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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붕이 May 16. 2024

건강한 맛

운동을 한 후에 먹었으면 더 맛있을 텐데

 이번주 급식당번은 남학생들이라 부족한 일손을 보태는 주간이다. 4교시 갑자기 사회시간으로 열공(이라 부르고 수학시험지 확인으로 숙연해짐)하고 지역이름 만들기 게임을 하다 점심시간 종이 울려서 급식 준비를 서둘렀다.


 운동장 나가는 날이라 마음들이 급하고 급식당번들의 심기가 사납다. 국물 흘리기도 용납 안 되는 살벌하고 빠른 배식이었다.


 육개장에 조각콩밥, 오이김치, 토마토달걀볶음, 가지볶음, 김구이까지 하나같이 건강식으로 나왔다. 가지볶음에 정갈하게 쇠고기볶음까지 들어서 영양과 맛을 고려한 한상차림이었다.

문제는 초등학생 입맛에는 한계가 있었으니, 가지를 못 먹는 학생들이 있다는 거였다.


 "선생님, 반찬 배식 가지볶음 맡아주시면 안 돼요?"

 "왜 그러니?"

 "제가 어린이집에서 가지 먹다 토한 기억이 있어서    트라우마 때문에 가지를 못 봐요."

 '헉... 바름이 너마저...'

 평소에 품행 단정하고 바른말로 친구들을 잘 이끄는 흠잡을 데 없는 너마저 그렇게 말하다니.

 급식 배식의 난항이 예상되었다.

 "저는 쳐다보지 못하니까 선생님께서 가져가세요."

 "그래."


 배식에 손을 보태느라 토마토계란볶음과 가지볶음 두 가지를 맡았다. 생각보다 토마토계란볶음은 거부감 없이 잘 받아가고 가지볶음이 천대받는 상황이었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식감은 아무래도 바삭바삭하고 입안에 들어가면 살살 녹는 종류, 아니면 씹는 맛이 재미있어야 한다. 그 기준에 다 맞는 요리가 몇 개나 있나 싶다.

 

 먹는 속도가 느린 본인이라 운동장에 나가려는 강한 의지의 급식당번들에게 맞추느라 오늘의 반찬들을 다 섞어서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는데 오이김치가 너무 달아서 육개장의 칼칼함을 느끼지 못했다. 하나하나 정성껏 만들어 주신 음식들인데 비비려고 달콤한 국물을 많이 넣어서 그랬나 보다.

 조미김(구이김으로 나가서 그게 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에 비빔밥을 싸서 먹었다.

 

 학생들은 요즘 재미있어하는 애니메이션 대장금을 보느라 점심 먹으며 조용했지만 12시 35분경에는 벌써 나갔다 들어온 급식당번만 교실에 있었다. 다들 45분에 들어와서 늦게 애니메이션을 보다 수업시작종이 울려서 아쉬워했다.


 초등학교 급식시간에 대한 글을 쓰면서 학생들의 입맛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지만 우리 반 학생들의 음식 거부감 줄이기 목표 달성이 쉽지 않다. 저마다 음식을 못 먹게 된 계기라는 게 있어서 어떻게 하면 어려움을 덜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되고 남기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스승의 날이 지나고 보니 학생들은 365일 중 이틀을 부모님과 선생님들에게 양보한다. 사실 스승의 날도 학생들에게는 축제일이다.

 매일이 어린이날처럼 지내도 좋겠지만 인기 있는 급식메뉴판처럼 매일의 점심시간의 식사도 즐겁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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