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도 유효한 기간이 있는 듯하다. 우리는 좋은 관계가 영원히 지속되길 바라지만 인간에게 ‘영원성’ 만큼 부질없는 말이 있을까 싶다. “널 영원히 사랑해”라는 말은 지금 이 순간 널 영원히 사랑할 것 같이 사랑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모든 것이 변한다. 살다 보면 우리의 마음도 변하고 경험에 따라서, 그리고 사고의 깊이에 따라서 생각도 달라진다. 서로 공감하고 교감할 수 있는 부분이 적어지면 가까웠던 관계도 멀어지게 된다. 10년 지기, 20년 지기, 오랫동안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그 시간의 길이가 관계의 깊이와 지속성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모든 관계가 우리가 바라듯 좋은 모습으로 오래도록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 관계의 끝은 어디일까? 아리스토텔레스는 ‘더 이상 친구가 아닌 사람은 예전에도 친구가 아니었던 사람’이라고 했다. 나는 최근에 이 말을 부정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친동생처럼 여기며 애정을 듬뿍 쏟았던 친구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기로 했다.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더 철저히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사람이란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친구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랑해주었다. 한참 슬럼프에 빠져 우울해하고 있을 땐 하소연을 들어주고 그래도 괜찮다고 위로해주었다. 그럴 때 우리가 바라는 건 그저 누군가 내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니까. 살다 보면 이런 저런 일들이 생기기 마련이고 나 역시 그랬다. 안 좋은 일들을 겪고 심리적으로 회복하는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내가 좌절하고 의기소침해서 동굴 속으로 파고 들 때 그 친구는 내게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사람이 계획을 세우고 행동을 해야 한다고, 인생 운운하며 훈계를 했다. 내 인생의 정답도 알려주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자신을 천재라고 생각하는 그에게는 내가 멍청하게 보여서 내 인생의 답을 가르쳐주고 싶었는 지도 모른다.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쳐도 모른 척 외면하는 그런 친구의 인간성에 실망하는 일이 한 번, 두 번…… 그리고 쓰리 아웃! 그 친구가 나에게 어떻게 해주길 바라는 것은 없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예뻐해주었으니까. 그 친구에게 줄 수 있는 나의 애정을 100 퍼센트 쏟아 부은 나는 그야말로 미련이 없다. 그저 나의 마음을 그만 멈추기로 했을 뿐. 그 친구는 내가 전처럼 자기에게 잘해주지 않는다며 나를 탓한다. 나를 친구로 여겼던 것인지, 자기에게 잘해 주는 한,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한에서만 친구 관계를 유지했던 것인지 의문이 든다. 어쩌면 그와 나의 친구라는 개념이 다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상대에 대한 기본적인 존중과 배려가 없다면 그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아니, 그런 관계를 유지할 가치가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사람들은 연결의 끊어짐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그래서 끊어야 할 관계도 끊지 못하고 고통스러워하는 게 아닌가? 오래도록 지속하기만 한다고 해서 그것이 좋은 관계는 아니다. 한 때 인연이 되었다고 평생을 이어가야 하는 것도 아니다. 오는 인연이 있으면 가는 인연도 있는 것이다.
요즘 나는 어른스럽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단지 나이가 들었다는 것은 아닐 텐데. 어른스럽다는 것이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는 성숙한 인격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상대의 잘못된 말과 행동까지 모두 받아 주기만 한다고 어른인가? 물론 관대함은 성숙한 인간의 덕목이다. 그런데 이해하고 받아주는 것에도 정도가 있지 않을까? 그 선이 어디까지 여야 할지 그것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