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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붕이 May 23. 2024

야단과 잔소리 듣고 밥 먹기

이걸 꼭 오늘 고쳐야 했을까?

바쁜 수영교육 아침...

학생들 모두가 설레고 담임선생님을 기다리느라 목이 몇 cm 길어졌건만 내일부터 3주간의 병가예정인 담임선생님의 발걸음은 천근만근이다.

교실인 4층까지 올라가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반가움을 너무 솔직히 표현하는 우리 수학이가 뛰어왔다.

 "담임선생님, 왜 이리 늦게 오셨어요!"

걱정 반 기쁨반 담임을 반긴다.

이제 몇 주간 이렇게도 못 하게 해야지.

"수학아~ 너 사람 곤란하게 하는 게 재미있니?"

꼭 날 닮아 느긋하고 지적당하면 날을 세워 다른 친구랑 자주 싸우는 멋짐이 버전으로 말했다.

"아니요~."

바로 풀이 죽은 수학이는 조용히 들어가며 나와 눈을 맞추지 못한다.


아침 시작부터 삐끗되는 오늘...

수영하기 전 샤워시간 다른 반 학생을 도와주다 병가 전 진짜 허리가 삐끗하며 펴지 못해 부장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도와주던 학생을 인계하고 바로 관람실에서 안정용 침대로 가 수영시간 1시간을 누워있었다. 계속 누워있다간 정말 일어나지 못할 거 같아 선생님 두 분의 도움으로 내려와 10분 정도 서 있었다. 급히 놀란 허리근육에서 서서히 통증이 빠져서 무사히 학생들과 돌아왔다. 허리를 부여잡고서...


좌석표에서 선생님 자리가 가장 뒤쪽이라 문이 열리자마자 우리 반 학생들이 내렸다. 급식당번 한 명이 올라가며 5명의 학생이 인원점검 전 이탈을 했다. 이것도 고쳐야지! 안전교육 때 선생님 지시를 따르라 했건만! 이탈자를 교실에서 내려오게 해서 운동장 스탠드에서 모두가 모이도록  했다.

 "선생님~ 급식 다 준비해 놨어요!"

여학생 급식당번 중 한 명, 먼저 올라간 남학생 3명이 뛰어내려왔다.

 "너희들 버스에서 내리면 줄 서 있으라고 했잖아.

다른 반 다 선생님 앞에 줄 서 있었잖아. 누가 올라가라 그랬어! 버스기사님께서 우리 반 인원점검 안 끝나서 출발도 못하시잖아!"


 이게 다 평소 공부보다 점심급식을 우선한 나의 업보건만 내일부터 오실 대체 선생님을 생각하면 오늘의 무질서함은 바로 잡아야 한다고 불호령 했다.

 끝까지 내려오지 못한 한 명을 제외하고 그 친구만 불러 반성문 쓰기로 한 후 올라갔다.


 4층 뒷문에서 눈치 보던 남학생 한 명이 선생님 앞으로 불려 와서 야단을 맞는다. 눈치는 있지만 밥이 최우선인 친구여서 급식 앞에서는 날쌘돌이인 학생이었다. 도움반 학생 한 명이 버스를 타지 않고 택시로 이동이라 안심하고 그 친구 옆에서 급식판과 뒷문을 지키다 혼이 난 거다.

 내 마음의 씁쓸함을 먼저 삼키고 벌로 제일 늦게 급식받으라고 말한 후, 교실로 함께 들어갔다.


 급식당번은 배식대 앞에서, 학생들은 각자 자리에서 말이 없고 점심식사 전, 수영 후 배고픔보다 3년 동안 봐 온 선생님(1학년 때 옆반, 2학년 안전한 생활 교과, 3학년 담임)이 이렇게 화낸 모습은 처음이라 모두 말을 잃고 각자 알아서 반성문 종이를 가져가기 시작했다.


 이탈한 학생은 줄을 지킨 학생 다음에, 친구들의 부름을 듣고도 교실에서 급식 1등 배식을 노려 내려오지 않은 학생은 가장 마지막의 순서로 급식받기가 시작되었다.

 하필 오늘 늦은 급식 시작인 데다 까르보나라 떡볶이가 주식인데 양이 적었다. 치즈스틱을 먹지 않으면 배가 부르지 못할 점심식사인데... 달달이가 치즈스틱을 거부했다. 모양이 살짝 찌그러져 보이고 감각이 예민한 학생이라 선생님 야단에 헛배가 먼저 부른 거다.-나중에 선생님 급식판 까르보나라 떡볶이를 넘겨주고 치즈스틱을 받아서 먹는 것으로 타협해서 먹었다. (슬쩍 맛있어하고 눈치 보며 남김없이 먹는 모습이...)


 수영교육 후 급식이라 약간의 국물만 제외하고 잔반통에 잔반이 보이지 않았다. 급식 끝난 후에도 본인은 해당되지 않지만 스스로 반성문을 쓰겠다는 학생들이 많아 수요일 4교시 후 하교시간이 10분 정도 지체되었다.

 알림장을 네 줄 정도 쓰고 나머지는 출력해서 라벨지로 나눠주었다. 남, 여 한 명씩 버스에서 내려 가장 오래 친구들을 기다린 학생들이 대표로 라벨지에 출력한 알림장을 받아갔다.

 평소보다 10분이 늦어진 하교시간.

 미식가 달달이는 눈치 없이 옆반은 오늘 일찍 밥 먹고 갔다고 말해, 이미 아침에 한소리 먼저 들은 수학이한테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라고 제지를 당했다.

 "내일부터 대체선생님 오시면 급식도 일찍 받고 집에도 일찍 갈 거야."

 그 말에 의미 모를 멍한 표정을 짓던 달달이와 1층 현관에서 인사를 하고, 1층 현관에서 선생님들께 온 택배를 일일이 정리하고 계시던 교장선생님 말씀을 듣고 교실로 올라왔다.


 오늘 방과 후에 따로 지도를 받기로 한 학생들을 늦게 시작된 시간만큼 보충하고 보내느라 학생들이 칠판에 여놓은 새 규칙표를 늦게 견했다.


 어제 생활부에서 만든 규칙 때문에 학생들이 서로 반성문 쓰는 문제로 싸우는 것을 본 바름이가 자기가 참여해 만든 규칙을 친구들 앞에서 찢고

 "싸우지 마! 흑흑~"

 큰 소리로 울지도 못하고 양치컵을 가져가며 화장실에서 한바탕 울고 와서 주간생활계획표에서 규칙이란 글자까지 지워달라고 바름이가 쓴 시였다.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내용을 옮겨본다.


우리 반 평화롭고

기쁨을 지키기 위해 지켜야 하는

약속이 있어요.


서로가 웃고 사이좋게 지내려는

친구들이 스스로 알아서 지켜요.

그게 우리 반 규칙이에요.


약속을 지키는 사람들(수호자): 바름이, 방긋이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

"친구야, 싸우지 마!"


사진으로 찍어놓지 못해 이 정도로 옮겨본다.

바름아! 네가 선생님보다 훨씬 나은 인간이구나.

존경스럽다. 그걸 보니 수학이가 나를 아침에 핀잔주며 뛰어왔던 것이 이해되었다.


어제 서로 친한 수학이(바름이와 수학이는 새벽미사를 함께 다니는 친구)가 반성문 때문에 싸우는 걸 보고 울고, 둘이서 친구들과 함께 새로 만들어서 붙인 우리 반 약속이었구나!


바쁜 선생님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두 친구의 사과와 학급 전체 친구들에 대한 바름이의 사랑, 병가를 떠나는 선생님을 위로하는 따뜻한 마음이 글로 쓰여 있었다.


오늘 글을 쓰는 내 손가락이 울고 있다.


*잠깐 병원 진료받고 직장에 제출할 서류가 있어 들렀습니다. 강사선생님께서 정돈하신 책상과 꼭 필요한 것들을 챙겨놓으신 자료들을 보았습니다.

 좋은 강사선생님 만나 밝은 표정으로 반기는 학생들을 보니 감사했습니다.


바름이 학생이 쓴 새로운 규칙표를 옮겨봅니다.


규칙대신! 하고 싶은 친구들 이름 적어 주세요.


공부의 기초를 튼튼히 다지는

건축가: 수학이, 빠름이


친구들의 싸움을 물로 끄는

소방관: (아직 지원자 없음)


친구들의 마음을 위로

의사: 방긋이, 달달이


법을 잘 지키는

경찰관: 바름이, 방긋이


친구에게 한마디 얘들아  싸우지 마.


*제가 기억하는 시보다 더 전문적이고 단호하네요.

 눈에서 땀이 나는 바람에 제가 이해하는 내용만 기억했네요. 어린이의 생각은 어린이가 그대로 말이라는 그릇에 담아 표현해서 선생님의 긴 설명이 필요 없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큰 가르침을 받은 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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