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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윤오 Aug 03. 2024

프란시스 O

제 직업이요? 설명하기 힘들어요.

한창 하고 싶은 일에 목말라 있던 무렵, 노아 바움백 감독의 ‘프란시스 하’라는 영화를 접했다. 영화 ‘바비’의 감독으로 알려진 그레타 거윅 주연의 이 영화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 앞에 고뇌하는 뉴욕 청춘의 삶을 오롯이 담아낸 작품이다.


프란시스는 그녀의 직업을 묻는 질문에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제 직업이요?
설명하기 힘들어요.
진짜 하고 싶은 일이긴 한데
진짜로 하고 있진 않거든요.





수많은 직업의 환승역을 바쁘게 오가는 동안 현실과 타협하는 나 자신이 무척 싫었다. 꿈을 향해 몸을 내던져도 성공을 보장할 수 없는 시대였다. 당장 먹고사는 일이 급급하다 하여 매일 쳇바퀴에 올라 주어진 일을 기계처럼 반복하다 보면 짙은 우울과 패배감이 나를 짓눌렀다.


자투리 시간에 소설을 쓰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활동이 내게 돈을 벌어다 주지는 않았다. 이래서는 영영 취미로 남아버릴 내 꿈에 조바심이 났다.

나는 때때로 충동적인 부분이 있어 이대로는 죽도 밥도 안 된다는 생각에 과감히 여행 가방을 채웠다. 하루가 멀다 하고 친구와 술로 지새우던 날들에 안녕을 고하듯 휴대폰은 초기화시켜 서랍에 처박은 뒤 버스 터미널에 향했다.


그렇게 상해버린 건강을 핑계로 지방에서 지내던 언니의 자취방으로 훌쩍 떠나 반년 동안 두문불출하며 책과 영화에 빠져들었다. 그즈음, 오로지 나를 위해 쓴 퇴직금을 야금야금 갉아먹는 대신 등한시하던 꿈에 두루뭉술한 목표가 생기기 시작했다.


서른까지 내 이름을 건 소설을 출간할 것

스스로 작가라고 떳떳하게 말하게 될 것

글을 써서 먹고살 것

배워서 남 줄 것


목표가 생기니 아무리 계획 없이 살던 내게도 일의 순서라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아직 웹소설 시장이 대세로 자리매김하기 전이었고 인터넷 무료 연재를 통해 출판사의 눈에 들어 단행본으로 출간하거나 스스로 출판사에 투고해 마찬가지로 단행본 출간을 노리는 것이 보편적이었다.


6개월 동안의 도피 생활을 마무리하고 다시 서울로 올라온 나는 강한 다짐과 함께 오래도록 준비해 온 소재로 무료 연재를 시작했고 머지않아 고대하던 출간 제의를 받을 수 있었다.


작가가 된다.

그 사실만으로 벅차던 마음은 전에 일했던 회사의 인연으로 유수의 대기업 입사 제안을 받으며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한다.


사람은 어쩜 이리도 돈 앞에 간사할까?

내 평생 다신 없을 것 같은 그 달콤한 제안에 군침이 절로 넘어갔다. 내 명함을 받아 든 부모님의 기뻐하는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머리는 빠르게 계산기를 두드렸다.

그래, 원고는 이미 다 나와있어. 이걸 얼른 넘겨서 출간한 뒤에 작가 데뷔의 꿈은 이루고 퇴근 이후와 주말을 써서 꾸준히 작품 수를 늘려가면 되지. 이대로만 하면 몇 년 뒤에는 뭐라도 되어있을 거야.


할 수만 있다면 영화 ‘인터스텔라‘ 속 쿠퍼가 신호를 보내던 것처럼 당시의 나를 말리고 싶다.

꼭 공부 못하는 애들이 제 능력을 과신하는 경향이 있다. 선생님이 필기하라고 하면 ‘에이. 이 정도는 그냥 외우지.’하고 수업이 끝나는 순간 머릿속의 지우개로 말끔히 지워버리는 게 바로 나였다.


그렇게 나는 가장 큰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대단했던 다짐과 계획은 휴지쪼가리가 되었고 나는 돌돌 갈려가며 일한 대가로 암이라는 녀석을 달고 살게 되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던가.

짧은 단편 시장을 들락거리며 장기 연재를 준비하던 내게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글로 돈을 벌 기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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