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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임

by 빨강



방문이 탁탁 소리를 내며 닫혔다 열리기를 반복한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온 바람이 덜 닫고 잔 방문을 밀었다, 당긴다. 꽉 닫히지 못한 방문이 조금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한다. 들숨에 닫혔다, 날숨에 열리는 것처럼 숨소리가 탁탁 소리에 맞춰진다.


잠이 설핏 들었다, 깬다. 한 개의 눈이 보였다, 말았다. 문 밖에 서 있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어둠 속에서 뿌연 게 왔다 갔다 한다.


도시에 살면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한 건 내 집에 모르는 사람이 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저층은 피하고 오래된 빌라일지언정 꼭대기 층을 선호했다. 나 말고는 올라올 일이 없는 구조. 그럼에도 밤이 되면 창문이 털컥거리는 소리에도 선뜻 깨었다.


빌라는 하루가 다르게 노쇠해 갔고 어느 순간 현관문의 아귀가 맞지 않기 시작했다. 바람은 그 틈을 귀신같이 파고 들어왔다. 겨울에는 현관문에서 찬바람이 들어왔다. 현관이 얼음장이 되었다. 어느 순간 현관문이 내려앉아 번호키 자물쇠가 어긋나기 시작했다. 요령이 없으면 현관문이 잠기지 않았다. 그때부터 집이 안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설비사무실에 문을 열었다. 오래된 동네일수록 인테리어, 벽지, 설비, 누수탐지 사무실이 많았다. 사무실은 무척 서늘했다.

가구라고 해야 푹 꺼진 2인용 소파, 철제 책상, 회전의자가 다였다. 나머지는 이름도 쓸모도 알 수 없는 공구와 타일, 책자, 펜하나, 장부 하나가 다였다. 그곳에서 현관문 교체 상담을 했다. 스포츠머리가 하얀 사장님은 현관문 도록을 보여주셨다. 수 백개의 비슷비슷한 현관문 중에 눈에 띄지 않는 걸 골랐다. 아무도 내가 여기에 사는 걸 몰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투영된 디자인이었다. 공사 날짜를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뒤면 사라질 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녹슬고 휘어진 경첩을 오래 바라보았다. 열고 닫았던 수많은 시간과 우리 집 문을 열었던 사람들이 떠올렸다. 이 문은 수많은 사람들을 품었던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 문을 열었던 여러 가족의 역사를. 나의 반쪽뿐인 역사를. 내가 문을 열고 들어오길 기다리던 내 고양이를 기억하고 있다.


아귀를 맞춰 문을 닫자, 섭섭하고 서러운 마음이 불쑥 올라온다. 물건의 수명에 대해, 쓰임이 다했을 때에 대해, 나의 손을 스쳐간 모든 것들에 대해. 내 쓰임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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