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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붕이 May 30. 2024

1학년 그때 그 시절

지금 우리 반 학생들이 1학년이었을 때

대문 사진은 오늘의 급식이다.

요즘 급식메뉴표를 확인하면서 느끼는 감정이 학부모님께서 매일 아침 하이클래스로 영양선생님께서 자동으로 발송해 주시는 메뉴표를 보는 마음과 비슷할 거다. 내 자녀가 좋아하는 메뉴에 환호하며 등교하면 덩달아 기분 좋아지실 것이고 못 먹는 메뉴 몇 가지가 나오는 날은 집에 와서라도 뭐라도 챙겨 먹어야 할 텐데 걱정하실 것이다.


오늘 메뉴를 보니 생깻잎김치 못 먹는 학생, 노각무침이 무엇인지 몰라서 물어보는 학생, 조랭이떡을 자기는 조금 받았으니 더 달라는 학생 등등 우리 반의 정경이 눈앞에 떠오른다.


1학년 때 우리 반이었던 학생은 그다지 많지 않다. 여학생 2명, 남학생 2명 정도다. 해산물을 못 먹는 빠름이를 제외하고는 급식을 못 먹어서 힘들어하는 학생은 없고 예전에 가리는 게 많았던 통통이(눈이 커서 왕눈이라 부르고 싶지만 개구리 왕눈이가 생각나서 닉네임은 통통이로 하고 싶다.)는 3학년 되고서 식사량도 늘고 예전보다 편식하는 음식이 줄어들었다. 여학생은 달달이와 반짝이가 2년째 점심식사를 함께 하고 있다.


다른 반으로 흩어진 1학년 때 우리 반 학생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스승의 날이었을 때 똑똑하고 야무지게 자기 일을 하지만 속도가 느려서 기다림이 필요했던 수줍이가 편지를 주고 갔다. 1학년 때를 생각하니 자기가 잘못한 거 같다는데 생각나는 게 없었다. 급식 먹는 시간이 늦어서 돌봄 교실에 몇 번 데려다주고 챙겨나가는 속도가 좀 늦어서 가방을 챙겨 들어주거나 실내화를 실내화가방에 넣어주고 신발 신을 때 조금 도와준 정도?

그 정도는 잘못이라 할 수도 없는데 답장을 하려다 못했다. 스승의 날 편지에 한 명만 답장을 줄 수도 없어서다.


수줍이는 어린이집에서 배운 데로 급식을 남김없이 먹는데 속도만 느린 경우였다. 옆에서 보면 오물오물 야무지게 씹어서 먹는 모습이 귀여운 학생이었다. 그러다 내 눈에 보기에 먹는 속도가 많이 느려지는 음식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버려도 된다 그러면 한참을 고민하다 버리곤 했다.

스스로 음식을 만드는 것도 좋아해 학예회 때 파티시에 시연을 하고 친구들에게 카나페를 다 나눠줬던 친구였다. 신선한 재료로 만든 카나페는 어머니랑 미리 만들어서 친구들에게 나눠줬다.


우리 반에서 말하는 걸 좋아하던 똑똑이는 욕심이 많아서 급식을 많이 받아서 좋아하는 음식만 먹고 한참 이야기 삼매경에 빠졌었다.

제일 마지막에 급식 정리할 때쯤 일어나서 치우곤 했는데 가끔 나가 놀 수 있게 해 주면 정리속도가 빨라졌다. 잔반을 많이 버리곤 했고, 유치가 빠지기 시작해서 음식의 식감을 많이 가려서 못 먹는 음식도 있었다.

 "오늘 메뉴 중 ○○○가 좋은 사람?"

 똑똑이가 이렇게 물어보곤 해서 얄미워지면,

 "사람마다 좋아하는 게 다른데 그렇게 물어보지 마. 똑똑이 좋아하는 사람? 이렇게 물어보면 기분 좋겠니?"

 "저는 기분 안 나쁜데요. 헤헤헤~"

어린 초등 1학년 생인데 넉살은 고학년 수준이었다.

똑똑이만 이런 게 아니라 여기에 넉살이 조금 더 광범위한, 똑똑이 위에서 날아다니는 완벽이도 그런 종류의 질문을 한 적이 있어서 제지하곤 했다.

2년 연속 우리 반인 빠름이는 그런 말 대신 친구 이야기 듣다 "그래에에~"라는 유행어를 만들었다.


생각해 보니 1학년 교실이었고 코로나로 한참 긴장감이 넘칠 때였다. 이야기할 때는 마스크 쓰는 거라 그러니 한입 먹고 음식 씹으며 마스크 통해 이야기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나와 친구의 안전을 위해 급식 다 먹고 이야기하자."

매번 주의를 주고 가림판 바깥으로 몸을 내밀지 못하게 했는데 이야기를 이어나가던 친구들이 꼭 있었다. 그렇다고 식사시간에 한소리 할 수도 없고...  활발한 친구 2~3명 외에는 대부분 듣는 학생이거나 그 친구들의 물음에 대답해서 간간이 대화가 계속되는 정도였다.


코로나 시절이라 유난히 잔반이 많이 나왔지만 어쩔 수 없었고, 급식시간 가림판 안에서만 마스크를 벗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맨 얼굴은 이때만 서로 볼 수 있었다.


유독 급식을 먹기 힘들어하는 학생이 있어서 그해가 교직생활 중 급식지도가 가장 어려웠던 해였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이 잘 따라와 주었다.

급식 배식도우미 한분이 계셨고 그분께서 다른 반으로 이동하시면 학생들의 리필은 선생님이 해야 했다. 벌떡 일어나서 리필해 주는 게 습관이 되어 급식시간이 끝나면 소화가 다 되었는지 배가 부르지 않았다. 덕분에 뱃살이 빠지긴 했다.


처음 학교생활을 시작하는 학생들이 불편함 없도록 돕는 활동은 힘들지만 보람도 컸었고 하루하루, 매달마다, 여름방학이 지나면 한층 자라 있는 1학년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컸던 시간이었다.


지나간 후라 추억이지만, 그 해 급식지도가 유독 힘들었던 학생 지도하다 스스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었다. 그 해 후반기에 시간선택제 교사를 알아보다 학교 윗분들의 배려로 다음 해에는 교과담임을 맡았다.

교과담임을 하면서 급식의 맛도 느끼고 4Kg 정도 몸무게도 늘었다. 초등학교 1학년 급식지도의 노동강도가 생각보다 컸었나 보다.


지금 3학년 학생들은 어느 정도 스스로 급식 배식하고 먹고 치우고 자신의 속도를 조절할 줄 안다. 1학년 때 그 학생들이 이만큼 자랐구나 생각하니 아이들의 성장이 대견하고 놀랍다.

또, 세월이 스승이라는 말이 실감 난다.

우리 반 학생들이 대체선생님과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어려움 없이 행복한 시간 보내고 만나기를 오늘밤에도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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