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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매일 쓰는 해방일지에 관하여

투박하고 다정한 일상생할을 박제하다

눈을 감고 엘지 트롬 세탁기의 낮은 엔진소리를 들으며 애착의자에 앉아 있자면 비행기가 이륙할 때 느끼는 희열을 다시 느낀다. 분주한 일상을 강제로 멈추려면 적어도 출국 정도의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지 않겠나.

특히나 빨래코스가 몇 분 안 남았을 때 한 번에 폭주하는 세탁기의 엔진소리는 비행기가 땅을 떨구고 바퀴를 거둬들인 후 고개를 쳐든 채 날아오르는 해방의 소리와 매우 유사하다.


오늘은 나의 애정하는 엘지 세탁기와 박수근의 빨래터 사이에서 서성거려 보기로 한다.

자랑하기 좋은 직업을 그만두고 아이 넷과 남편, 시어머니를 위한 살림을 했던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우리 넷이 모두 성장하고 독립하기까지 아빠의 비서이자 효심 있는 며느리이언제나 뒤에서 지켜주는 네 사람의 엄마이자, 장모님, 할머니, 외할머니 역할에 충실했다.



<빨래터>의 웅크린 모습들 속에 우리 엄마의 고단한 일상이 겹쳐진다.이불빨래는 발로 밟아서 빨아 거칠게 물기를 짠 채로 해가 나는 동안에 마당에 널고 마르면 거둬오고 개키는 것으로 완료되었는데 밤이 되어도 감동의 햇살 스멜이 사라지지 않았다.   개울가 빨래터를 거칠거칠한 특유의 바탕에 각지거나 둥근 정도로 표현한 단순한 무채색 톤 실루엣들은 매일 '미라클 모닝'으로 시작해 하루치 노동을 무한 반복하는 세상의 모든 일상과 이미지가 포개진다.  


강원도 양구의 부잣집에서 태어났지만 부친이 무리한 광산 투자로 전 재산을 날리면서 가세가 기울어 보통학교만 나온 박수근은 예술가의 고난코스 중 가장 힘들고 비효율적인 경로를 설정당한다. 그럼에도 어린 박수근이 스스로 선택한 유일한 인생의 경로는 그림을 그리겠다는 것이었다.  


선택의 여지도 없이 학력은 강제로 보통학교(초등학교) 졸업으로 끝나버리고 독학으로 화업을 이어나간 박수근이 미술가로서의 역량을 인정받을 수 있는 통과의례 같은 방법은 일제총독부가 관할하는 조선미술대전이라는 국전이었는데 1932년 그가 만 18세 되던 해에 <봄이 오다>라는 작품으로 입선에 오르며 그와 조선미술대전의 기나긴 밀당의 인연이 시작된다.


봄이 오다_박수근 (1932)

기독교 신자였던 박수근은 열두 살에 밀레의 그림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고 그를 추앙하며 밀레를 닮은 화가가 되게 해 달라는 기도를 시작했지만 기도는 스스로 나아가기 위한 도구였을 뿐 허접한 배경을 가진 그의 그림은 세속에서 누군가 대단한 사람의 눈에 띄기를 기다리며 계속 호평과 혹평의 갈림길에서 이리저리 뒹굴고 있을 뿐이었다.

절구질하는 여인_이건희 컬렉션

자신을 증명하고 싶은 사람이 세상의 인정을 받기 위해 애쓰는 과정이 너무나 길어지고 어려워질 때의 그 막막함은 박수근이라는 사람을 통해 오늘날의 세상풍경까지 이어져있다. 가난하고 선량한 박수근은 8년 동안 밭을 갈고 절구질을 하듯, 빨래하듯 그림을 그리며 계속해서 조선미술대전에 출품했고 당락과 입상 여부에 맘을 졸이고 자신의 위치를 가늠했다. 귀인이 나타나 그의 재능을 발견하고 유학을 보내주거나 후원을 해 주는 등의 호사는 그에게 닿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 강원도 산골마을에서 세상살이의 이치를 꿰기도 전에 시골꼬마가 선택한 그림의 길은 순전히

태어난 시대의 논리와 오다가다 만나게 된 인연들의 손에 달려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조각배 같았던 삶 속에서 젊은 박수근은 조선미술대전의 입상과 실격, 대상의 자리를 오가며 입상과 탈락이라는 엇갈리는 담금질 앞에 초연할 여유가 없는 절실한 형편이었다. 더 절실한 쪽이 지는 불평등한 권력 게임은 그의 삶을 조금 더 힘들게 만들었다.     


인정투쟁은 평생 가는 장기전이다.  타인의 인정을 받아야만 한다는 설정이 눌러진 채 흘렀을 화가의 길에서 박수근에게는 애초에 핸디캡이 너무 많지 않나 싶다.


타인의 잣대라는 식민지로부터 해방되기 위해서는 나름의 독한 독립운동이 필요하다. 박수근의 짝사랑 같은 인정투쟁을 지켜보자면 두 가지 감정이 평행선을 그린다.한 편으로는 응원 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너무 매달리지 말고 애쓰지 말고 기대하지 말고 낙담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해 주고 싶다.  인정을 담보로 한 일방적 관계로부터 소중한 그를 지켜내고 싶어진다.    



박수근의 그림에서는 가족이라는 짐을 지고 노동이라는 몫을 해나가는 자들 옆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무들이 피폐한 삶에 작은 평화를 주고 있다.


조선미술대전의 평가에 좌지우지되는 구간에서부터 광화문 반도화랑을 통한 그림 판매량에 웃고 울던 구간까지 박수근은 시대의 풍파와 개인으로서 처한 악조건 등 세상의 모든 프레임을 그대로 뒤집어쓴 채 단 한 번의 큰 열매를 맺지 못하고 낙엽을 떨어뜨리는 나무처럼 낙담하면 낙담한 대로 그대로 견디다가 남들보다 이른 말년을 맞이하게 된다.


특히나 겨우겨우 구매한 창신동 집에 얽힌 불운한 송사가 끝나고 집을 헐값에 팔고 전농동으로 물러앉게 된 후에는 묵묵히 견디어 오던 정신적인 고통을 술로 달래며 지냈다고 전해진다.


그는 속에 있는 사랑을 꺼내어 그림으로 내놓고 또 내놓았지만 세상은 그를 쉽게 사랑해주지 않았다.

말년에 반도화랑에서 그의 그림을 구매한 마가렛 밀러가 미국에서 열어준다던 '캘리포니아 개인전'도 그의 꿈 속에서만 성사되었다. 밀러 여사가 주문한 40점의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던 때문인지 아니면 마가렛 밀러의 립서비스를 약조로 오해한 것인지의 여부가 확실치가 않다. 그러나 어쨌든 그가 그토록 원하던 일이었는데 이루어지지 않았다.


실망에는 가속도가 붙는다는 것을 박수근의 평전을 통해 느꼈다. 그는 세상과 자기 자신에 실망하면서도

인간적인 도를 겨우 겨우 지켜내며 선량한 인생을 살았다. 비록 지금 그의 그림 가치가 더없이 높아져 국민작가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옥션에서 수십억을 호가하기도 하고 부자들만 가질 수 있는 그림이 되었지만  

그의 그림은 낙담하고 꺾인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그림일 것 같다.


굳세게 견디라는 강요보다는 꺼끌꺼끌한 인생길에 순응하며 살았던 인생 선배의 모습에서 동족의 온기를 더 크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박수근 뒤에는 우리 할머니와 우리 엄마를 비롯한 세상의 모든 무해한 엄마들과 며느리들, 딸들이 서 있고 그 뒤에는 커다란 나무도 몇 그루 서 있을 것이다. 물론 그의 그림에서 좋은 영감을 받았던 박완서 작가님도 함께 오실 것이다.


인생의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는 빨래를 하면서 세탁기의 엔진소리를 듣고 눈을 감아보자. 살아가는 데는 하루치의 희망이 매일 필요하므로 구원은 반드시 일상에서 온다. 오늘 하루치의 일용할 해방을 구하며 박수근의 평화를 위해 크리스마스 기도를 마친다.


평온히 잠든 박수근에게 마침내 봄이 왔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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