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 사이가 좋은 사람이 다른 사람과도 사이가 좋다. 반대로 자기 자신과 잘 지내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도 잘 지내지 못한다. 가장 중요한 소통은 나 자신과의 소통이다.
( 읽기, 쓰기, 말하기 )
인생 실험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가 뒤늦게 독서의 매력에 푹 빠졌다. 이 좋은 것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 내 인생 최대의 성과였다. 한때는 난독증이 아닐까도 걱정했는데, 이제는 옆에 책이 없으면 허전하다. 내 주위에는 읽을 책들이 항상 쌓여있고 나는 매일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
책을 읽으며 서서히 깨달은 사실 하나 더. 책을 읽는 행위는 인풋인 반면, 진정한 책 읽기의 완성은 아웃풋이라는 사실이다. 우선은 블로그에 서평을 빙자한 독후감을 썼다. 책의 요약보다는 내 생각에 초점을 맞추었다. 책을 읽고 나서 내 생각의 변화, 삶의 변화를 기록했다. 아웃풋은 책을 읽는 시간보다 두배 이상의 시간이 필요한 힘든 과정이었다.
나에게 좋은 책이라고 생각된다며, 어떤 내용이 나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는지 문장 하나만 건져도 책을 읽은 보람이 있다고 믿으며 "이 책은 나에게 어떤 변화를 주었나?"를 먼저 생각하고 적었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을 때는 별 감흥이 없다가, 마지막 장을 덮고, 어떤 내용으로 서평을 적을까 생각하다 보면, 이 책은 나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구나 느껴지는 책들도 있었다.
과거에 읽었던 책 목록을 보노라면, 책 내용보다는 서평을 적기 위해 고민했던 시간들, 그리고 내가 발견한 그 책의 가치들이 먼저 떠오른다. 그 책을 내가 어떻게 평가했는지, 어떤 면에서 나에게 좋은 영향을 준 책인지가 먼저 떠오른다. 아마 서평을 적지 않았더라면 가질 수 없었던 시간이었고, 그랬다면 나는 읽었다고는 하나 기억 못 하는 책들이 수두룩 했을 것이다.
서평과 함께, 현재 내 마음을 온전히 뺏긴 문장 하나가 있다면 따로 기록해두었다. 그리고 그 문장은 한동안 나의 일상을 지배했다. 나의 일상을 지배한 그 문장들과 나의 생각과 느낌은 고스란히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 주제가 되었다.
그렇다! 책을 읽기 시작하고, 글을 쓰기 시작하고, 나는 이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수다의 소재는 대부분 내가 읽은 책, 그리고 내 일상을 지배한 문장들에 관한 것이었다. '글'을 통한 아웃풋 대비, '말'을 통한 아웃풋은 새로운 차원의 소통이었다.
글을 쓸 때는 의식이 작용한다. 하지만 발화는 거의 무의식적이다. 발화를 위하여 내 뇌는 재빠르게 흩어져 있던 사실들, 내 느낌들을 체계화하고 구조화시키고 줄을 세워서 내보낸다. 상대방이 호응을 하고, 새로운 관점의 내용으로 답한다. 그러면 나의 뇌는 또다시 내 뇌 속 정보들을 재조직하며, 상대방의 호응에 답을 만들어 낸다. 가끔은 상대방의 의견이 참신하거나,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내용이라면 감탄하기도 한다. 기존의 내 생각들에 그 내용들을 받아들여 새로이 한다.
읽고 쓰고 말하는 일련의 과정은 결국 나와 대화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터득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 가장 중요한 소통은 나와의 대화이다, 독서와 기록을 통해 나와 대화하다 )
철없던 시절 나의 시선은 항상 외부를 향했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는지에 신경이 곤두섰다. 혹시라도 나에 관한 불편한 말을 들을 때면 인생 다 산 것처럼 슬펐다.
이제는 안다.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여야 하는 목소리는 나의 목소리임을.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내가 지향하는 삶의 가치관은 무엇이며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무엇을 할 때 쾌감과 즐거움을 느끼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지, 무엇을 배우고 싶고 어떤 도전을 하고 싶은지 등등. 인생을 살면서 제일 중요한 문제들이다. 내 삶이니까. 나는 나의 시선을 의식하며 내 삶을 살아간다.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나와의 대화는 ‘독서’를 통해 시작되었다. 알랭 드 보통은 <프루스트가 우리의 삶을 바꾸는 방법들>에서 이야기한다. “현실에서 모든 독자는,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그 자신의 독자이다. 저자의 작품은 만약 그 책이 아니었으면 독자가 결코 혼자서는 경험하지 못했을 어떤 것을 스스로 식별하도록 도와주는 일종의 시력 보조장치에 불과하다.” 우리는 책을 읽는 동안 나 자신의 독자가 된다. 그 책이 아니었으면 결코 혼자서는 경험하지 못했을 어떤 것을 스스로 식별하게 되고 인식하게 된다. 자기 자신 안에서 무언가를 인식하는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나와 대화한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동안 떠오른 머릿속 생각들, 더 나아가 나와의 대화는 휘발되기 쉽다. 머릿 속에 떠오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두서없는 대화들을 좀 더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했는지. 그래서 곰곰이 생각하고 정리할 시간을 가진다. 혼자 있는 시간에 차분하게 생각에 잠긴다. 나에 대한 생각이며, 내 인생에 대한 생각이며, 내 생각들에 대한 보다 명확한 생각들이다. 그리고 글로 적는다. 짧게 혹은 길게.. 기록을 함으로써 나는 보다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나를 알기'가 반복되다 보면 ‘아하.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 깨닫게 된다.
나는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시도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다. 단순하게 생각하길 좋아하고 복잡한 것은 딱 질색이다. 한번 마음먹은 것은 해야 직성이 풀린다. 뭐든 대충 하지 않는다.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제대로 해야 한다. 무엇이든 진정성을 갖고 일한다. 허투루 하지 않는다. 이상주의자다. 이상을 추구하는 고리타분함이 있다. 인생을 즐긴다. 인생은 즐거운 것들로 넘쳐난다. 그냥 이렇게 글을 쓰는 것도 좋다. 혼자서도 잘 논다. 심심할 틈이 없다. 인생에 대한 진지한 질문에 심각해지는 경우가 많다.
2014년 경에 시작한 블로그는 나와의 대화의 공간이었다. 서평이라고 불렀지만, 그건 형식일 뿐이고 결국 블로그라는 지면을 통해서 나는 나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난 직후엔,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곰곰이 자신을 관찰했고, 책을 통해 내 생각의 변화가 있는지, 있다면 어떤 것들인지 머릿속으로 정리해 보았다. 딱히 영감을 받은 게 없어도 엉뚱하게라도 무언가와 연결시켜 볼 만한 게 없을까 고민했다. 그렇게 나와의 대화들이 집약되어 ‘서평’이라는 형식을 빌려 블로그에 나타났다. 서평이 쌓이고 쌓이면서 나에 대한 이해는 깊어지고 점점 나를 사랑하게 되고, 외부를 향하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나의 내면을 향하게 되었다.
생각은 휘발되기 쉽다. 찰나 떠오르는 생각들이 무수히 많기 때문에 진지하고 묵직한 내용이더라도 순식간에 사라져버릴 수 있다. 이런 것들을 부여잡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기록이 필요하다. 일기도 좋고, 나처럼 블로그도 좋다. 기록을 하면 할수록 자신과 나누는 대화의 수준을 깊어지고 넓어진다.
( 나는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자기 결정적인 삶 )
나와 소통하기 시작하고 나를 어느정도 이해하고 나면 이제는 나는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소위 '자기결정적인 삶'이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이며 나의 삶을 결정하는 것도 나 자신이다. 페터 비에리의 <자기 결정>을 읽는다. 그가 말하는 '자기 결정의 삶은 어떤 모습'인지 하나씩 마음속에 담아본다. 두고두고 상기하며 내 삶의 점검하는 기준으로 삼아도 좋을 듯하다.
1. 외부로부터의 압력이 없어야 | 법적, 도덕적 규범의 틀 안에서 외부로부터의 강제가 없는 삶, 그리고 어떤 규범을 통용할 것인지의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삶
2. 내적 독립성 | 내 삶의 작가, 내 인생의 주체가 되는 것. 단, 우리의 의지와 경험이 자신의 개인적 정체성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는 삶의 역사라는 바탕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동시에 삶의 역사가 주는 조건에 의해 제약이 되어야 한다.
3. 스스로를 테마로 삼기 | 우리 스스로를 테마로 삼아서 스스로를 돌볼 수 있는 것. 우리가 어떤 모습이고 싶은가에 대한 생각이 '자아상'이며, 우리의 삶이 내적으로 그리고 외적으로 우리의 '자아상'과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을 때, 그리고 행위와 사고와 감정과 소망에서 우리가 되고 싶어 하는 모습의 사람이 되었을 때, 이것이 자기 결정적 삶이라 할 수 있다.
4. 스스로를 알기 | 자기 인식. 의식되지 않은 삶의 이력을 꿰뚫어 보는 작업을 시도해야 함. 개인의 삶은 겉으로 드러나는 이력이나 의식되고 있는 내적 이력이 보여주는 것보다 더 많은 생각과 감정과 상상력을 내포하고 있다.
5. 자신을 말로 표현하기 | 우리가 무엇을 생각한다고 믿게끔 속이는 맹목적인 언어 습관에 대해 잠들어 있는 촉을 세우는 것을 뜻한다. 자기표현, 즉 언어로 표현하고 만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개인적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작업, 무의식적인 것을 언어로 나타냄으로써 의식 위로 끌어올리는 작업이 필요
6. 시간을 이야기하기 | 스토리가 있는 자아상은 미레에까지 죽 이어져 쓰인다. 그저 하루하루 보내면서 미래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한 계획을 가지고 만나게 되는 그 무엇으로 경험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누가 되고 싶은지에 대한 그림, 즉 우리 자신에게 설명하는 그대로 우리의 과거와 일치하는 그림이 필요하다.
7. 강력한 아군으로써의 문학 | 문학을 읽고 쓰는 것. 문학작품을 읽으면 사고의 측면에서 가능성의 스펙트럼이 열린다. 삶을 변화시키는 데에 독서보다 좀 더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이야기를 직접 쓰는 것이다. 소설 한 편을 쓰고 나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이전의 그와 완전히 똑같은 사람이 아닌 것이다. 전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없는 이유는 언어와의 관계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8. 타인:도덕적 친밀감 | 도덕적 감정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질문을 계속적으로 던진다. 이 질문은 자기 결정에 관한 문제가 나왔을 때 우리를 이끄는 질문이기도 하다. 도덕적 친밀감은 비판적인 내적 거리를 자기 자신에게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유지하는 인간관계이다.
9. 타인의 시선 | 자기 결정적으로 발전해나가는 일은 타인의 시선을 맞닥뜨리고 그에 맞설 때만 가능하다. 타인의 시선과의 대결이 자기 결정적인 성질을 띠려면 자기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묻고 또 묻지 않으면 안 된다.
10. 조정이 주는 악랄한 독성 |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며 깨어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사물을 서술하는 데에 이 방식이 정말로 옳은 방식인가? 내가 생각하며 느끼는 방식과 정확히 일치하는가? 막강한 권위에 의해 제정된 요란한 공식이 띠는 당위성이 지극히 당연하게 다가올수록 더욱 끈질기게 물고 늘어져야 한다.
( 나의 모습은 내가 결정한다. 내 삶을 아름답게 창조한다. )
자신과 대화하며 내가 누구인지 끊임없이 알아가는 과정은 결국 나의 본질, 즉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앞에서 다뤘던 ‘뇌’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면 보다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다. 나 자신에 대한 반복된 생각은 나의 뇌 회로도의 특정 신경을 자극하는 반복된 활동이 된다. 내가 반복해서 생각하는 대로 신경회로는 활성화되고 강화된다. 그러다 보면 내가 생각하고 의도한 대로 나 자신이 되어간다.
“여러 상대와 나누는 대화부터 당신이 속한 문화까지, 삶의 모든 경험들은 당신 뇌의 미시적인 세부구조를 변화시킨다. 신경학적으로 말하면, 당신이 누구인가는 당신이 어떤 곳들을 거쳤는가에 달려 있다. 당신의 뇌는 끊임없이 자신의 회로를 다시 작성함으로써 변신한다. 그리고 당신의 경험들은 유일무이하므로, 당신의 신경 연결망의 광역적, 세부적 패턴들도 유일무이하다. 그 패턴들은 평생 동안 변화를 멈추기 않으므로, 당신의 정체성은 움직이는 표적과도 같다. 당신의 정체성은 절대로 종착점에 이르지 않는다.” <더 브레인> -데이비드 이글먼-
우리의 뇌 회로도는 평생 변화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의 정체성은 움직이는 표적과도 같다. 지금의 내 마음이 나를 결정하고 나의 정체성을 만든다. 오늘도 내가 생각하는 대로 나는 변화고 있다. 우리에게는 “자아를 찾는 것”이 아니라 “자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