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새것

새로운 도시와 오래된 것 사이에서

by 빨강



주말농장에서 키운 푸성귀는 파릇파릇했다. 연녹색 잎채소가 싱싱해서 먹자마자 기분 좋은 쌉싸름함이 느껴졌다. 여린 잎에서 나는 싱그러운 맛이 산뜻했다.


열세 살에 이사 온 도시는 모든 게 새것이었다. 새 아파트, 새 상가, 새 학교, 새 도로, 새 백화점. 주변에선 새것의 냄새가 났다.


태어나서 살았던 동네는 단층집이 밀집돼 있었다. 멀리 떨어진 20년 된 아파트도 4층짜리 건물이었다. 나보다 먼저 생겨난 것들이 천지였다.


신도시로 개발된 동네는 사방으로 보이는 모든 게 아파트였다. 아파트가 끝도 없이 서 있었다. 상아색 고층 아파트는 태어나서 처음 본 높은 건물이었다. 주변에 보이는 모든 게 역사가 없는 곳에서 나는 아파트 사이로 보이는 푸른 조각난 하늘을 보았다.


오래된 것은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논, 밭, 과수원 위로 지어진 건물들은 뿌리가 없었다. 전봇대에 걸쳐진 검은 전깃줄도, 그 위에 앉아있던 제비나 까치도 없었다. 간간히 비둘기 몇 마리가 날아와 빈 아스팔트 바닥을 쪼았다.


여전히 공사 중인 곳에서는 한 밤 중에도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다. 큰 덤프트럭이 지나간 자리에는 흙이 한 줌씩 소로보 빵처럼 떨어져 있었다.


지어진지 채 2년이 되지 않은 아파트 옆에는 빈 공터가 있었다. 그 공터만이 예전에 이곳이 어떤 곳이었는지 기억하고 있었다. 수풀 속에는 알이 듬성듬성한 포도와 산딸기, 뱀딸기가 얽혀서 잡초와 같은 속도로 자라고 있었다. 허허벌판은 작물을 키워냈던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몇몇 사람들이 그 공토를 개간해 씨를 뿌렸다. 흙이 노는 꼴을 못 보는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공토 가운데에는 움푹 들어간 땅이 있었는데 낮은 곳으로 모인 물이 고여 있었다. 물 주위에는 늘 수풀이 우거져 있었고 모기떼가 바글바글했다. 노인들은 그 물을 길어다가 밭에 물을 댔다. 노인들은 모기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들에겐 밭에 물을 주고 작물을 잘 키워내는 게 중요했다.


그렇게 여름이 되자, 열무나 근대, 상추, 파가 자라났다. 줄기는 기운이 없고 시들시들했다. 잎사귀 가장자리에는 벌레 먹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다. ‘농약을 치지 않은’ 작물을 노인들은 귀하게 대접했다. 밭에서 바로 딴 상추를 연하다며,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모든 것이 새로운 곳에서 사람들은 익숙한 것들을 찾으려고 애썼다. 그 동네에서 농사를 지었던 노인들은 공토를 개간했고,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온 아이들은 탐색전을 하며 누구와 친해질 수 있을지 눈치를 봤다. 엄마들은 옷을 잘 차려입고 백화점으로 시장을 보러 갔다. 새것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어쩔 줄 모르는 것은 나뿐이었다.








keyword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