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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두나무

초여름의 맛

by 빨강



앵두나무는 농수로 방둑 위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뿌리 밑 4미터 아래에 농수가 흘렀다. 물은 깊지 않았지만 방둑이 높아서 발을 헛디디면 다리가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높이였다. 농수로 시멘트 가장자리에 녹색이끼가 짙게 끼어있었다. 앵두나무는 그 물을 먹고 가지마다 빼곡하게 앵두를 맺었다.

빨갛고 아름다운 보석은 쉽게 물렀다. 물기가 가득 찬 열매는 새콤하고 달콤하고 약간 떫었다. 새들이 날아와 가지에 달린 잘 익은 앵두를 먼저 따 먹었다. 나무 밑에는 소화되지 못한 새들의 배설물이 붉게 퍼져있었다.


아빠는 앵두가 달리는 계절이 되면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앵두가 열렸니?


아빠는 앵두가 열리는 계절에 언니네 집에 오지 않았지만, 매년 아빠는 앵두의 안부를 물었다. 그 계절에 앵두를 따러오는 사람은 나였다. 앵두나무 가지를 형부가 잘라주면 바닥에 앉아 가지를 손끝으로 훑었다.

과즙이 꽉 찬 앵두를 살살 가지에서 따면 손톱 끝이 빨갛게 물들었다. 농수로 가까이에 있는 가지에는 앵두가 항상 더 많이 열려 있었는데, 형부는 땡볕에 방둑 가까이에 발을 딛고 톱질을 했다. 형부가 빠질까 봐 불안 불안해하며 지켜보다 보면, 형부는 앵두가 잔뜩 달린 가지를 잘라 내 앞에 놓아주었다.


앵두는 할머니가 좋아했다. 할머니와 살던 집 마당에도 앵두나무가 있었는데, 진딧물이 끓어 열매는 몇 알 맺지도 못했다. 앵두나무는 병충해에 취약했다. 우리 자매는 그 앵두를 한 알씩 소중하게 따서 터질까 봐 먼지만 살살 불어 먹었었다.


아빠는 앵두나무에 알알이 열린 앵두가 예뻐서 좋다고 했다. 아빠 어릴 적엔 동네 우물가에 꼭 앵두나무 있었다고했다. 앵두나무는 벌레 먹기 십상인데, 언니네 집 앵두나무는 벌레를 먹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서 좋다고.

아빠의 말이 언니가 아프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들렸다. 언니가 가꾸는 정원은 언니를 닮아있다. 언니가 집을 지을 때부터 있던 앵두나무는 대문 자리에서 대문이 없는 언니네를 지키고 있었다. 6월 중순이 되면 빨갛게 익은 앵두가 언니네 집 앞에서 언니보다 나를 먼저 반겨주었다.


앵두를 한입 가득 넣으면 과즙이 입안에 터진다. 새콤하고 달콤하고 떫은맛이 가지에서 막 떨어져 나와 입으로 들어온다. 초여름의 맛이 신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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