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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가지

나뭇가지에 걸린 솜사탕

by 문나인

해 질 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앙상한 나뭇가지를 보았다. 유심히 살펴본 끝에 그 모양이 제각각인 것이 꽤나 흥미로웠다. 끝이 뭉툭한 녀석과 뾰족한 그것을 이루는 선들이 삽시간에 나를 매료시킬 만큼 퍽 아름다웠다. 그때, 아주 시뻘건 태양이 그 뒤를 가로지르는 순간이 있었다. 정확히는 나뭇가지에 걸려버린 형상이었다. 그게 마치 그림 같아서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나뭇가지의 사소한 흐트러짐도, 무너져 내린 것처럼 보인 손끝도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그 표면까지 보이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동공이 운동하여 나뭇가지가 아닌 '나무'를 바라볼 때 주변이 스산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 가냘픈 나뭇가지들이 더 도드라지게 앙상해 보였다. 작은 것들이 하나로 뭉치면 큰 산에 비빌만한 떼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더 앙상궂게만 보였던 건지.


나무도 인간처럼 생명이 깃든 생명체이다. 그러니 나무에 인간을 비유해도 곧잘 어우러 들겠지. 실로 내가 본 나뭇가지는 인간 같다. 하나의 뿌리로 이어진 나뭇가지들은 그 모양이 각기 다르고 가까이 들여다볼수록 매력적이며 존재감 있다. 그것이 저 너머의 태양에 걸려 그림자가 도드라질 때 배경은 나뭇가지를 더 강렬히 드러낸다. 나뭇가지는 나무의 종류에 따라 피워내는 잎과 꽃 때로는 열매, 그들의 출발점과 도착점, 반복되는 생명의 피고 짐이 다르며, 어떠한 것이 자라나고 내려앉아도 자연의 신비인 양 아름답다.


인간 개인은 약하지만 개개인이 모인 단체는 강하다는 말이 있다. 세상에 틀리고 맞는 말이 어디 있겠냐만은 그저 조금은 다른 관점의 견해를 하나 들어보자면, 개인은 개인일 때 더 아름답다. 숲보다는 나무 한 그루가, 나무 한 그루보다는 나무를 구성하는 나뭇가지가. 가까이 볼수록 얼굴에 난 매력점처럼 그 묘한 매력에서 헤어 나올 수 없다.


특히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면 나는 이런 생각을 더 많이 한다. 버스를 타고 맨 뒷자리에 앉아 앞을 바라보면 버스 안의 모든 사람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들을 한 명씩 뜯어서 관찰한다. 어떤 모자를 썼나, 패딩을 입었나 코트를 입었나, 핸드폰을 보고 있는가 창밖 풍경을 구경 중인가. 일행과 대화하다 웃는가 하면 화를 내기도 한다. 때론 뒷모습밖에 보이지 않으나 그 뒤통수에서 기시감이 느껴지기도. 아는 사람인가 싶으면 에잉, 당연히 모르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가만히 앉아 있으면 뒤에서 보는 나는 그 사람이 가슴 앞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더라도 진실을 알 길이 없지만 그럼에도 오늘 저녁은 무얼 먹지? 집에 있는 가족은 뭐 하고 있으려나... 지긋지긋한 평일은 언제쯤이면 끝날까? 젠장, 아직도 월요일이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그러다가 그 사람이 핸드폰을 보고 문득 피식, 하고 웃으면 아아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연락이 왔나 보구나, 괜히 그 사람의 행복에 나까지 덩달아 행복해지기도 한다. 그 사람의 웃는 모습 그 자체가 내게 행복감을 물어온 것이다. 마치 우연히 실처럼 날아온 솜사탕을 맛보기라도 한 것처럼.


한 개인에게 존재하는 세상이 모두에게 같아 보이리란 법은 없지 않은가. 예를 들어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단순히 지구라고 가정하고 모두가 같은 세상을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차원적인 생각일 뿐이다. 인간의 일생을 영화로 만든다면 영화를 몇 편을 찍어도 부족할 것이다. 수 억 편 정도는 나와야 할텐데 그러면 세상은 적어도 수 억 개인 것이다. 그 영화를 아무리 낮게 평가하더라도 관객 한 명은 무조건 잡아둔 셈이다. 바로 나 자신 말이다.

이렇듯 세상에서 인간의 감정, 기분과 같은 아주 신비로운 비물질적이고도 무형식적인 것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개인에게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물론 하나로 뭉친 공동체의 아름다움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앙상궂게 보이던 나무 한 그루도 모자람 없이 그 자체로 예술이구나, 싶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하나의 나무는 다시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루고, 숲이 모여 넘볼 수 없는 대지를 이루게 되니 감히 어찌 대자연에 반역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뭇가지들이 뾰족하고 날카롭게 생겼어도, 감자같이 울퉁불퉁하게 생겼어도, 매끈하게 뻗어있어도, 웃자랐어도, 그것들은 그 나름대로 자세히 뜯어보았을 때 매력이 존재한다. 그것이 하나로 모였을 때의 조화로움을 알아차렸다면 각각의 매력둥이들도 하나하나 떼어 바라보고자 한다면 하나의 매력에, 하나의 행복에, 하나의 슬픔에, 하나의 기쁨에 공감하고 그 자체로 소중함을 인지할 수 있지 않을까. 소중하다는 감정을 온전히 느끼는 건 동심 속에서 달달한 솜사탕을 입안에 가득 넣고 녹이는 것과 맞먹는 행복감일 것이다.


이 세상 모두가 단 한 번만이라도 나뭇가지에 걸린 솜사탕을 맛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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