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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급차

일상이 변하는 순간

by 빨강




며칠 집을 비웠더니 전기밥솥에 남아있던 밥 한 공기가 바짝 말라붙어있다. 반투명한 밥알이 엉겨 붙어 밥솥에 딱 붙어있다. 누군가의 살갗을 벨만큼 마른 밥알은 날카롭고 단단하다. 개수대에 놓고 물을 틀자 덩어리째 떠오른다. 밥솥을 문질러 닦자 손이 밥알에 베일 것 같다. 일상을 채우던 물건들이 어느 순간 몸을 위협한다.


자정이 넘은 시각, 골목으로 구급차가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들어온다. 가까이에서 들리는 소리. 앞 건물에서 불이 번쩍번쩍한다. 잠시 소란스럽다. 누군가 들것에 실려 나온다.


할머니는 자다가 멀리서 구급차 소리가 들려오면, 누가 또 죽으러 가는구나라고 혼잣말을 했다.


노인들이 많이 사는 동네에는 구급차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렸다. 들것에 실려간 노인들은 대부분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요양병원에서 집에 가고 싶다고 자식들에게 하소연을 하다가 끝내 병원 침대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노인들은 놀이터 벤치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오래된 이웃의 안부를 전했다. 노인들에게 죽음은 오래된 이웃 같은 것이었다.


할머니는 급정거하는 버스에서 굴러 골반이 부러졌다. 구급차에 실려 가서 동네에서 가장 큰 종합병원에 입원했다. 수술이 잘 된다고 해서 모두 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팔십이 가까운 나이라 상처에 살이 아물지 않았다. 입원 기간은 점점 늘어났다. 회복은 끝내 되지 않았고, 병원에서 더 해줄 게 없다는 소리를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결국 며칠을 누워만 계시다가 돌아가셨다.


모든 것이 흉기가 되는 순간이 있다. 내가 약해지는 순간. 설거지에 불은 손이 수전에 부딪히면 살껍질이 쉽게 벗겨진다. 여름에 청소기를 돌리면, 땀에 밀려 청소기 손잡이에도 손이 까진다. 집안에 모든 것들이 나를 위협하면, 원 쓸모와 다른 게 된다.


할머니는 시장을 가는 길이었다. 그저 일상이었다. 앞 집 할아버지도 한밤에 화장실을 가던 중이었다.


눌어붙은 쌀을 세 시간 불렸다. 그래도 원래대로 되진 않는다. 시간이 지나 오래된 모든 것들은 영영 원래대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좋게든 나쁘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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