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는 장애아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덤보는 어릴 때 보면 희망 있고 즐거운 만화 영화지만 성인 돼서 보면 어두운 영화다. 많은 사회 문제를 비판해서 대부분 분석이 어둡다. 저번 시간에 이어 오늘도 당시 사회의 어둠을 비판한 덤보의 모습을 설명하겠다. 오늘 주제는 장애다.
덤보는 장애를 가진 캐릭터가 주인공인 첫 애니메이션 영화다. 첫 장애 캐릭터는 아니다. 디즈니 첫 장애 캐릭터는 저번 시간 백설공주 이야기에 소개한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에 나오는 난쟁이 '멍청이'다.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면 아래 링크를 참고하길 바란다.
처음엔 덤보를 이뻐하고 귀엽게 보는 성체 코끼리들. 하지만 큰 귀(선천적 장애)를 보자 기겁하고 조롱하며 덤보의 엄마 '점보'한테도 조롱을 날린다. 이는 장애인 차별, 학대를 보여준다. 다 큰 성체와, 지적 생명체라는 사람이 죄 없는 아이 덤보를 괴롭히고 비웃는 장면이 많다.
덤보가 사람에게 놀림받고 슬퍼해도 덤보 엄마 '점보'와 생쥐 '티모시'를 제외하면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다. 없는 존재로 취급하자고 맹세를 하는 등 관행으로 품위를 지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죄 없고 말도 못 하는 아이를 괴롭히면서 품위를 지킨다니, 모순이지 않은가. (영화 끝날 때까지 덤보는 한마디 말도 안 한다. 그만큼 어린 존재다. 아니면 디즈니는 덤보를 말 못 하는 언어장애 설정까지 넣은 걸까?)
덤보가 나온 40년대는 전 세계가 장애인 복지와 인권이 없던 시절이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나치는 수 십만 명의 장애인을 안락사했다. 물론 극단적 예시지만 대부분 나라는 장애인을 따로 격리시설에 감금했다. 즉 영화는 당시 사회 문제점을 저격한 디즈니의 채찍이다. (물론 장애뿐 아니라 인종 차별, 아동 학대도 다루었다.)
80년 지난 지금은 어떨까? 격리 시설은 없어졌지만 영화와 우리 사회는 크게 다르지 않다. 덤보 속 성체 코끼리와 비슷하다. 장애아를 괴롭히진 않지만 무시하며 없는 취급하고 겉으로는 품위 있게 구는 사람들. 앞에서 무시하진 않는다. 뒤에서 은밀하게 괴롭히거나 마음 한편에 무시한다. 즉, 영화 속 성체 코끼리의 모습은 우리와 다를 게 없다. 어째서 시간이 지나고 장애 관련 많은 작품이 나와도 사람은 변하지 않은 걸까?
이는 잘못된 마음이지만 동시에 당연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랑 다른 사람을 보면 놀라고 선 긋는다. 다름의 정도가 클수록 선은 굵고 선명하다. 미성숙한 유아기땐 특히 심하다. 때문에 아이는 자기와 조금만 달라도 놀리고 괴롭힌다. 인종차별도 이런 이유로 발생한다. 장애인은 냉정하게 말해서 평범한 사람보다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다. 결국 사람은 장애가 있으면 자신보다 능력이 낮은 존재라 인식해 무시하는 잘못된 마음이 생긴다. 이건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가진 당연한 마음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하자. 여러분은 장애인을 보며 처음부터 나와 똑같은 존재, 혹은 나보다 뛰어난 존재라 생각한 적 있는가?
위 글을 읽고 화내는 사람도 있을 거고 공감해선 안된다 말하는 분도 있을 거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장애인은 낮은 존재이며 차별하는 게 당연하다는 게 아니다. 위 내용을 보고 화내는 사람 대부분은 이미 삶에서 여러 장애인을 만났거나, 가까운 사람이 장애를 가진 경우다. 살면서 다양한 장애인을 만나고 사랑하는 친구, 연인, 가족이 장애인이라 가까이 지내며, 가진 능력과 성격을 알게 되고, 평범한 사람과 다르지만 뛰어난 부분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사람은 위 글에 공감하지 못한다. 무슨 소리인지 알겠는가? 장애를 가진 사람을 만나고 경험을 했기에 공감하지 못하며 분노하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모든 사람이 장애를 가진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냐 묻는다면 간단하다. 답은 이미 설명했다. 우린 장애를 가진 사람을 겪어보지 못한 무지에서 선을 긋고 선입견을 만든다. 즉, 직접 만나고 같이 살아봐야 한다. 같이 일하고, 놀러 다니고, 공부하고,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야 한다. 그럼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고 잘못 알던 부분이 고쳐진다. 선입견은 직접 경험하기 전까진 머리와 지식으로 못 깬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껴야 선입견이 깨진다.
반대로 장애인과 장애인을 지지하는 사람도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장애인은 평범한 사람보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걸.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그게 결코 장애인을 무시하는 태도가 아니란 걸. 오히려 그런 식으로 몰아가는 태도는 일반인을 피곤하게 하고 이해하길 포기하게 만들며 서로의 경계선을 선명하게 만든다. 선 위에 철책을 쌓고 지뢰까지 설치한 격이다. 몰아세우면 사람은 방어태세로 날카로워진다는 걸 명심하자.
우리는 다 다르게 생겼기 때문에 아름다워요.
- 닉부이치치 -
장애인은 우리와 다르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도 그렇다. 세상 모든 존재는 다른 기질과 성격을 가졌다. 종교, 인종, 혈액형, mbti 등 비슷한 그룹으로 묶으며 살지만 세세한 부분까지 나누면 똑같은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 같은 사람은 넓은 우주에서 나 하나만 존재한다.
그럼에도 우린 지구라는 집에서 같은 '사람'이라는 공동체로서 함께 살아간다. 위 사실을 인정하자. 우린 모두 다르다. 모두 다른 기질이지만 같은 세상에 살아가는 사회의 일원이다. 선을 긋는 게 아닌 이야기를 나누고 무엇이 다른지, 무엇이 같은지 경험하자.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고 행동하며 인정하자. 멸시와 동정의 시선이 아닌 아무 생각도 없는 시선을 가지자. 평소 사람 대하듯 평범하게 대하자.
덤보는 자신의 장애이자 단점인 큰 귀를 장점으로 만들어 모두의 인식을 바꾸었다. 자신을 괴롭힌 큰 귀는 하늘을 날게 해주는 재능으로 변했고 자신을 무시하던 코끼리와 사람의 존경과 환호를 받으며 극복했다. 우리는 모두 장단점을 가졌다. 단점을 고치지 못하면 장점으로 승화하고 힘들면 장점을 활용하자. 그럼 상대방이 그은 선은 지워져 서로를 제대로 바라 볼 계기가 된다. 시간이 지나 사람의 경계선이 희미해지고 서로를 온전히 바라보는 세상이 온다면 우린 지구라는 집에서 진정으로 함께 공존한다. 다르다고 서로 무시하는 우리의 마음속 선을 함께 사는 울타리로 바꿔보자. 이게 이루어지면 나중엔 큰 귀를 가진 아이를 봐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덤보를 처음 만난 티모시처럼.
니 귀가 큰 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란다. 난 네 귀가 이쁘다고 생각해.
오늘은 덤보에 나온 장애 차별을 주제로 이야기했다. 글이 여러분에게 많은 생각을 들게 하고 새로운 생각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길 바라며 글 마치겠다. 다음에도 덤보 관련 글로 찾아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