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수세미

촘촘한 시간

by 빨강



노인의 머리 위로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었다. 가장 더운 3시 실을 손가락으로 감았다가 코바늘로 잡아 뺐다. 노랑, 빨강, 초록, 보라, 비닐 날개가 있는 실로 노인은 동그랗게 모양을 잡아 수세미를 떴다. 한 개에 3천 원, 4개에 만원. 잘라 만든 골판지 박스에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써져 있었다.


노인은 고개를 떨구고, 정수리에 땡볕을 맞아가며 쉬지 않고 손을 놀렸다. 듬성 등섬 한 짧은 머리칼 사이로 땀이 맺혔다. 뜨자마자 팔려 나가는 통에 바닥에 놓인 수세미는 한 개를 넘지 않았다.


지역 공동체에서 하는 뜨개 강좌에 참석했다. 그날의 목표는 다른 뜨개방식으로 수세미 두 개 뜨기. 실을 길게 늘어뜨리고 사슬 뜨기를 이어갔다. 사슬에 이어 뜨기를 하려는데 어디가 코인지 어디에 바늘을 넣어야 하는지 내가 뜨고 있는 게 맞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뜨개의 모든 사슬 꼬임이 구멍 같아 보이고, 또 모든 코에는 코바늘이 들어갈 구멍이 없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한 시간을 쩔쩔매다가 다른 참여자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하나를 완성했다. 적어도 뜨개에서는 손재주가 없었다. 뭘 하나 완성하려면 늘 시간이 걸렸다.


노인은 무슨 힘으로 뜨개를 쉬지 않고 뜨는 걸까. 실만 있으면 완성되는 마법은 어디서 배운 걸까.

대학병원 앞에서 좌판을 펼치고 쪼그려 앉아 오가는 환자들에게 수세미를 파는 노인. 능숙한 솜씨. 병석에 누운 아내에게 배운 걸까. 먼저 떠난 아내에게 배운 걸까.

시간을 뜨고 있는 노인에게, 주문이 들어온다. 아줌마는 4개가 뜨여질 동안 노인의 손을 보고 있다. 마디가 두드러지게 튀어나온 햇볕에 오래 익은 손이 바쁘게 움직인다.


천천히 하세요.


아줌마는 노인을 재촉하지 않았다. 노인은 그러거나 말거나 대꾸도 없이 똑같은 속도로 멈추지 않고 수세미를 떴다. 실이 실끼리 얽히면서 하나의 짜임을 만들고, 조금씩 다른 수세미가 만들어졌다. 수세미 하나는 가운데가 빨갛고, 또 하나는 끄트머리가 초록색이었다. 시간이 짜인 결과물은 같지만, 세세히 보면 생김새가 달랐다. 똑같은 건 없었다. 노인은 금세 4개를 뜨고 만원을 벌었다. 이제야 일어나 등을 펴고 바지 주머니에 돈을 접어 넣었다. 황토색 바지에 진 주름이 노인의 얼굴을 닮아있었다. 세월이 지나간 자리가 실이 감겼던 손가락처럼 깊게 파여 있었다. 뜨게를 하는 시간에도 비켜갈 리 없는 시간이 노인의 온몸에 흔적을 남겨 놓았다.










keyword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