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나이가 든다는 것
문진표를 뺏고 빼앗기는 관계
"목은 어때? 열은 안 나고?"
코로나에 걸렸을 때
약간의 두통과
코끝에서 띵한 느낌이
드는 것만 제외하면
크게 아픈 곳은 없어서
별생각 없이 푹 쉬었는데,
아빠는 타지에서
혼자 격리하는 나에게
매일매일 그리고
많게는 두 번씩이나
안부전화를 하느라
오히려 바쁘게 지내신 것 같다.
일주일 동안
빠짐없이 전화하셔서
국민비서 구삐보다
더 철저하게
건강 상태를 체크해 주셨다.
아직 목소리에서
코맹맹이 소리가 나니까
푹 쉬면서 밥도 잘 챙겨 먹으라며,
이미 아침에 해주신 얘기를
처음 이야기하듯이
저녁에 또 말씀하신다.
그저 쉬는 거에만 집중하느라
몸 상태가 어떤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아픈 곳은 없냐는 아빠의 질문에
적절한 대답을 찾으려다 보니
그제야 목이 아픈지
열은 안 나는지 생각해 보며
스스로에게 관심을 가져 본다.
출생연도가 홀수인지라
올해 건강검진을
무료로 받을 수 있어서
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다녀왔다.
한 중년부부가
먼저 접수 중이라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접수하기까지
꽤나 오래 걸리셔서
어쩌다 보니
두 분의 대화를 엿들어버렸다.
작년에 용종을 떼어냈으니
올해도 내시경 검사를
꼭 받아야 한다는
아내분의 주장과,
이미 한번 떼어냈으니
다시 받을 필요가 없다는
남편분의 소심한 반론이 이어진다.
결국 아내분이
남편분의 문진표를 뺏어다가
접수처에 앉아계신 선생님께 건네며,
저이는 내시경을 받는 걸로
처리해달라고 대신 얘기하신다.
뾰로통해진 남편분은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리며
불만을 표출하셨지만,
손을 잡고 나가시는 걸 보니
결국 아내분의 말을
따르기로 하셨나 보다.
아빠가 매일같이 전화해서
내 건강 상태를
확인해 주셨던 건,
건강에 소홀한 나를 대신해
멀리서나마 내 문진표를
뺏어 주신 것 같다.
반복적인 아빠의 충고가
때로는 잔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사소한 일상까지
참견해 주신 덕분에
밥을 거를까 하다가도
든든하게 챙겨 먹게 된다.
격리가 끝나고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고 하시는 걸 보니,
아빠가 기억하고 계신
평소에 기운 넘치던 내 모습을
다시 보고 싶으셨나 보다.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문진표를 뺏고 빼앗기며
서로의 건강한 모습과
밝게 웃는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주고
바라봐 주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기억하는
부모님의 30대 때 모습과
50대 후반인 지금의 모습은
변함없이 너무나도 빛나지만,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자잘하게 아픈 곳이
많아지신 것 같다.
세월이 흘러도 아픈 곳 없이
웃음이 가득한 부모님의 얼굴을
오래오래 보고 싶은 마음에,
더더욱 부모님의 건강에
참견하고 싶어진다.
부모님이 나에게 그랬듯,
이제는 내가 부모님의
문진표를 뺏을 차례인 것 같다.
무릎은 어떠신지
허리는 아프지 않으신지
자주 안부를 물어보며
부모님의 문진표를 대신 채워본다.
언니와 나에게 신경 쓰시느라
아픔에 무덤덤해진 부모님께,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조금은 귀찮게 해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