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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숙회

빚을 지는 맛

by 빨강




수조 안에서 오징어가 한 방향으로 빙빙 돌았다. 원통형의 수족관에는 오징어 수백 마리가 헤엄을 쳤다. 오징어의 몸은 투명했다. 검은빛의 내장과 오색빛의 내장이 수조의 불빛을 받아 빛났다. 간혹 수면 위로 떠올라 물살을 따라 힘없이 흔들리는 오징어는 철망에 들어 올려져 스테인리스 들솥으로 들어갔다. 동해 바닷가 앞에 펼쳐진 천막들은 밤이 늦도록 환했다. 우리는 그 빛 아래서 오징어숙회를 손으로 집어 먹었다. 아빠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때까지 테이블 주위를 맴돌며 술래잡기를 했다.

나뭇잎의 색이 짙게 짙게 짙어질 때, 잠자리가 하나둘 짝을 찾아 공중을 맴돌고, 불두화꽃이 이파리 사이에서 오종종모여 얼굴을 내미는 계절, 한여름의 태양이 저기서 이글이글했다.


스티로폼 박스에 생물 오징어가 가득 들어있다. 한 줄씩 머리를 반대로 누인 오징어는 아직 오색빛을 잃지 않았다. 서해산 4마리에 만원, 스티로폼박스에 매직으로 휘갈겨 쓴 손글씨가 그날의 정가를 말해주었다.


하얀 도마에 놓인 오징어의 둥근 몸통 안을 젊은 남자가 손으로 잡아 뜯었다. 내장이 등뼈와 함께 툭하고 끊겨 나왔다. 투박한 반달모양 칼이 오징어의 눈과 내장을 툭툭 끊어냈다.

죽은 오징어는 다시 한번 죽어 투명비닐봉지에 담기고 검은 봉지에 다시 한번 담겼다.


오징어는 손바닥보다 조금 컸다. 수전에서 쏟아지는 물로 오징어의 몸통 안을 씻고 잘린 다리 사이에 있는 도무지 흐물거리는 몸통에 있을 것 같지 않은 뾰족하고 딱딱한 입을 눌러 뺐다.



냄비 안의 물이 보글보글 끓어오르자 4마리의 오징어를 넣었다. 오징어의 은회색 껍질이 발갛게 변했다. 물이 발갛게 변했다. 끓는 물 안에서 오징어는 쪼그라들었다. 건져놓고 보니 손바닥 보다 작아져 있었다. 찬물에 열기를 식히고 도마 위에서 먹기 좋은 크기로 썰었다. 취기 어린 아빠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 여름은 살만했건 것 같기도 하고…

이번 여름은 해가 더할수록 더워져서 못 살겠다 해도 어떻게든 살고 있다. 뜨거운 물에서 쪼그라든 오징어를 먹고 다른 생물에게 생을 빚지며 어떻게든 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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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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