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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슬붕이 Jun 27. 2024

닭다리를 보면 생각나는 남학생

이제는 중학생일 겁니다.

 어제 메뉴표와 영양선생님께서 올리신 급식사진을 보니 튼실하게 생긴 닭다리가 보였다. 허브오븐구이 닭다리라 이름 지어진 음식이었다.

 보통 닭다리는 하나, 윙구이의 경우 2개씩 배식되는데 예전 학교에서 닭사랑이 유별났던 남학생 생각이 났다.

 2학년을 맡은 첫날 알림장 쓰는 시간부터 눈에 띄는 학생이었다. 알림장을 쓰기 싫다는 거였다. 혼자서 앉아서 중얼중얼~ 초등 2학년이지만 남다른 포스에 심술궂은 할아버지의 눈매를 하고서 이야기하길래 가까이 다가갔다.

 첫날부터 신경전이란 말인가? 본인도 한 성깔 하는 사람인지라 알림장을 냅다 던지며(지금은 이러면 안 된다. 웃픈 현실로 아동학대로 새 학기 첫날 3월 2일 자로 고소당할 수 있다.)

  "너는 앞으로 알림장 쓰지 마!"

 이러니 주섬주섬 알림장을 주워 와서 알림장을 썼다.

 첫날이 이 정도니 다음 날부터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기싸움이 계속 있었다. 그해를 마치는 날까지 두꺼운 책 한 권을 쓸 만큼 일이 있긴 했다.

 그 전년도 1학년일 때 워낙 일이 많았던 친구들이 있어 2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선생님들 학년희망이 저조해 담임을 맡게 된 거였다. 학생들 하교 후면 항상 함께 모여 작전회의 겸 학년회의를 했다. 동학년은 참 든든했다.


 전년도 1학년 담임하셨던 부장님을 그다음 해에 같은 학년 부장님으로 만났는데 1학년 담임하실 때 교생실습반이라 공개수업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 놓으셨다. 수업 중에 부장님 학급 출신 학생들 몇 명이 책상 위에 배를 깔고서 누워있는 모습이 포착되어 있었다. 여러 반으로 나뉜 학생들이니 우리 반 학생도 한 명 있었다. 그 학생도 강했지만 지금 내가 소개하는 학생에게 기가 눌려 조용히 지냈다.

 쉽지 않은 학생들이 있었지만 다행인 것은 우리 반에는 도움반 학생이 있어서 몇 시간씩 사회복무요원이 교실에 들어와 있어서 그나마 지내기에 수월했다.


 점심시간 전 서론이 너무 길었는데 위에서 서술한 놀부에 버금가는 심술보를 장착한 그 친구는 닭사랑이 유별났다. 아기 때부터 몇 년간 지방에 있는 친가 할머니께서 양육하셨다고 한다. 그때 닭요리를 자주 해주셨단다. 이른바 아낌없는 사랑을 주시던 할머니의 음식, 손자 사랑이 지극하신 할머니를 느끼게 해 주는 소울푸드였다.


 닭러버 학생의 배식당번일에 원래 2개씩 배식해야 하는 닭봉을 하나씩만 나눠주려던 정황이 포착되어 2개씩 배식하라고 이야기를 했다. 아쉬워하며 딱 맞게 배식이 끝나자 급식실에서 추가로 가져와 자기 식판 위에 올려놓고 먹고 있었다. 이 정도도 큰 성과였다. 1학년 때는 친구들한테 1개씩 주고 식판 가득 닭봉구이를 쌓아놓고 30여 개를 먹었노라 자랑했으니까(거의 대부분 네가 좋아하니까 너 먹어 이렇게 양보해서 한 반 배식량의 거의 대부분을 먹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 이후로도 닭다리구이, 훈제 닭다리, 훈제오리, 백숙 등이 나온 날 닭러버 학생의 두 눈이 반짝였다. 자신에게 닭고기요리를 양보해 주는 학생에게는 진정으로 사랑스러운 눈빛을 보내며 친하게 어깨동무까지 했다. 늦게까지 안 먹거나 아껴먹던 친구 옆에 가서는 닭요리를 달라고 간청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 닭사랑에 감격(?)해서 자진 양보하는 모습이 보였다.


 초등학교 급식에서 대부분 인기 있는 요리가 닭이나 고기요리이다 보니 닭러버 학생과 함께 있던 해에는 닭요리 반찬부터 먼저 먹는 급식 습관을 보이는 학생들이 많았다. 닭러버 학생은 이른바 닭고기 사랑이 가득한 치킨교의 전도사이기도 했으니까. 모든 미술작품이나 그림에는 닭다리 형상이 포착되었고 ○○치킨, ××치킨 사장이 꿈이라 이야기하고 가끔 책상 위에 이름표 대신 올라가 있기도 했다. 벌써 6년 가까이 지난 일이니 치킨 브랜드는 생각나지 않지만 종류 가리지 않는 그 지극한 사랑이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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