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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choice Jun 23. 2023

어떻게 그런 삶을 살게 되셨나요?

주체적으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

바다에서는 많은 삶의 이야기들이 파도처럼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온다. 그 크기나 종류와 색깔이 어찌나 다양한지 다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그런 이야기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레파토리를 따라 전해지곤 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서로 먼 바다와 서핑보드를 번갈아 쳐다보는 어색한 시간이 흐른다)


처음 뵙는 것 같은데, 원래 주로 여기서 타세요?


아니요, 원래는 00 근처에서 많이 타요.


아 그러시구나. 서핑은 얼마나 하신거예요?


저는 이제 한 3년 정도 됐어요. 원래 회사다니면서 주말 서퍼로 시작했다가요….


목수로 일하다가 서핑이 좋아 강원도로 이사를 왔다는 아저씨, 주말마다 바다를 찾는다는 회사원, 아들이 서핑을 너무 좋아해 함께 배우고 있다는 한 어머니의 이야기. 바다 위에서 파도를 기다리는 짧은 공백들은 그렇게 다양한 삶의 이야기들로 채워지곤 했다.


강원도에서의 넷째 날, 나는 스마일씨를 알게 되었다. 작은 체구에 명랑한 목소리를 가진 그녀의 서핑 경력은 무려 8년차. 연애 시절, 2년 먼저 서핑을 시작한 남편이 그냥 한 번 해보라고 해서 서핑을 시작하게 됐단다. 본인은 서핑의 ㅅ자도 모르는 것 같은데, 아무튼 하라는 대로 타다 보니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고 했다. 지금 그녀는 서핑샵 사장님이 된 남편을 따라 바다에 정착해 살고 있다.


바다에 정착해 사는 것. 나를 포함해 서핑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본 삶일 것이다. 한 달 만이라도 바닷가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것은 지난 1년 내내 나의 소망이기도 했다. 기회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닌 것 같은데, 어쨌든 결국 나는 그렇게 살지 못했다.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바다에서의 삶을 들려주는 스마일씨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쉽지 않으셨을 텐데 어떻게 그런 삶을 선택하시게 된 거예요? 그런 질문이 막 입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이었다. 남편에게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스마일씨의 표정을 보고 문득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두려웠던 것이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삶을 산다는 것이 말이다. 스마일씨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용기 아니었을까. 그냥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 무수한 삶의 갈래길 중 하나를 고르는 것조차 버겁게 된 건 언제부터였을까. 왠지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넓은 하늘이 노을로 물들어 갈 때쯤 나는 보드를 끌고 해변으로 나왔다. 곧 일몰 시간임에도 다시 바다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오늘 이 해변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입수와 퇴수 시간을 정했다. 어떤 선택이 더 많은 파도를 타게 할지는 알 수 없었다. 때를 잘못 맞춰 좋지 않은 파도에 물속으로 내리꽂힐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는 기도하듯 땅을 꾹꾹 밟으며 걸었다. 다시, 선택하는 연습이 필요한 때였다.


파도를 기다리는 서퍼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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