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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치국수

우러나는 맛

by 빨강




일요일 점심 메뉴는 잔치국수나 칼국수일 확률이 높았다. 모처럼 아빠가 늦잠을 자면, 엄마는 국물멸치를 양은냄비에 한 줌 넣고 국물을 우렸다. 은백색의 비늘이 맹물에 떠다니는가 싶다가 노란 육수가 멸치에서 우러났다. 손으로 멸치가 짓이겨질 때까지 끓이다 보면 멸치의 몸통에서 대가리가 떨어져 나갔다. 흰 멸치의 눈알이 육수가 끓어오를 때마다 떠올랐다가 잠겼다.


아빠는 할머니가 끓여주는 잔치국수를 정말 좋아했다. 할머니의 국수를 닮은 엄마의 국수도 좋아하게 됐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건 한여름에 국수를 끓일 용기가 있다는 뜻이다. 뜨거운 불 앞을 지키며 가족을 위한 국수를 말 용기.


맹물이 끓어오르자 국수를 한 줌 어슷어슷하게 손목을 돌리며 넣는다. 딱딱하지만 잘 부러지는 면발이 뜨거운 물을 만나 유연해진다. 휘어져도 부러지지 않게 된다. 어떤 모양의 그릇에도 담길 수 있게 된다.


소금 한 꼬집을 넣어 계란을 푼다. 계란의 노란색이 투명한 노란색이 된다. 달궈진 프라이팬에 계란물을 붓고 지단을 부친다. 노랗고 얇은 지단은 뜨거울 때 자르면 부서진다. 식혀서 잘라야 얇고 예쁘게 칼질이 된다.





엄마의 흉내를 낸 잔치국수에는 내 방식의 표고와 애호박이 채쳐서 들어있다. 한여름의 잔치를 하는 기분으로 찬물에 헹궈놓은 국수의 물기를 짜고 멸치육수로 토렴을 한다. 찬 면발에 뜨거운 국물이 스미고 뜨거운 국물이 담긴 그릇에 지단과 부추를 올려 마무리한다.


누군가를 사랑할 마음의 준비가 된다. 진한 국물의 맛이 뜨겁게 식도로 흘러들어 간다. 내가 모르게 받은 사랑이 위장에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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