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맛
티브이 리모컨을 누른다. -를 누르다가 +를 누른다. 화면이 일초에 한 번씩 바뀐다. 사람들의 얼굴이 셀 수 없이 스쳐간다. 낯익은 얼굴도 있고 처음 보는 얼굴도 있다.
얼굴 대신 장어의 매끈한 몸통이 클로즈업된다. 등뼈가 발라진 장어의 흰 속살이 하얀 배와 검은 등이. 쇼호스트들은 장어를 맛있게 구워 양념장을 찍어 먹는다. 불판 위에는 지글지글하게 장어의 살점이 익어가고 있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손이 많이 가고 오래 지켜봐야 하는 음식을 한다.
스티로폼 택배 박스에는 살얼음이 낀 장어 한 마리가 팩씩 손질되어 비닐에 담겨있다. 남해 근해를 헤엄쳤던 장어가 수협에서 배달되었다.
냉동실에 있던 시래기를 녹여서 겉껍질을 깐다. 흐물흐물한 속살과 분리된 겉껍질은 한 번에 속이 시원하게 쭉 벗겨진다. 비닐에서 꺼낸 장어의 지느러미를 가위로 자른다. 잔 가시가 가위 끝에서 서걱서걱 소리를 내며 잘려나간다. 등지느러미를 잘라낸 자리가 두둘두둘하다. 장어를 한입 크기로 자르고, 시래기도 한입 크기로 자른다.
스텐냄비에 마늘과 고춧가루를 넣고 참기름에 살짝 볶는다. 약한 불에 고추기름이 나올 때까지 볶고 물을 넣는다. 된장 두 숟가락을 채에 걸러 넣고 끓어오르자 장어와 시래기, 고추, 파, 생강을 넣는다. 이제 팔팔 끓어오르기를 기다린다. 거품이 일면서 탕이 끓어오른다. 거품이 터지면서 부글부글 소리를 낸다. 가스불을 반으로 줄이고 들깨가루를 넣는다. 7월 말의 열기로 달아오른 주방이 장어탕의 열기로 가득 찬다.
이제 장어의 잔뼈와 살점이 뭉개질 깨까지 불 앞을 지킬 일이 남아있다. 가스 불 앞에 서 있으니 얼굴로 열이 오른다. 이마에 맺힌 땀이 관자놀이로 흘러내린다.
불을 최대한 약하게 줄이고 잠시 선풍기 앞에 앉는다. 선풍기에서 미지근한 바람이 불어온다.
어지러운 머리가 바다속에 잠긴 듯 먹먹하다. 귀로 짠물이 들어오고 콧속이 따가워진다. 눈에서 바닷물과 눈물이 뒤섞여 쏟아진다. 눈앞에 시퍼런 바다가 펼쳐진다. 장어가 바닷속을 기다란 몸으로 자유롭게 유영한다.
냄비 속에서 장어의 토막 난 살점이 떠올랐다가 가라앉는다. 짜고 떫은 바다의 맛이 입안으로 들어올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