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살구잼

졸여지는 맛

by 빨강




눈을 뜨자 콧등에 땀이 맺히는 게 느껴졌다. 자는 동안 잠잠했던 더위가 정신이 든 순간 한 번에 몰려들어왔다. 선풍기 앞에 앉아 바람을 맞았다. 뜨거워지기 시작한 몸은 식지 않았다. 꽤 일찍 시작된 여름은 하루가 달랐다. 서향집은 아침부터 달아올라 외벽이 뜨끈뜨끈했다.

올해의 마지막 살구가 빨간 플라스틱 바구니에 담겨 있었다. 마지막 살구는 껍질에 붉은빛이 감돌았다. 초여름에 먹었던 살구의 맛이 떠올라 한 바구니를 집어 들었다. 검은 비닐봉지 속으로 와르르 살구가 담겼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집안의 열기가 먼저 나를 반겨주었다. 어쩔 수 없이 문을 닫고 집으로 들어왔다. 찬물을 틀자 미지근한 물이 흘러나왔다. 살구를 하나하나 씻어 채반에 올려놨다. 물기가 빠지길 기다리면서 얼음물을 마셨다. 손끝으로 눌러 가장 말랑말랑한 살구를 이로 깨물었다. 시고 맹맹한 맛이 느껴졌다. 유난히 빨간빛이 도는 살구를 깨물었다. 더 시고 아린 맛이 느껴졌다.


도마를 꺼내 살구를 반으로 갈랐다. 열다섯 개의 살구가 삼십 쪽이 되었다. 반으로 자른 살구를 반의 반으로 잘게 잘랐다. 설탕을 1:1로 넣고 버무렸다. 그리고 냄비에서 약한 불로 졸이기 시작했다. 처음에 끓지 않던 냄비 안에 설탕이 녹으면서 기포가 생겼다. 마침내 바글바글 설탕과 과즙이 엉겨 붙어 끓기 시작했다.



더 약한 불로 줄이고 나무 숟가락으로 저였다. 살구의 잘린 단면이 뭉겨지기 시작하더니 형체가 걸쭉하게 변했다. 계속 저었다. 점점 엉겨 붙기 시작했다. 농도를 확인하기 위해 한 숟갈을 찬물 속에 떨어뜨렸다. 바로 물속에서 퍼졌다. 수백 번을 휘저어야 잼은 완성된다. 노랗던 색깔이 붉은 갈색을 띠기 시작했을 때 레몬즙을 넣고 불을 껐다. 후후 불어 맛을 보았다. 살구의 향과 달고나의 맛이 동시에 났다. 너무 졸였나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아직 잼이 되지 않았을 때와 조금 더 졸여야 할 때의 미묘한 차이는 아차 하는 순간 지나간다. 잼을 만들어 본 사람들은 안다. 잘 졸여졌을 때와 눌기 직전의 차이를. 색깔이 변하는 찰나를.



달지 않은 과일을 한여름에 잼으로 만드는 사람은 온 마음을 다해 가지에 달린 열매의 마음을 안다. 그리하여 가스불 앞에서 쉬지 않고 숟가락을 젓는다.


달지 않은 과일을 버리지 못하고, 여름을 나기 위해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한 사람의 마음이 잼 안에 담겨있다.







keyword
화요일 연재
이전 04화들깨장어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