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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마음

아무런 예고 없이, 조용히 스며드는 감정들

by 진성

가끔은 그런 날이 있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 마음이 까맣게 그을려버린 날.

어디서부터 시작된 감정인지조차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그 어두운 감정이 천천히 내 안을 덮쳐

말 한마디 꺼내기 힘들 만큼 조용하고 무겁게 만들어버린다는 거다.


그럴 때마다 이상하게도

하늘에도 순식간에 먹구름이 몰려온다.

창밖으로 펼쳐진 잿빛 풍경,

그리고 예고 없이 쏟아지는 비.


나는 그 장면 속에 나를 겹쳐본다.

이건 정말 단순한 우연이겠지만

괜스레 그런 순간엔, 하늘이 내 마음을 알아채고

함께 울어주는 것만 같다.


빗소리는 늘 적막을 깨트린다.

천둥소리는 꽁꽁 숨겨두었던 감정을 끄집어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잠시 마음을 기대어, 조용히 흘려보낸다.


아무도 모르게.

누군가 위로하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

그저 이 갑작스러운 비가

내 슬픔을 덮어주는 것 같아서.

_____


나는 자주 그런 ‘우연’에 기대어 살아간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순간,

설명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온도,

그리고 비처럼 문득 다가와

내 마음을 닮은 것들.


세상은 참 계산적으로 돌아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우연에 위로받는다.

계획하지 않았던 장면들이

내 마음과 절묘하게 겹쳐질 때,

나는 그 순간이 작은 기적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런 날들 속에서

나는 나를 조금씩 이해해 간다.

무너지지 않아야 했던 이유들,

슬픔을 감추려 했던 날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던 마음.


하지만 우연처럼 다가온 비 덕분에

나는 조금은 안심하며,

마음속 슬픔을

흘려보낼 수 있게 된다.

_____


누구나 그런 우연이 한 번쯤은 찾아올 거라 믿는다.

그것이 비일 수도 있고, 음악일 수도 있고,

문득 떠오른 기억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우연은

그저 흘려보내기엔

너무 따뜻하고,

조금은 아픈,

우리 마음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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