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 김수열의 시
7월 6일 일요일, 김영옥 선생님- <흰머리 휘날리며, 예순 이후 페미니즘>의 저자- 과 함께 <제주 4.3> 투어를 하게 되었다. 서울에
거주하고 계신 김 선생님과는 매월 1회, 온라인으로 돌봄 관련 공부를 하고 있다. 이번에 1학기 종강을 겸해 내려오신 선생님과 토요일 오후에는 독서 모임을 하고, 일요일에는 뜨거운 투어를 진행하게 되었다.
오전 9시, <주정공장 수용소 4.3 역사관>부터 시작이다. 제주시 건입동, 여객선 터미널 앞에 2년 전쯤 세워진 걸 스치며 보긴 했지만 들어가 보긴 나도 처음이었다. 주정은 고구마 전분애서 뽑아낸 알코올을 뜻한다. 술 원료로만 생각했었는데, 아시아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의 전투기 연료로 쓰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동양척식주식회사 제주 주정 공장이었던 이곳이 제주 4.3 당시 토벌대를 피해 한라산으로 피신했던 사람들이 '내려오면 살려 준다'는 말에 속아 내려왔다가 수용된 곳이다.
산에서 백기 - 산에 올라갈 때 짊어지고 갔던 이불 홑청을 급하게 뜯어서 만든 투항의 깃발- 을 들고 내려온 사람들 중 일부, 아주 어린아이들이나 노인들은 풀려난다. 하지만 많은 젊은 사람들이 바다에 수장되거나 어디론가 끌려가 총살을 당하거나 전국 각지의 형무소로 이송되었다고 한다. 같이 투어 중이던 강의 시어머니도 10살 때 산에서 마을 사람들과 내려와서 여기에 수용된 적이 있다는 말에 멀게만 느껴졌던 4.3이 바로 확 내 앞으로 시간 이동한 기분이었다.
'추모의 방'에서는 4.3 당시 생사를 알 수 없거나 억울한 옥살이를 하던 중 한국전쟁 발발로 행방불명이 된 3,994명의 영혼을 위로하고 달래는 공간이었다. 한 벽면 가득한 화면에서는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 가운데 행방불명된 사람들의 이름이 하나씩 띄어진다. 꽃 같고 별 같았을 생명들이 역사의 미로에 갇혀 있다가 한 사람씩 이름이 불려지며 다시 살아나는 공간이었다.
죽어서 내가 사는 여긴
번지가 없어도
살아서 네가 있는 거기
꽃소식 사람소식 그리운 소식
물결 따라 바람결 따라
너울너울 보내거라
- 김수열 시인 <물에서 온 편지> 중
40분 정도 달려 표선면 가시리 마을회관 앞에 당도했다. 미리 연락드린 가시리 마을 4.3 문화 해설사님이 커다란 퐁낭 그늘 밑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봄이 되면 고개 들어 살랑이는 분홍 벚꽃에 눈 맞추고, 고개 숙여 황금빛 유채꽃에 미소 짓는 그곳, 표선면 가시리. 제주도에서 마을 단위 4.3 피해자가 세 번째로 많은 곳이라고 한다. (노형-북촌-가시리 순) 가시리가 인근 지역에 비해 피해가 많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배경일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와 그 근거들을 얘기해 주셨다.
가시리 해설사님과 헤어지고, 작년에 만들어진 '작별하지 않는 다리'를 건너 가시리 4.3 희생자 위령비에 당도했다. 위령비에는 가시리 4.3 희생자 448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다 같이 묵념을 올리고는, 무거워진 마음과는 달리 후다닥 다시 그늘 속으로 들어갔다. 건천을 따라 주변이 공원으로 잘 조성되어 있어서 산책을 하면 좋을 듯했지만, 32도를 넘는 정오의 날씨에 우리는 가을 기행을 기약하며 다시 작별하지 않는 다리를 건너 차에 올라탔다.
따라비오름 고향 달빛 그리워지면
서천꽃길 마련하여 그대 마중하리니
작별하지 않을 약속을 위해
가시천 내창 미리내 다리 건너
따뜻한 고향 대지 이곳에서 편히 쉬세요.
- 가시리 4.3 희생자 추모시비,
오승국 <진혼 서시> 중
표선초등학교 교정으로 들어갔다. 한창 공사 중이었다. 인근 표선고등학교가 IB 학교가 되면서 초등학생 수도 늘어 교실을 증축 중이었다. 그 정신없는 공사장 바로 앞에 덤불들과 공사 장비들 사이에 '폭발사고 희생자 위령비'가 있었다. 4.3 위령비가 아니라 폭발사고 위령비라니 이건 또 뭔가, 의아했다. 1950년 7월, 4.3 당시 학교에 주둔했던 2 연대가 철수하면서 처리하지 않고 남아있었던 탄을 아이들이 정체도 모르고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가 폭발한 것이다. 20여 명이 죽고 10여 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알려진다. 지금은 공사 중이라 어지럽고 풀덤불이 사람 키만큼 자라 있지만 공사가 끝나면 잘 정돈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표선해수욕장으로 향했다.
<한모살>은 한(큰), 모살 (모래), 즉 넓은 모래사장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표선해수욕장 백사장 일대로, 4.3 당시 표선면, 남원면 일대 주민 200여 명이 희생된 일상적인 총살장이었다고 한다. 어? 석 달 전 내가 인상적으로 보았던 표지판이 없어졌다. <재주 4.3 유적지 (표선 한모살) >이라 적힌 작은 표지판이었는데 어디로 갔지? 믿을 수 없어하는 일행들에게 석 달 전, 내가 찍었던 사진을 보여 주었다. 바로 앞에 자리한 체육관 주차장 공사를 하며 표지판을 없애 버린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방금 전, 방문했던 표선면 위령공원이 표선면민 체육관 한 귀퉁이, 그 누구도 찾지 않을 곳에 위치해 있어서 속상해하던 참이었다. 해설사님 말처럼 역사적 의미를 살린다는 것에는 공간성도 중요한데, 한 귀퉁이에 있는 추모 공원이 우리 마음에 자리 잡은 제주 4.3의 공간이고 위치가 아닐까? 그런 씁쓸함을 모두들 갖고 한모살 터로 이동했는데 그 작디작은 표지판마저 사라진 걸 보니 기가 막혔다. 주차장 공사 중인 그 공간이야말로 역사적 의미도 있고 너른 땅이라, 추모 공원은 이런 데 자리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추룩 하영 이시던 사람들이
모살왓에 자빠져 이서서.
군인들이 둘씩 짝을 지어그네
한 사름씩 바당애다 데껴 넣어 신디,
꼭 옷들이 물 우에 둥둥
떠다니는 것추룩 보여서.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p 224
뜨거운 여름 투어를 마친 우리를 칭찬하며 부근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백사장 멀리 바다가 보이는 멋진 장소였다. 당시 학살과 수장의 참혹함에도 노을은 아름답게 저녁 하늘을 물들였을 것이고, 나무들은 푸르름을 빛냈을 것이라 생각하니 삶과 죽음, 참혹한 인간사를 아름다운 풍광으로 덮어주었을 자연의 아이러니, 그 자체가 슬프고도 잔혹한 역사인 듯했다.
총에 맞고,
몽둥이에 맞고,
칼에 베여
죽은 사람들 말이야.
얼마나 아팠을까?
손가락 두 개가 잘린 게
이만큼 아픈데.
그렇게 죽은 사람들 말이야,
목숨이 끊어질 정도로
몸 어딘가가 뚫리고
잘려 나간 사람들 말이야.
-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 p57
풍광 좋은 바다 뷰에 감탄하며, 좋아하는 라테에 팥빙수까지 먹고 나니 손수건을 흠뻑 적시던 땀이 말랐다. 여름이면 도민뿐 아니라 관광객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이 보석 같은 백사장이 불과 77년 전, 세상에 나온 지 얼마 안 된 아기들부터 어여쁘고 빛나던 청춘들과 지혜로왔을 어른들이 무참히 총살되고 수장되었을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가, 무엇과 끝끝내 작별하지 않아야 하는지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