만, 이번 미션은 도저히 실행 불가다. 눈 딱 감고 포기했다. 프로그램에 참가해서는 여행 주간에 활자 읽기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모를 일이야 하며 비상약을 챙기듯, 한정원의 <시와 산책>을 가방 앞주머니에 꽂아두고, 밀리의 서재에도 책을 다운 받아 두었다.
그 기계 속 지도는 화석처럼
굳어버린 공간을 보여줄 뿐,
네 곁에 도도히 살아있는
시간을 담지는 못한다.
나무의 푸른색, 강의 소용돌이,
바람의 진동, 짐승의 맥박은 거기 없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소거해 버렸다.
- 한정원 <시와 산책> p.23
공항 대기 의자에 앉아, 아직은 여행 전이라고 스스로에게 변명하며 2시간이나 남은 대기 시간을 죽이기 위해 책을 꺼냈다. ‘시간을 죽인다’는 표현이 새삼스럽다. '내 곁에 도도히 살아있는' 현재라는 시간과 여기라는 공간을 소거해 버린 채, 나는 삶이 주는 고달픔과 서러움, 무료함을 죽이기 위해 활자로 도망쳐 왔구나.
고개를 들었다. 멀리 제주의 푸른 바다가 보인다.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 속으로 커다란 물고기 모양의 비행기가 얼굴을 치켜들고 풍덩 뛰어든다. 그래, 3박 4일의 여행 기간 동안은 글자 대신 생생한 감각으로 살아보자.
여행 첫날의 고단함에, 잠의 끄트머리를 겨우 붙잡았는데 화재경보기가 울렸다. 별일 없으니 안심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왔지만, 캐리어를 들고나가는 사람들, 파자마 차림의 사람들이 우왕좌왕이다. 잠옷에 카디건 하나 걸치고, 10층에서부터 변변치 않은 다리로 1층까지 계단으로 내려갔다.
한 사회 안에는 집단 정서의 기본값이 설정되어 있다고 한다. 세월호라는 트라우마를 겪은 우리들에게 '가만있으라'는 메시지는 안심의 메시지가 아니다. 각자 알아서 자기 목숨은 자기가 챙겨야 한다는 의식이 앞선다. 1층 로비에서 30분쯤 버티다 아무 이상 없음을 확인하고 다시 객실로 올라왔다.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나니 이제는 잠이 달아나 버렸다. 뒤척이다 결국 e-book을 읽는다. 그러니 이 독서는 내 의지박약의 문제가 아니다.
결국 실패로 돌아간, 독서 금지의 시간은 추자도에서 찾아왔다. 3박 4일 여행의 짐도 풀지 못하고, 매난국죽의 1박 2일 추자도 여행. 무리한 여행 스케줄로 몇 주 전부터 시원치 않던 다리가 파업을 해 버렸다. 도저히 걸을 수 없었다. 목소리 대신 다리를 얻은 인어공주가 걸을 때마다 이렇게 아팠을까, 혼자 궁금해한다.
매화, 난초, 국화 언니들만 올레길을 걷고 나는 혼자 카페에 앉았다. 지친 몸에 짐을 급히 싸느라 이번에는 책이 없다. e-book도 눈에 차는 게 없다. 강제 독서 금지의 시간. 커다란 창으로 추자 앞바다와 하늘이 펼쳐져 있다. 바로 앞에서 반짝이는 해의 윤슬 조각들이 대만에서 보았던 옥과 비취보다 더 반짝이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파도의 철썩임이 귀에 들리기 시작한다. 이렇게나 아무 할 일 없이, 가만히 이틀이라는 시간을 세상과 마주해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바빴고, 바쁘지 않으면 활자 속에서 분주했다.
살면서 문제에 맞닥뜨리면 관련 서적을 찾아보는 게 제1순위 행동 지침이었던 나에게, 책은 삶의 이정표였으며, 내게는 없는 언니이자 오빠였을지도 모른다. 혹은 놀 줄 모르고, 딱히 잘하는 것도 없는 나의 유일한 놀이이자, 내가 숨을 수 있는 동굴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동시에 나를 가두는 창으로써도 자리하고 있었구나.
살아 있다는 건
지금 살아 있다는 건
그건 미니스커트
그건 플라네타륨
그건 요한 슈트라우스
그건 피카소
그건 알프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과 마주하는 거야.
- 그림책 <살아 있다는 건> 中
하추자항 바로 옆,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나도 적어 보았다.
지금 살아 있다는 건
그건 추자 바다의 윤슬과 함께
내 마음도 반짝이는 것.
그건 카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파가니니의 라 캄파넬라에
내 고개가 까딱이는 것.
그건 추자의 수평선을 바라보며
이 순간을 사랑하게 되는 것.
여전히 나에게 있어 책은 나를 비추는 창이겠지. 그래도 이제 그 창을 훌쩍훌쩍 뛰어넘고, 텀블링하며 세상과 마주 서는 도발을 서슴지 않아 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