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에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고, 썩는 냄새가 지독했다.’ 이건 돌아가신 우리 아빠가 했던 말이다. ‘미아리에 바람 빠진 럭비공 같이 짓이겨진 사람 머리통이 길을 가득 채우고 있었어’ 이건 김창열이 전쟁을 회상하며 한 말이다. 중학생인 우리 아빠가 봤던 것, 아빠보다 일곱 살 많았던 김창열이 봤던 것, 평생 지워도 지워도 계속 살아 돌아오는 망령 같은 기억을 지우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무슨 행위든 기억을 지울 목적으로 한다는 생각이 오히려 더 기억을 불러왔을까. 두 분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가족을 이루어 보살피며 건사하고 업에 종사하며 하루하루 끔찍한 시간에서 조금씩 멀리 떠나갔지만 평생 가도 대학로와 미아리에서 얼마 못 간 건 아니었을까.
김창열은 몸소 겪은 것을 굳이 말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듯, 마치 세상 아무것도 보지 않겠다는 듯, 당신이 좋아한 달마대사가 면벽수행 하듯 공백의 캔버스 앞에 입을 다물고 돌아서서 일생을 보냈다.
그가 돌아선 시간들동안 그려낸 셀 수 없는 물방울들 속에 그의 한숨과 비명과 분노와 공포가 화려하고도 침착하게 보관되어 있다. 이제 더 이상 한 방울도 더 늘리지 못하는데 그는 비로소 평화에 다다랐을까.
맺히긴 맺혔는데 떨어질 듯 떨어지지 못하고 그대로 동결된 김창열의 숨 조각들은 떨구어지지 못한 수십만 개의 눈물방울 속에 가두어졌다.
세상이 하는무수한질문에 등지고 돌아서서 물방울 하나를 더 보태고 있는 김창열의 작업모습은전쟁의 끔찍한 기억을 혼자만의 비밀처럼 해두려는 결심과 말 못할 상처 사이에서여전히 난감한 듯 결연하다.
이념과 사상 따위로 강대국에 짓밟힌 조국에서 극한의 반목과 야만을 경험해 섬세한 맘이 산산조각 난 청년은 세상풍파를 견디다 못해 40의 나이에 무일푼으로 세상과 절연한 채 프랑스 파리 외곽 마굿간에서 순한 짐승과같이 작업에 매진했고 이 곳에서 운명의 물방울도 만나고 사랑도 만났다.
북한의 아름다운 산골짜기 동네 강가의 집에서 평화롭게 살았던 착한 소년은 중학교 친구들 반을 전쟁으로 잃고 혼자 살아남아 지독한 죄책감을 짊어지고 살았고 입을닫아버렸고 대신에 그림과 침묵으로 세상과 자신의 빈 공간을 채워 나아갔다.
세상과 나 사이를 유려하고 허망한 자랑으로 메꾸기에 급급한 SNS의 세상 속에서 그의 작품들을 만나고 헤아려 보니 환상특급의 시간여행을 한 것 같은 기묘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