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놀기 좋아하고 상상력이 풍부하던 어린이 시절에는, 신호등을 건너기 위한 나만의 특별한 규칙이 있었다.
엄마 손을 잡고 신호등을 기다리다가 초록불이 반짝거리면 회색빛 아스팔트 속 상어가 무인도 주변을 맴돌듯 횡단보도의 흰색 선 주위를 어슬렁거렸고, 맞은편으로 무사히 건너가기 위해서는 흰색 선만 밟고 지나가야 했다.
선과 선 사이의 간격을 돌다리 건너듯 뛰어넘다 보니 엄마의 손을 간혹 놓쳐 버릴 때가 있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신호등을 건너는 일만큼이나 평범한 일상 속에서 나도 모르게 만들어낸 암묵적인 규칙을 성실하게 지키고 있다.
샤워하고 나서 샤워헤드가 왼쪽을 향하게 걸어 둔다거나, 밥을 다 먹은 후에는 설거지를 바로바로 하고, 자기 전에는 아무리 못해도 책 한 장이라도 읽고 나서 침대와 한 뼘 정도 되는 거리에 책과 볼펜을 두고 잠에 든다.
몇 평 안되는 작은 자취방의 화장실부터 침실 곳곳에는 '나'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습관이 배어버려서, 이 모든 게 자연스러운 하나의 루틴이 되어버렸다.
가끔 친구들이 자취방에서 자고 가는 날이면 반듯하게 걸려있던 액자가 약간 기울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왼쪽을 향하고 있던 샤워헤드는 어느새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고, 저녁을 먹으며 못다 한 근황 이야기를 천천히 나누는 동안 점점 쌓여가는 설거짓거리에, 침대 옆에는 책 대신에 방을 가득 채우는 이부자리가 널브러져 있다.
친구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날에는 액자 모서리에 손가락을 얹어 틀어진 각도를 다시 맞추듯, 평소와 달라진 집안 풍경을 나만의 각도로 돌려놓느라 바쁘다.
일주일 중 5일은 나름 엄격한 규칙을 있는 나만의 공간에서 시간을 지내다 보니, 가끔 주말에 본가를 가면 고향에 온 듯한 편안함과 동시에 통제권에서 벗어난듯한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때마다 자취방에서 편하게 쉴걸 그랬나 싶다가도, 우당탕하는 가족의 모습에 결국은 웃고 만다.
요리를 하다가 실수로 설탕을 많이 넣어 "에헤이"라며 큰소리치는 아빠의 모습이라든지, 아침부터 쌍화차를 마시고 친구와 통화하며 깔깔 웃는 엄마와, 이번에 만난 몬스터는 잡기 어렵다며 게임에 열중하는 언니, 그리고 어디에선가 양말 한 짝을 훔쳐 오는데 성공한 말랑이의 모습까지, 혼자 사는 자취방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함에 자꾸 웃음이 난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건 규칙의 폭이 넓어져 샤워헤드가 왼쪽이 아닌 오른쪽을 향하고 있어도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게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신호등을 건널 때 밟는 폭을 흰색 선에서 회색빛 아스팔트까지 넓혔더니, 이제는 어릴 때와는 달리 누군가의 손을 중간에 놓치지 않고 맞은편까지 나란히 함께 걸을 수 있다는 게 참 좋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