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이어가야 하는데 이 글을 발행하기까지 한 달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다. 잡고 보니 무거운 주제인데, 나는 감히 이만한 재료를 다듬을 정밀한 세공사가 못 되는 것이다.
요즘 어르신들 사이에서 뜨는 핫한 보험은 간병인 보험이랜다. 조금이라도 더 늙기 전에, 아니 늦기 전에 들어놓아야 한다고 서두르시는 거랜다. 피차 서로 늙는 몸, 부부 중에 누가 먼저 떠날지 모르는 하루 앞이 안개인 끝자락 여정이 기다린다. 오늘 밤은 내 곁을 지킨다고 하여도 끝까지 병원 보호자 침상에서 코 골고 있으리라는 법은 없다.
그러면 자식들 중 하나가 나를 보살필 것인가. 근 백 년 전에는 애라도 많이 낳았지, 장성한 자식들이래 봤자 겨우 둘 정도가 표준인 근래에 들어선 교대도 쉽지 않다. 생업을 내려놓고 흔쾌히 보호자 침상에 누울 자식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제 돈 버는 것도 마이 라이프의 존엄을 지켜가며 밸런스를 맞추는 세대인데 희생을 바라는 건 선을 좀 넘는 일이지. 그래도 부모인데 네가 뭐라고 남의 일에 함부로 얘기하냐고 말하신다면, 본 게 그거라서.
80 초반의 여 환자였다. 진단명은 대장암, 떨어진 면역 탓에 1인실에 역격리 중. 보호자는 오로지 아들 한 사람, 그 외에 다른 이는 병원을 찾은 적이 없다. 과묵하고 쑥쑥한 아들 홀로 어머니의 침상 곁을 지킬 뿐이었다. 그래도 입원 초기엔 제법 보호자분과 대화를 나누었던 것 같다. 초점이 또렷한 그분에게서 노모의 병환에 대처하는 비장함도 보였다. 그러나 희망과 달리 환자의 증상에는 차도가 찾아오지 않았다. 40킬로가 될까 말까 한 자그마한 체구로 그 연세를 감당하고 질병을 짊어지기 버거웠다. 다인실이면 곁에 말 나눌 사람이라도 있으련만. 장기화되는 1인실 생활은 고독과도 싸우게 만들었고 비자발적 은둔 생활자로 만든다.
사실 1인실은 VIP기준이라 편리를 따지자면 호텔실이다. 천장에 박힌 조명도 다인실보다는 곱절이고 쾌적함 또한 비할 바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1인실에 들어가기가 께름칙해지는 것이었다. 미닫이 문을 열면 음습하고 침침한 그 기운이 뭉게뭉게 퍼지며 병실 안을 부옇게 메웠다. 천정에 등이라는 등은 분명 다 밝혔는데도 시각으로 감지되지 않는 어두움이 보인다. 보호자는 제 때 이발소를 찾아가지 못해 이마 위로 덥수룩한 덤불이 자라고 매일 매끈하게 면도되던 턱은 거뭇거뭇하다. 차림새야 그럴 수 있지, 오랜 시간 홀로 간병을 하는 것만으로도 갸륵하니까.
단지 음침함을 넘어서는 낌새를 알아차린 특별한 사건이 발생했다. 인계가 시작되기 전 다음 근무자는 반드시 병동물품을 카운팅 하며 routine을 시작한다. 폴대 몇 개, 모니터 몇 대, 주사펌프 몇 대, 응급 카트 내 약품 및 키트 등등.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자꾸 의료용 가위가 사라지는 것이다. 스테이션을 샅샅이 뒤져보고 탈의실에서 퇴근했던 근무자들의 유니폼 호주머니까지 뒤져보았지만 사라진 가위는 까꿍 한 번 없었다. 그러다가 병실 내 모든 냉장고에서 오래된 아이스팩을 수거하던 중 가위가 나타났다. 예의 그 1인실에 비치되었던 냉장고 냉동실에서. 이후에도 가위는 종종 사라졌다. 그러면 말없이 1인실 내를 살피며 수거해 오고 또 사라지면 또 찾아오고. 병동 비품이라 개인소지 하시면 안 된다고 말씀드렸지만 가위는 다시 그곳에서 우리와 숨바꼭질을 했다.
또 하나의 장기 투병 사례를 기억해 본다.
반올림하면 90세인 남 환자였다. 기저질환은 당뇨, 주 진단명은 폐암, 오랜 침상 생활로 얻은 합병증은 욕창. 의식은 있지만 지남력은 흐려 인지의 수준은 이미 8개월 아기의 것과 같음. 입원부터 임종까지 곁을 지킨 단 한 사람의 간병인은 50대인 딸. 부쩍 마르긴 했지만 기본 체구가 있던 남자 환자를 여성 혼자의 힘으로 체위 변경을 하고 옷을 갈아입히며 몸을 닦고 기저귀를 가는 일체의 간병행위는 3D 코스였다. 하지만 3호실의 창가에 자리한 그 침상을 지키는 긴 시간 동안, 보호자는 우리 아버지 우리 아버지 하며 낯빛 한 번 암전 된 적이 없었다. 시선은 애틋했고 정성은 지극했다. 보기 드문 케이스라고 우리는 사담 같은 인계를 나누었다. 환자는 머잖아 누워 지내던 침상에서 임종을 맞이하였고 딸은 슬퍼는 하였지만 그동안 애써 준 간호사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후회가 없는 얼굴이었다.
비단 위 90세 환자의 케이스뿐만이 아니라 여느 장기 입원에도 보호자들의 안색에 찌든 삶을 찾을 수 없는 경우들이 간혹 있었다. 첫 번째 일화로 든 사례와는 다른 결말이다.
많은 연세, 오랜 투병, 잠깐의 회복과 다시 찾아오는 악화의 지난한 싸움. 그러나 다른 장르의 간병일지가 되어버리는 차이점은 무엇이었으리라 생각하는가?
살짝 눈치를 채고 있다면 적어도 쓰니보다는 인생을 좀 더 사신 분이지 싶다.
경제력. 슬프게도 단 그 차이였다.
TV에서 뵙는 분들이라든가 그 가족들, 병원 고위 간부급 가족, 아들이 무슨 무슨 장관이니 교수니 하는 분들치고 병상이 어두운 곳은 보지 못했다. 지키는 보호자가 가족이 아니라 간병인이라 할지라도 음침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마, 내가 건강이 없지 치료할 돈이 없나. 그런 여유가 혈관을 더듬는 간호사 앞에 팔을 턱 내놓는 동선에서도 배어 나왔다. 돈으로 생명을 살 수는 없어서 결국엔 임종을 맞이하는 환자들도 당연히 있지만 슬픔에 담기는 단어는 순수한 애도, 이별과 상실이다. 유가족에게서 흐르는 눈물에 그늘이 드리워져 혼탁하게 흐리지 않는다.
충분한 치료비가 준비되어 있다는 건 무시할 수 없는 자원이다. 형제 중에 누구라도 한 사람이 나서면서 병원비도 생계도 걱정 마라 하고 천금을 탁 내놓을 수 있다면 나머지 형제는 걱정 없이 간병에만 힘을 쏟을 수 있다.
그게 아닌 다음에야 어찌 중환자실 하루만 다녀와도 백단위 깨지는 병원비를 감당할 것이며, 어찌 생계 벌이를 제쳐두고 간병을 한단 말인가. 대부분의 보호자들은 속상해하면서도 피로하고, 미안하지만 지치고, 곁에 더 붙잡고 싶지만 우울해지는 그런 패턴을 반복했다. 그러니 어떻게든 자기 재산을 자식들에게 일찍 나눠주지 말고 끝까지 쥐고 있어야 한다는 웃지 못할 농담이 작금의 어르신들에게는 진담인 것이다.
한국은 이제 초고령화로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시대가 되었다. 90이 가까운 부모를 봉양하기에는 6~70대 부모도 힘들다. 6~70대 부모를 봉양하기에도 3~40대는 힘들기 마찬가지다. 예전의 40대는 거진 자녀를 다 키워 부모를 챙길 여력이 있었지만 요즘은 한창 키울 나이다. 40이 넘은 내 친구는 이제 첫아기를 낳기도 하는 만혼의 풍조에 부모님을 살뜰히 살피는 효를 다하기 어렵다. 뭐 사실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자식에게 더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쩌겠는가.
보호자가 없이도 병원 생활이 가능한 간호간병 통합시스템이 일부 병원에서 시행 중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수요는 더 늘어나 확대되지 않겠나. 민간 보험과 간병인 회사와 병원의 삼박자 쿵짝짝이 잘 들어맞아지는 상품이 고액을 지불하지 않더라도 접근 가능한 서비스로 제공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래서, 긴 병 앞에 효자는 있는가. 아니, 가난한 자식은 효자가 될 수 있는가.
필자는 답할 수 없다. 부유한 집안에도 불효자는 나오는 법인데 뭐라고 딱 잘라 말한단 말인가. 질문을 던져놓고는 정작 해결할만한 글 깜냥과 인생 깜냥이 모자란다.
그러나 부모가 알 것이다. 내 자식의 눈빛만 보아도, 표정으로 미루어 그 마음을 살피는 일이란, vip 침상이든 다인실 구석 침상이든 거기 누워 계신 아비와 어미에겐 오랜 습관이 되어 심장에 박힌 굳은살이 아니었겠나.
결국 내리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