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하절기 도서관 자료실은 저녁 9시까지다. 집에서 15분만 걸으면 도서관이 있다. 도서관은 언제나 어둠 속에서 홀로 빛난다. 밤의 도서관에는 열람실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키오스크로 좌석을 선택한다. 원하는 것을 위해 늦게까지 공부하는 사람들. 나는 도서대출을 위해 자료실로 올라간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서가 사이에서 책을 찾고 있다. 키가 작은 여자가 헐렁한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시장바구니에 도서를 가득 넣는다. 책을 읽는 사람이 많다. 각자 자신만의 책을 찾아 서가 옆으로 한 발짝씩 움직인다. 천천히 책 등을 읽는다. 자신만의 보석을 우연히 찾으려고.
미리 캡처해 둔 도서번호를 찾아 서가로 들어간다. 다양한 작가의 작품이 한 시리즈로 줄지어 서 있다. 유독 얇아진 책을 꺼내든다.
도서관에 있는 책들은 유독 책장이 얇다. 사람이 넘긴 책장은 책을 얇아지게 만든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는 흔적이 있다. 그 흔적은 전 사람의 것이기도 하고, 전전 사람의 것이고 하고, 아주 오래전 흔적이기도 하다.
흔히 만나는 건 연필로 친 문장 사이에 밑줄, 체크 표시, 괄호. 어느 날은 과자가루, 어느 날은 책갈피, 어느 날은 메모지, 긴 머리카락 한올. 어느 날은 사설 오락실에서 알바를 하던 공대생의 흔적이 있다. 포카 점수를 계산하는 종이를 이면지로 수학문제를 풀거나, 그 책의 강의를 메모한 내용으로 말미암아 이 책을 읽는 사람을 상상해 본다.
각자 다른 이유로 똑같은 책을 읽는다. 과제라서, 유명해서, 영화로 나와서, 베스트셀러라서. 추천받아서.
책 속의 흔적을 만날 때마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고, 기간 내에 반납했을 누군가를 떠올린다. 도서관이 이어주는 모르는 사람과의 느슨한 연대가 반갑다.
책 사이에 끼어 있는 과자부스러기를 털고, 밑줄 그은 부분을 한번 더 유심히 보고, 공대생의 흔적은 그대로 두고 반납한다. 공대생이 한번 더 이 책을 대출해 과거 자신의 흔적을 보길 바라며 이면지를 읽고 그대로 책 사이에 꽂아둔다. 사람의 흔적이 도서관 가득 꽂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