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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 Oct 27. 2022

'잘 살고 있는 것 같아' 남편과 올레길을 걸으며...

진정성 있는 대화가 필요해

말을 잘하고 싶었다. 대화에 조화롭게 참여하여 분위기를 더욱 즐겁게 만들어주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러나 말을 잘 못했다. 대화 도중 내가 말을 하면 대화의 맥이 끊기고 침묵이 흐르는 경우가 많았다. 직장 생활을 갓 시작한 사회 초년생이었을 때는 스스로를 ‘말 잘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신문에서 최신 뉴스를 보면 말을 잘할 수 있을까, 9시 뉴스를 쉐도잉 하면서 따라 발음해보면 말을 유창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했던 것 같다. 그래서 출근길 지하철에서 종이 신문을 펼쳐 들고 읽으며 다녔던 때가 기억난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말을 잘하게 되지는 않았다. 말을 잘하고 말고는 기술의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진정성의 문제였다. 내가 대화에 참여하고 싶은지 아닌지가 관건이었다. 그런데 즐기는 것들이 많아지고, 책을 통해 관심사가 늘어가다 보니 대화 속에서 내가 진정성 있게 풀어낼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다. 대화가 즐거워졌고, 나는 어느 순간부터 대화를 즐겁게 리드했다.




( 남편과 올레길을 걸으며 대화하다 )


아이들이 태어나고 육아에 치이다 보니 남편과의 제대로 된 대화는 뜸해졌다. 남편과는 주로 아이들의 교육에 관한 이야기, 집 구입과 인생 후반부를 위한 목돈 마련 계획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었다. 은행에 예치된 우리의 자산을 점검하고 청약 일정을 확인하고 청약을 넣을지 말지 등과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제대로 된 대화가 시작된 것은 함께 걷기를 하면서부터이다. 남편은 종종 제주도 출장을 가서 1박 2일을 머무르다 오곤 했다. 한 번은 아이들을 엄마에게 맡겨두고 남편을 따라 출장길에 따라갔다가 남편의 회사 일정이 마무리된 직후부터 함께 놀다가 1박을 더 하고 올라오곤 했다. 함께 올레길을 걸었다. 한창 올레길이 유행이었을 때다. 우리는 목적 없이 함께 걸었다.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시작은 평소의 대화 내용과 별반 다를게 없었지만, 어느 듯 기존의 식상한 주제를 벗어나 인생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대화는 깊어지고 서로에게 깊은 신뢰를 느끼며 ‘우리 참 잘 살고 있는 것 같다’라며 두 손을 꼭 잡는다. 그렇게 전쟁과 같은 육아가 서서히 안정화되어 갈 때(둘째가 유치원생 혹은 초등 저학년이 되었을 때..) 우리는 다시 사이가 좋아졌다.


우리의 소통이 제대로 시작된 시기는 나는 <싯다르타>를 함께 읽고 난 뒤라고 생각한다. 나는 한동안 고전에 탐닉했고, 고전이 던지는 인생의 질문들과 그 나름의 깨달음에 대해 심취했었다. 최신 IT 서적과 경제, 경영 서적을 주로 읽던 남편에게, 당연히 고전에는 관심이 없는, 넌지시 읽어보라고 권했고 남편은 마지못해 읽었다. 효과는 컸다. 남편은 공원 산책길에 나보다 더 흥분하며 <싯다르타>를 읽고 얻은 깨달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렇게 점점 우리의 이야기는 육아나 부자 되기가 아닌 ‘인생’에 대한 이야기로 나아갔고 진솔한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이제는 남편과의 대화가 즐겁고 행복하다.




( 아이들과의 대화 )


자녀와의 대화는 대부분 공부와 관련되어 있다. 학교나 학원 숙제를 끝마쳤는지, 내일 학교 갈 준비물은 챙겼는지, 시험을 잘 봤는지 엄마가 물으면 아이들은 주로 단답형으로 대답하거나 사춘기에 접어든 경우라면 짜증을 내곤 한다. 나고 그러고 싶지 않은데 공부하라와 숙제 하라라는 말이 항상 먼저 나온다. 사실 나는 그런 잔소리를 하는 게 싫다.(사실은 가끔 목에 차오를 때는 있다. 뱉어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쓸 때가 많다) 나도 엄마가 하는 잔소리를 정말 싫어하기에 아이들에게 잔소리하는 엄마로 보이는 건 너무 싫다.


나는 호시탐탐 아이들과 대화를 시도한다. 애들과는 공부와 관련이 없어야 대화다운 대화를 할 수 있다. “딸~~ 요즘 행복하니?”라고 물으며 인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행복”에 대한 아이의 가치관을 듣다 보면, 어쩜 나보다 아이가 더 잘 살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남편과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는 ‘문제는 나야. 나만 잘하면 돼’ 정말 요즘 아이들은 똑 부러진다. 나 때와는 차원이 다른 듯. 잔소리 안 해도 멋지게 인생을 살 것 같다. 부러울 뿐이다.


책에 대한 이야기도 좋은 대화 주제이다. “서점 가서 각자 읽고 싶은 책을 사자”라고 아이들 서점에 데리고 가서 아이에게 사고 싶은 책은 마음껏 고르라고 한다. 중학생 딸아이도 자신의 책장(기껏해야 책장 1~2칸을 차지하는 정도)을 가지고 있다. 좋아하는 작가도 생겼고 책에 대한 선호도도 명확한 것 같다. 딸아이는 자신이 고른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왜 그 책이 읽고 싶었는지 들려준다. 자신의 책장을 마련한다는 것은 자신의 우주를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러기에 나는 아이의 책장에 꽂을 책이라면 기꺼이 돈을 쓴다.


딸아이는 손원평 소설과, 정유정 작가의 소설을 좋아한다. 최근에는 딸 방에서 <완전한 행복>을 발견하고 어떤지 물었다. 재미있게 읽었다며 나에게도 권한다. 아이가 엄마에게 책을 권하고 엄마가 그 책을 받아서 읽는 모습이 무척 흐뭇하다. 분명 딸아이도 자신이 권하는 책을 엄마가 읽는 모습에 흐뭇하고 으쓱함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얼마 전에는 내가 애장 하던 책 <스토너>를 딸아이가 꺼내 읽는다. 그리고 기특하게도 독서기록을 하겠단다. 내 인생 책을 딸아이가 읽는 모습은 또 다른 즐거운 경험이다. 나와 딸은 그렇게 같은 책을 읽으면서 책을 통한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끊임없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아이들과 진솔한 대화를 나누길 시도한다. 가끔 인생에 대해,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엄마와 딸, 독립적인 주체로서 서로의 관점을 나누고 공유한다. 아이들 눈에는 부족한 엄마일 수 있지만, 나는 이런 작은 노력을 오늘도 한다. 인생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




( 동료들과 사무실 밖에서 친구처럼 만나다 )


직장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매력적인 사람들도 참 많다. 이런 사람들과 일 얘기만 하는 건 너무 아쉽다. 그나마 일을 하며 소통하는 시간이 즐겁긴 하지만 거기서 끝내버리기엔 아쉽다. 직장동료들과 사적인 모임을 하나, 둘 만들어 갔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사적 모임을 통해 즐거운 삶을 사는 분들이 많음을 알게 되었다. 어디 낄 때가 없으니 내가 제안하고 만들었다.

 

처음으로 독서모임을 결성했다. 이른바 한국은행의 이니셜 BOK(복)에 BOOK(책)을 붙였다. Bok’s Book, 한글로 복스북스다. 같이 읽을 책을 선정하고 주기적으로 만나 책에 대해 이야기했다. 책에서 감동깊게 읽은 부분을 서로에게 낭독해서 들려주기도 하고, 책에 밑줄 친 부분을 서로와 공유했다. 그리고 책에서 어떤 깨달음과 지혜를 얻었는지 나눴다. 멤버들이 이구동성으로 극찬하는 책도 만났고, 각자의 인생 책을 건지기도 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걸작도 이 모임을 통해 읽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개인의 안부를 묻고, 가끔은 책을 들고 같이 여행도 간다. 우리는 그렇게 “소통”하며 함께 행복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Adinction(중독) 모임, 동기 용띠 모임, 그리고 062123 모임 등 모임은 계속 만들어지고 우리는 유쾌한 대화를 이어가며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를 쌓아간다.




( 엄마의 추억을 소환하며 대화를 시도하다 )


엄마와의 대화가 가장 어렵다. 엄마와의 대화는 주로 엄마의 일방적인 잔소리와 나의 기계적인 답변 혹은 침묵이 대부분이었다. 대화가 부재했다. 어느 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엄마 자신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엄마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남은 인생을, 아빠나 자식들이 아닌, 엄마 본인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 보세요. 엄마 본인의 행복을 위해서 무엇을 할지 들려봐 주세요.” 엄마는 멈칫했다. 한 번도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해 보신 적이 없다. 나는 이 질문이 엄마와 나의 소통의 시작이 되리라 생각한다. 엄마를 만날 때 계속 질문하려고 한다. 조금씩 엄마와 진솔한 대화가 가능할 날이 오리라 믿는다.


작년 여름엔 아들만 데리고 고향집을 방문했다. 남편과 사춘기 딸이 없으니 마음이 무척 홀가분했다. 엄마에게 같이 드라이브 가자고 제안했다. 사실 좀 망설여졌다. 엄마와 대화가 아직 나는 불편했기에. 하지만 기우였다. 엄마는 예전 엄마가 어렸을 적에 살던 산양읍으로 길을 안내했고, 나는 엄마가 가르쳐 주는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해안가 드라이브 코스라 내가 참 좋아하는 길이었다. 그 길에서 조금만 들어가면 엄마가 어릴 적 살던 고향이 나온다. 처음으로 엄마의 어릴 적 시절을 소환하니 기분이 이상하다. 엄마에게도 아이였을 시기가 있었을 텐데. 친진 난만하게 뛰어놀던 그 시절이. 엄마는 본인의 추억을 소환하고, 당신이 사시던 집도 아직 남아있다며 나를 이끈다. 집이 아담하고 이쁘다. 지금 살고 계신 분은 시인이란다. 집을 무척 감성적인 느낌으로 잘 꾸며놓고 벽에 꽃과 조개껍질이 장식되어 있고 시들이 빼곡하게 적혀있다. 마을이 정말 이쁘다. 엄마의 사적인 공간으로 들어오고 나니, 엄마는 이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잔소리는 없다. 오로지 엄마의 이야기다. 엄마의 어릴 적 추억 공간으로의 방문은 우리 모녀 사이에 있는 앙금을 아주 많이 날려버렸다.


본인의 본질적인 부분에 대한 대화는 진정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번 여행에서도 나는 엄마와의 관계 회복에 대한 가능성을 보았다. 엄마와 나는 그렇게 해안일주도로를 돌며 둘이서 대화화며 이전에 없었던 화기애애한 시간을 가졌다. 그 이후로 나는 희망을 본다. 엄마와 관계가 회복되어 모두 행복해지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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