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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을 좋아하세요?

브람스 말고 농담이요

by 문나인

농담, 실없이 놀리거나 장난으로 하는 말.


사람들과 대화가 깊어지면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바로 농담이다.

나는 주로 고민상담을 하는 입장에서 고민의 무게를 가늠하지 못하도록 농담을 던질 때가 있다. 농담의 무게가 머지않아 고민의 무게를 의미하게 되기 때문이다.


"요즘 고민이 많네."라고 서문을 열고 고민상담을 시작하면 대화 내내 롤러코스터를 탄 듯 감정의 폭이 이승과 저승을 드나들며 흥분하기 시작한다. 내용이 중후반부를 달릴 때쯤 아차, 싶어 상대의 표정을 살핀다. 내가 너무 한숨을 깊게 쉬진 않았나, 분위기가 너무 무거워지진 않았나. 하품이라도 나올세라 머릿속에 번뜩이는 장난기 넘치는 농담을 던진다. 그럼 상대는 픽, 하고 웃는다.


농담이란 그만큼 중대한 역할을 도맡고 있다. 이름만 들으면 시시덕거리고 가벼울 것 같은 이야깃거리가 화제 전환에 안성맞춤이고, 분위기를 푸는데 적격이다.


농담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일까? 풍자, 해학 같은 희화화의 면모를 보이기도 하지. 나를 우스꽝스럽게 표현하면서도 어딘가 짠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깊이 공감하는 게 있다면 농담은 위로를 전한다는 것이다. 선한 말투, 익살스러운 표정, 그런 것은 재수 없는 농담으로 이어지기보다 사랑스러운 농담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그런 것이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게 하는 위로가 되기도 한다. 웃음은 생명줄을 더 두껍고 길게 만드는데 농담이 이 세상에서 빛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농담은 때를 잘 노려 완벽한 핀포인트에 정확히 맞았을 때 그 위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다. 어중간한 위치에 놓이는 순간 진퇴양난을 겪을 수밖에 없다. 조금만 빗나가도 위험하다. 무언가를 바꿔낼 위력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 변화시키는 능력은 한쪽 면에서 바라보았을 때 그 장단점이 명확해 보일지 모르지만 모든 만물은 입체적이라서 한쪽 면에서만 바라볼 수 없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폴은 브람스를 좋아하냐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고 말한다. 굴곡지고 캄캄한 저 너머보다는 살아 숨 쉬는 생동감 넘치는 현실을 문득 느낀 것이다.


농담이 내겐 그렇다. 엉망진창에 안갯속으로 숨어버린 것 같이 오롯이 기억에만 의존하는 과거 또는 미래에서 일순간 소름에 바짝 선 솜털까지 느껴지는 당장의 현실로 돌아오는 기분. 그러면 멀어지던 가게 속 사람들의 대화 소리, 작게 들려오는 배경음악 소리들이 하나둘 귀에 들어온다. 그제야 나 지금 존재하는구나, 자각하게 만든다. 농담이란 생각보다 대단한 녀석이다. 그리고 위험한 친구이다. 그것이 농담을 더욱 매력적이게 만든다. 적재적소에 사용할 줄 아는 인간은 농담만큼 매력적으로 보이게 된다. 그렇게 그것은 무기가 되고, 매료된다.


누군가 내게 브람스 대신 농담을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기꺼이 그렇다 할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물을 것이다. 그러는 당신은 브람스를 좋아하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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