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한 통 안 터지는 자그마한 마을, 이곳 사람들은 어김없이 아침 댓바람부터 바닷가에 모여든다. 스타카토로 시작하는 경쾌한 멜로디를 따라 팔을 허공에 툴툴 털고, 목은 하늘 위로 빙글, 그리고 허리춤에 손을 얹은 채 짱구의 엉덩이춤처럼 씰룩댄다. 이름하여 '메르시 체조', 빙수를 기가 막히게 만드는 사쿠라 씨의 창작 체조다. 음 뭐랄까. 한마디로 이상하다.
세상엔 다양한 체조가 있을 거다. 이웃 나라엔 뭐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엔 국민 체조가 있으니 적어도 한 개 이상은 확실히 있다. 민박집 주인장은 그중에서도 사쿠라 씨의 오리지널인 메르시 체조를 고집하는 거고. 우리 모두 민박집 주인장과 별다를 것 없어 보인다. 형태와 방식이 다를 뿐, 누구나 자신만의 메르시 체조 하나쯤은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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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누구한테 인사를 하는 거야?" 집을 나서기 전 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는데, 이런 내 모습이 민이 눈엔 이상해 보였나 보다. 혼자 사는 집은 주로 고요하다. 실수로 뭔가를 떨어트린다거나, 가구 모서리에 발가락을 콱 찧었을 때 나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감탄사 말고는 온전한 말 한마디를 내뱉는다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다. 이 두 가지 경우의 수를 빗나가는 순간이 바로 외출하기 직전. 민이는 이 현장을 목격한 거다. 사람이 아닌 무언가에 이름 붙이기를 좋아한다. 단순히 '이거' 혹은 '저거'라고 부르기엔 아까운 것, 그러니까 왠지 모르게 애정이 가는 존재에게 이름을 붙여준다. 혼자 사는 공간에 이름이 있는 건 딱 둘 뿐이다. 나와 뽁실이. 뽁실이는 새해 기념으로 들여온 아스파라거스 뭐시기라는 식물인데, 이파리가 복슬복슬한 게 딱 뽁실이다. 뽁실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건 시들지 말고 잘 자라달라는 일종의 청탁 비슷한 거였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듯, 염원을 담아 이름을 불렀던 거다. 그렇게 해서 생긴 습관 하나가 바로 뽁실이에게 건네는 아침 인사다. 신발을 구겨 신기 전 고데기 전원은 껐는지, 냉장고 문은 잘 닫혔는지를 재차 확인하고, 마무리로 뽁실이에게 인사하면 외출 준비 끝이다. 내 인사를 듣고 있는진 모르겠지만,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지 않은 날엔 어딘가 찜찜하다.
* 영화를 보다 보면 뜬금없이 주인공을 따라 해보고 싶을 때가 있다. '안경'을 두 번째로 보던 날이 그런 날이었다. 민박집 주인장을 따라 팔을 털고, 목을 돌리고, 온몸을 씰룩씰룩. 바닷가가 아닌 달랑 무드등 하나로 의지한 방구석에서의 초라한 체조였지만 왠지 모르게 개운하다. 민박집 주인장이 메르시 체조를 고집한 이유를 조금은 알 거 같다. 남들이 보기엔 조금은 의아스럽고, 반드시 하지 않아도 될, 그렇다고 하지 않으면 마음 한편이 찜찜해지는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것. 다른 말로 하면 일상 루틴 정도가 적당하겠다. 나에게만큼은 최적화된 자연스러운 동작들로 아주 잘 짜인 일상의 체조이자 하나의 루틴이다. 오늘도 어제와 같은 나만의 일상을 보낸다. 집을 나서기 전 집안 곳곳을 점검하며 몸을 슬쩍 풀고, 뽁실이에게 건네는 아침 인사로 남은 찌뿌둥함은 완전히 갠다. 더할 나위 없는 일상에 개운한 하루를 보낸다. 그럼 다녀올게, 뽁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