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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나날
08화
서로를 닮아가는 과정
사랑하는 사람의 습관이 몸에 배어간다
by
가담
Jun 7. 2023
자취 때문에
타지에서 생활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을 때
본가에 가보니,
어느 순간부터 냉장고 옆면에
화이트보드가 걸려있었다.
화이트보드에 적혀있는 내용은
매주 조금씩 달라졌지만,
대부분은 오랜만에 집에 오는
나를 반겨주시는
엄마의 소소한
환영 글이 적혀 있었다.
뉘앙스는 비슷하지만
조금씩 달라지는
엄마의 글 속에서
유일하게 바뀌지 않는 게
하나가 있는데,
문장 제일 마지막에는
웃고 있는 하트 캐릭터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매번 하트의 표정이
복사 후 붙여넣기를 한 듯이
약간 처지고 가느다란 실눈에
입꼬리가 올라가있는 걸 보면,
아무래도 그 그림체는
엄마만의 작은 습관이 아닐까 싶다.
가족들과 오랫동안
한 집에 살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된
가족들의 몇 가지 습관이 있다.
아빠는 가끔씩 밥을 먹다가
턱을 살짝 들었다 내리고,
엄마는 급하지 않는 날이면
현관문에 달려있는 종을
가볍게 툭 치면서 종소리를 내며,
말랑이는 콧방귀를 뀌면서
왼발 오른발 한 번씩
번갈아가며 들고서는
나를 빤히 쳐다볼 때가 있다.
아마 그다음에
이어지는 행동으로는
아빠는 입안에 있던 음식을
어느 정도 삼키고 나면
하려던 말을 할 것이고,
엄마는 기분 좋게
현관문을 나설 것이며,
말랑이는 간식을 주거나
삑삑이를 던져줄 때까지
왕왕 짖을 게 눈에 선하다.
일상 곳곳에 묻어있는
작은 습관들을 통해
가족들의 이어질 다음 행동을
예측해 보곤 하는데,
예측이 맞아떨어질 때면
누구보다 가까운 존재임을
인정받는 것 같아서
묘한 뿌듯함이 올라온다.
때로는 예측한 대로
미리 한발 앞서
대비하고 있으면,
그럴 줄 어떻게 알았냐고
놀라는 모습에
한 번 더 뿌듯해진다.
한 살 차이 나는 언니와
닮은 구석이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언니를 만나 본
몇몇 친구들은
분위기와 어투가
서로 닮았다고 얘기한다.
딱히 닮으려고
노력한 것도 아닌데
서로의 습관이
자연스레 묻어있는 걸 보면,
어쩌면 지금 나의
말투와 행동 속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여러 습관들이
조금씩 담겨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하는 사람의 습관이
조금씩 몸에 배어가며
서로를 닮아가게 되고,
나에게서 그 사람의
모습이 보일 때면
함께 보냈던 수많은 시간과
무의식적으로 느꼈던
애정의 크기가 실감이 난다.
화이트보드에 적힌
엄마의 환영 글에 대한
답글을 적을 때
문장의 마무리로
평소처럼 하트를 그리다가,
비어있는 하트 안에
괜히 눈과 입을 그려보며
엄마를 한 번 더
떠올려 보게 된다.
평소에도 그랬듯,
이번 주말에도
엄마의 습관이 묻어있는
하트 캐릭터가
잔뜩 그려져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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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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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unch Book
보통의 나날
06
뜬금없는 무언가
07
어깨너머의 세상
08
서로를 닮아가는 과정
09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건
10
함께 나이가 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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