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에 부엌에서 할 줄 아는 거라고는 고작 계란 프라이와 라면 정도였는데, 부모님이 외출하신 틈을 타 인생 처음으로 요리 다운 요리에 도전해 보며 어른의 기분을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엄마가 주말 아침마다 자주 만들어주셨던 볶음밥에 어떤 재료가 들어가고 어떻게 만드는지는 정확하게 몰랐지만, 저녁 준비를 하시던 엄마 옆에서 알짱거리며 흘깃 봤던 도마 위에 널브러진 당근과 파가 기억나더니 왠지 나도 엄마처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요리하시던 모습을 떠올려보며 냉장고에서 초록빛과 주황빛 재료를 하나 둘 꺼낸 다음, 엄마가 그랬듯이 도마 위에 올려놓고 서툴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손질했다.
식용유로 충분히 달궈진 프라이팬에 정직한 직사각형 모양으로 손질해놓은 파를 몇 번 휘적거리다가, 큼지막하게도 잘라 놓은 당근과 냉장고에 있던 찬 밥을 우르르 쏟아붓고서 3분도 안되는 짧은 시간 동안 이리저리 주걱으로 볶아댔다.
엄마가 만들어 주셨던 보슬보슬하고 소금 간이 되어 조금은 짭짤한 볶음밥과는 다르게, 나의 첫 볶음밥은 당근의 부피감이 생생하게 느껴질 정도로 아삭거리고 눅눅하면서도 밍밍한 그저 기름 범벅인 밥이었다.
물론 지금 당장 볶음밥을 만든다면 익기까지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는 당근을 먼저 볶아주다가 양파와 햄도 넣어주고 마지막으로는 내 입맛에 맞는 굴소스나 케첩을 넣어 마무리할 텐데, 그 당시에 내 정수리가 엄마의 어깨선보다도 훨씬 아래에 있었으니 엄마의 어깨너머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완벽하게 알기는 어려웠다.
직장 때문에 자취를 시작하게 되면서 끼니를 직접 챙겨 먹어야 할 날이 많아졌는데, 엄마는 어떻게 하다가 요리를 잘 하게 되었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할머니한테 요리를 배운 거냐고 물어보니, 돌아오는 엄마의 대답은 교과서로만 공부해서 수능을 만점 받았다는 얘기만큼이나 조금은 아리송했다.
그저 할머니 어깨너머로 본 게 전부라고. 그리고 너도 엄마 어깨너머로 본 게 많으니까 앞으로 더 잘 하게 될 거라고.
지금까지 엄마의 어깨너머를 봐왔다고 해서 뭔가를 월등하게 잘 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어떻게 해야 될지 갈피를 잡지 못할 때 지금껏 봐왔던 엄마의 모습이 힌트가 된다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자취방으로 이사 온 첫날 여기저기 이삿짐이 쌓여있어 어디부터 손을 댈지 고민하다가, 거실과 주방을 정리하시던 엄마의 모습이 작은 실마리가 되어 상자 속 물건을 하나둘 풀어 갈 수 있었다.
누군가의 어깨너머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정도면 해볼 만하겠다'라는 자신감이 생겨서인지, 서툴게나마 첫 발을 뗄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초등학생 때 엄마가 만든 볶음밥을 따라 만들려고 무작정 냉장고를 열었듯이, 그리고 그렇게 무작정 만든 볶음밥 덕분에 당근을 제일 먼저 볶아야 하고 무슨 소스를 넣어야 맛있는지를 알게 되며 나름의 노하우가 쌓이게 된다.
어쩌면 엄마의 레시피는 할머니의 어깨너머의 세상과 엄마의 특별한 무언가가 담겨 완성된 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엄마보다도 키가 훨씬 더 커버렸으니, 그동안 미처 보지 못한 엄마만의 세상을 조금 더 유심히 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