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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

몸이 낡아간다는 건

by 빨강



어느 날부턴가 손을 위로 올릴 수 없었다. 샤워를 할 때 어깨가 뒤로 돌아가지 않아 등을 닦기 어려웠다. 그런 채로 몇 달을 살았다.

마음의 상처에는 예민하게 굴면서 몸의 상처에는 무뎠다. 평소 몸이 아프면 참을 수 있을 때까지 참는 버릇이 있었다.


모로 자는 버릇 때문에 돌아누울 때마다 어깨가 짓눌려 깨기를 여러 번. 6개월쯤 지나자 참기 어려운 통증에 일상생활이 어려워졌다.

결국 정형외과를 찾았다. 의자에 앉아 진료 차례를 기다렸다. 앞서 들어간 키 작은 노부부의 진료가 길어졌다. 노부부가 진료실을 나와 손을 꼭 잡고 치료실로 들어가자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여러 가지 검사를 받고 회전근개 파열진단을 받았다. 수개월 치료를 권고받았다.


일을 많이 하시나요? 무거운 걸 많이 드시나요?


어깨의 노동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일을 많이 하던가? 물음표 수십 개가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이 정도도 안 하고 사는 사람이 있나.


찜질팩을 어깨에 두르고 천장을 쳐다보았다. 천장에서부터 내려온 커튼봉과 커튼이 베드마다 드리워 있었다. 물리치료실은 커튼봉까지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다. 새하얀 커튼 사이로 옆 베드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키 작은 노부부의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할아버지는 커튼을 사이에 두고 할머니를 살폈다. 물리치료가 바뀔 때마다 아프냐고 물었다.


여보, 아파?


아구구 소리가 대답으로 들려왔다. 먼 곳까지 치료를 받으러 온 새까만 얼굴의 노부부. 밭에서 보낸 세월이 얼굴에 고스란히 남은 노부부. 서로를 의지해 치료를 받고 서로를 의지해 집으로 돌아갈 노부부.


체외충격파 치료를 받고 나자 어깨에 얼룩덜룩 멍이 들었다. 하루를 곱씹어 봤다. 청소, 빨래, 밥 하기, 고양이 돌보기, 들어온 일을 하고,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어디에도 무리라는 말은 보이지 않았다.


늙는다는 거구나. 내가 늙고 있구나. 이제 그럴 나이가 되어가는구나. 얼굴이 까매지도록 일을 하지 않아도, 사람의 몸은 늙는 거구나. 당연한 사실을 몸이 아프고 나니 깨닫는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쇠약해지는 걸, 지금까지 모르고 살았구나.


주섬주섬 매무새를 다듬고 머리를 쓸어 넘기고 물리치료실을 나선다. 엘리베이터 앞에 노부부가 허리를 구부리고 서 있다. 나는 엘리베이터 앞 계단을 올라간다. 언젠가 한 층도 걸어 올라갈 수 없는 내가 노부부 뒤에 서 있는 모습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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