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사랑받길 원한다.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고 지지해주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나는 힘을 내서 이 험한 세상을 잘 살아 나갈 수도 있다. ‘사랑’은 ‘행복’처럼 근본적인 삶의 목적이 될 수 있다. ‘사랑’의 문제가 삶의 전부인 사람도 있을 만큼 행복한 삶에 대해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감정이다. 사랑의 종류는 대상에 따라 다양하지만 여기서는 남녀 간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나의 경우는 남편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다.
지금 내가 행복하다면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내가 남편으보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사실’ 혹은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남편으로부터 나 또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행복을 이야기할 때 ‘사랑’을 같이 말하고 싶은 이유이다.
( 사랑은 용서와 같은 말 )
우리 부부는 연애 5년에 결혼생활 20년 된 부부다. 대학 캠퍼스 과 선후배 커플로, 연애의 시작은 달콤했다. 둘 다 눈에 콩깍지가 씐 채 많은 시간을 함께 했고 사랑을 키워갔다. 하지만 결혼을 결심하는 데는 여러 우여곡절도 있었다. 특히, 나와 세 살 터울이며 그때 당시 고3이었던 여동생이 내가 연애 중임을 알아차리고는 나에게 장문의 편지를 썼다.(공부는 안 하고..) 요점은 지금 사귀는 남자 친구가 맘에 안 든단다. 그때만 해도 나는 동생의 우상이었는데, 남자 친구가 내 동생 눈에 탐탁지 않아 보였나 보다. 사실 동생의 태클이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었다. 사실 가장 어려운 난관은 바로 '나'였다.
‘과연 나는 결혼이라는 인생 최대의 결정 앞에,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라는 스스로에 대한 질문에 선뜻 답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나를 더 두렵게 만드는 상상은 서로에 대한 사랑이 식어 무력하게 살아가는 중년 부부의 모습이었다. 아마 이런 두려움은 우리의 부모님의 영향이 아닌가 싶다. 두 분은, 평범한 중년 부부의 모습일 수도 있으나 어찌 되었건, '사랑'의 감정 없이 마지못해 함께 사는 평범한 부부다. 지금의 남편, 그때의 남자 친구에게도 이런 나의 마음을 전달했다. 그랬더니 듬직한 내 남자 친구는 그런 어려움이 생기면 함께 극복해 나가자고 했고 나는 4살 연상인 오빠의 그 말을 철석같이 믿으며 결혼을 결심했다.
그때의 그 고민을 나는 아직도 가지고 있다. 일종의 부적이다. “사랑”이란 그저 주어지는 게 아니며 서로가 노력해서 유지해야 하는 감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애 시절, 서로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질 때도 연애 편지 쓰고, 선물을 고르며 서로에게 최선을 다했는데, 결혼 20년 차가 된 지금은 오죽이나 더 애써야겠는가.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때 내가 가졌던 생각을 지금도 내려놓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함께 하다 보니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상처받기도 하며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우리만의 갈등은 누적되어 갔다. 아이를 키우며 육아에 대한 서로 다른 가치관과 눈높이도 우리의 갈등을 부추겼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한창 힘든 때에는 남편에 대한 서운함과 미운 감정이 마음속에 켜켜이 쌓여갔다. 생각해보면 남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래도 “결혼생활”과 “사랑”의 영역에서 보다 현명하고 싶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라고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나이가 되니 조금씩 숨통이 트이고 서로를 마주할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한동안 보지 못했던 남편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 남편이 아이들과 노는 모습 속에 예전 연애 시절 내가 콩깍지 씌어서 좋아했던 젊은 남자 친구의 모습을 보았다. 역시 내 남편은 매력적이구나 다시 한번 생각했다. 내가 가진 마음속의 서운함과 허전함은 멀리 보내버려도 될 것 같았다.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만났다. “사랑은 용서와 같은 말” 내 가슴에 살포시 와닿은 이 문장은 나의 마음을 홀가분하게 만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서운함이 있다면 용서하면 그만인 것을…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어령 선생님은 “사랑을 하면 백번이 아니라 천 번을 용서하라”는 성경을 인용하셨다. 현명해지고자 했으나 방법을 잘 몰랐는데, “용서”가 가장 현명한 방법임을 깨달았다.
나는 오늘도 남편을 매력을 발견하며, 꿀까지는 아니더라도 달콤한 설탕물을 눈에 머금는다.
( 사랑도 배워야 할 기술이다 )
독일의 사회심리학자인 에리히 프롬이 요즘 인기다. 그의 책들이 다시 서점 진열대에 놓이고 있고 몇몇 책은 베스트셀러에 올라와 있다. 눈에 유독 들어오는 책은 <사랑의 기술>이다. 사랑에도 기술이 있다고? 호기심을 갖고 책을 읽어본다.
그는 “사랑”이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랑을 받으려고 노력은 하면서 정작 주려고 애쓰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생각해 보니 우리는 대부분 “사랑받고 싶다”라고 이야기하지 “사랑 주고 싶다”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피식 웃는다. 그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자기가 가진 가장 귀중한 것, 자신의 생명.. 자신의 기쁨, 자신의 지식, 자신의 이해, 지신의 슬픔, 무엇보다 자기 안에서 살아 숨 쉬는 것을 내어준다."라고 말한다. 과연 나는 적극적으로 내가 가진 귀중한 것을 남편에게 주고자 하는가 생각해본다. 아마 그런 적극성까지는 띄고 있지 않은 듯하다.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한다. 사랑도 배워야 한다.
프롬은 사랑에 필요한 요소로 배려와 책임감과 존중, 그리고 상대에 대한 깨달음을 들었다. 그리고 사랑은 맹세나 감정만으로는 부족하고 오직 행동으로 입증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이 마흔이 넘은 나이, 결혼 20년 차가 이제야 제대로 사랑에 대해 배우는 느낌이다.
그래도 우리 부부는 그나마 잘 사는 것 같다.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고,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한다. 배움은 이론의 습득과 실천이 동시에 필요하다. 프롬이 말하는 사랑의 기술을 잘 습득하고 우리 부부의 사랑과 결혼생활에 참고해야 할 것들은 잘 챙긴다.
프롬은 사랑을 하기 위해 훈련과 집중과 인내가 필요하다고 했다는데, 나는 특히 '집중' 부분을 읽으며 나의 부족한 부분을 발견한다. "집중은 내가 먼저 말하지 말고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울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며, 이 또한 마음을 내려놓은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그러자면 자신에 대한 감각을 키워야 하고 신체의 느낌과 변화를 더 잘 인식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동안 내가 남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남편에게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 달라고 요구했던 것 같다. 나를 표현하기에 앞서 상대에게 귀를 기울이고자 집중하고 훈련해야지 생각한다.
사랑을 적극적으로 주는 삶을 살아가야지. 사랑이 있는 삶, 행복이 있는 삶이다.
( 대화가 필요하다 )
육아에 치여서 한때 남편과의 관계가 소원했던 때가 있었다. 아이들로부터 해방되는 짧은 시간엔 각자 자신의 재미를 찾아서 핸드폰과 컴퓨터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마 보통 부부의 모습일지도.. 부부 금술이 좋은 아는 언니가 부부여행을 권한다. 남편이랑 나랑 둘이서 여행을? 처음엔 “에이~ 어떻게 남편이랑 나랑 둘이서 여행을 가요…”라고 했지만 “한번 가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과 제주도 여행을 갔다. 그리고 올레길을 걸었다. 그런데 한적한 올레길을 걷다 보니 할 수 있는 게 대화밖에 없다. 자연스럽게 몇 시간을 이야기하며 걷고 또 걸었다. 우리 부부의 대화는 그렇게 시작되고, 그 대화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중년의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각자의 감정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점점 대화의 주제는 육아에서 벗어서 우리의 ‘인생’으로 옮겨갔다. 우리 부부의 행복, 가족 이야기, 인생 이야기 그리고 중년인 우리의 미래 이야기들로 점점 채워져 간다.
이제 나는 주변의 친구들에게 권유한다. “남편과 둘이서만 여행을 다녀와~”라고. 그러면 그들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예전의 나처럼 반응한다. “남편이랑 둘이서만?”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가. 프롬이 말한 사랑의 요소 중 상대당에 대한 깨달음은 “대화”를 통해 가능하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프롬이 말한 사랑의 요소 4가지를 어느 정도는 갖추고 있는 것 같다. 배려와 책임감과 존중, 그리고 상대에 대한 깨달음.
(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우선 주는 것이다 )
남편은 중학교 동창들을 아직도 만나고 있다. 내가 남편과 연애할 때 나도 종종 만나던 오빠들이다. 그들의 근황과 소식을 남편을 통해 듣는다. 그런데 한 친구네는 부부관계가 심각하단다. 대화 없이 지낸 지 2달이 넘어간다고. 안타깝다.
남편 친구네 부부는 가장 드라마틱한 연애를 해서 결혼을 하게 된 경우라 누구보다 잘 살 줄 알았다. 그런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그 부부를 만나 같이 술이라도 먹고 싶다. 현실적으로는 서로의 환경이 어떤지 모르니 상대방의 행동을이해하지 못하는 상태가 너무 오래 지속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화가 없었던 거다. “사랑은 주는 것”인데 그 부부는 과연 적극적으로 서로에게 주려고 노력했을까..
주변에 행복한 부부가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남편과 아내는 책임감을 가지고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다. 부부가 행복해야 아이들도 행복하고 가족이 행복하고, 결국 나아가 그 감정이 친구에게, 동네에, 사회에 널리 퍼진다. 내가 만나는 동네 엄마들도 남편 흉이 아니라 남편과의 애정을 자랑해줬으면 좋겠다.
얼마 전 딸아이가 사회 수행평가 시험을 준비한다며 정리한 걸 열심히 외운다. 삼국시대에 관한 내용이다. 남편이 딸에게 테스트한다며 정리한 쪽지를 보며 질문을 했다. “한강의 지리적 이점은?" 그랬더니 딸은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완벽하게 답한다. 시험 준비를 완벽하게 하고 있구나 안심을 하면서도, 과연 이런 공부가 정말 아이들에게 필요한 공부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리고 “한강의 지리적 이점”이 책에 나열한 4가지 이외에도 더 많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책에 나오지 않은 답을 적으면 과연 선생님은 어떻게 처리할까 궁금하기도 했다.
남편과 이구동성으로 정작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은 “사랑”, “행복”과 같은 문제라며 열을 올렸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평생 우리를 쫓아다니는 화두들이다. 사랑에도 기술이 필요하다는데 그런 기술을 우리 아이들은 어디서 배울 수 있을까. 영화나 웹툰? 그리고 가끔 학교에서 실시하는 성교육으로 아이들의 배움은 끝난다. 그런 아이들이 연애하고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고 부모가 되고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
교육현장에서 사랑, 행복, 결혼, 가정에 대한 보다 진지하고 진정성 있는 교육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나와 남편은 그런 교육을 받아본 적 없지만 실천을 통해극복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많은 가정이 그러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대한민국의 아이들이 올바른 ‘사랑’의 기술을 익힐 길 바라고, 그전에 대한민국의 부부들이 먼저 실천하고 아이들의 본보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부모들은 사랑의 기술을 익힐 책임이 있다.
내가 퇴사하고 남편과 둘이서 하는 외식이 잦아졌다. 집에만 있을 나를 위한 남편의 배려이다. 내가 남편에게 줄 수 있는 배려는 무엇일까 생각하며 “사랑을 줄 수 있는 남편”이 있어서 행복하고, “내가 사랑하는 남편이 나를 사랑”해주어서 행복한 요즘이다. 함께 웃을 수 있는 사실만으로도 옆에 있는 이 사람을 사랑할 충분할 이유가 된다. 이 보다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오늘도 열심히 남편을 사랑하며… 함께 웃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