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낭만주의자, 이중섭의 고군분투
편하게 택시를 잡으려다가 다달이 나가는 고정비용을 떠올리며 수백 미터 떨어진 지하철역을 향한 적이 있는가. 귀찮다는 핑계로 제대로 된 요리를 하지 않고 라면을 끓이면서 비용을 아낀 것에 소박한 뿌듯함을 느낀 적이 있는가. 애매한 지인의 장례식에 10만 원을 준비했다가 5만 원으로 낮춘 적이 있는가. 남아있는 긴긴 인생에서 내가 계속 돈을 벌 수 있을지 걱정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적립한 국민연금이 나오는 나이로부터 지금 나이를 빼 본 적이 있는가.
사는 동안 가장 두려운 것이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가난이라면 이중섭이라는 흑백사진 속의 사람에게 주파수를 맞추고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소나기처럼 갑자기 들이닥친 그의 가난을 헤아려봄으로써 판타지 같은 그의 그림이 그에게 가져다주었을 하루치 평화와 희망을 만날 수 있다.
자본주의라는 단어까지 소환하지 않더라도 언제 바닥날지 모르는 현금흐름 앞에서 인간은 불안이라는 생존본능을 연료 삼아 조바심하고 멈칫하고 경계한다.
이중섭은 부잣집에서 태어나 훌륭한 미술교육을 받았지만 성인이 된 후 북에서 남으로 맨몸으로 내려와 그림 하나로 인생의 모든 문제를 풀고자 했다. 국경을 넘은 사랑을 했고 결혼을 했고 먹을 것도 입을 것도 풍족하지 않은 가운데 아이들을 낳아 키웠다. 여름에는 더위에 지치고 겨울에는 오들오들 떨면서 제대로 된 캔버스도 아닌 종이 쪼가리 위에 손을 움직였다. 그의 그림들은 언젠가 돈으로 탈바꿈해 가족을 다시 만날 수 있는 수단이어야만 했다. 그 희망만이 그를 혹독한 질병과 가난으로부터 잠시나마 해방시켜 주었던 플라세보였으니까.
육지동물과 물고기와 아이들이 어우러진 초현실주의적인 엽서화를 그리며 그는 어쩌면 지독한 환각 속에 꿈에 그리던 아내와 아이들을 만났을 것이다. 그의 인생에서 가난이 빌런이었다면 사랑은 가난을 대가로 얻어낸 풍족한 열매였다. 죽어지내고 있는 사람들, 숨죽이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중섭을 소개해 주고 싶다. 물론 그의 그림으로만 그를 만날 수가 있다.
그는 밥을 굶어도 죽어지내지 않았고 숨죽이지 않았다. 오히려 깊은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더 힘차고 역동적인 소를 그리고 현해탄 너머의 행복한 가족을 그리며 싸움닭의 높게 쳐든 벼슬과 한껏 뻗은 다리뼈를 힘 있는 붓길로 그렸다. 더 강인해져야만 하는 자신의 존재를 그림 안에 더 깊이 새겨 넣었다.
우리가 우리를 살짝 눌러서 접고 포개어 한쪽 구석으로 밀어 놓으면 우리는 이것저것 먹고 싸고를 반복하는 수십 킬로그램 짜리 물 주머니일 뿐이다.
이중섭은 계속 움직였다. 계속 손짓을 했다. 나는 저 쪽으로 가보겠다고. 그리고 그 방향을 바꾸지 않았고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으나 그의 몸이 그를 먼저 놓아버렸다. 그림 안에 지문처럼 녹아든 지극히 인간적인 숨결, 그 애처로운 능동성에 오늘도 먹먹하다.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은 계속 변화한다. 어쩌면 움직임 곱하기 반복한 횟수만큼. 죽음이 기다리는 지점까지 매 순간 한 번도 자신을 배반하지 않고 나아갔던 사람이 수백 점의 그림으로 남았다. 더 나아가기 위해 당당하게 생명을 소진해 간 그의 영혼을 위해 두 손을 모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