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윤오 Jul 30. 2024

지독한 프리랜서 호소인

굶어 죽기 딱 좋은 직업이야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며 나를 가장 머리 싸매게 한 것은 복잡한 수학 문제도 아니요 외계어처럼 들리는 영어나 암호 같은 과학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 과목을 좋아했다거나 잘했다는 건 결코 아니지만…. 어쨌거나 학생이 응당 의무를 다 해야 할 교과목을 넘어 나를 괴롭혔던 것은 다름 아닌 ‘장래희망’이었다.


장래에 되고 싶은 직업을 적어내라는 그 네모난 칸에 나의 여러 꿈이 적히고 지워졌다. 대통령, 영어 선생님, 발명가, 탐험가 등등…. 심지어 영어나 과학은 좋아하지도 않는 과목이었는데 말이다. 어렸던 내 눈에 외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선생님이나 머릿속에 있는 상상을 현실로 구현해 내는 발명가가 그렇게 멋있어 보일 수가 없었다. 소신껏 발언하자면 아직 탐험가의 꿈을 접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까지 돌려 막기 하듯 그때마다 멋있어 보이는 직업을 적어 냈는데 어느 순간 ‘프리랜서’라는 단어가 내 귀에 들어왔다. 당시 프리랜서라는 단어가 흔하지 않아 유독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프리랜서가 뭘 하는 건지도 모르면서 혼자 톡톡 튀어 보이는 그 단어가 내 마음에 꼭 들었다.


아직 중학교에 올라가지도 않은 코흘리개가 장래희망에 떡하니 적어낸 ‘프리랜서’라는 단어가 선생님 눈에 어떻게 보였을지 지금도 쉽게 상상하기가 어렵다.


“프리랜서가 뭐 하는 사람인지 알아?”


선생님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냥 멋있어 보여서 되고 싶어요!”


대한민국의 수많은 선생님들께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한다.






중학교에 올라서야 프리랜서의 정확한 뜻에 대해 알게 됐다. 특정 집단에 종속되지 않은 채 개인의 능력으로 활동하는 사람 정도라 할 수 있겠다. 장점만큼이나 단점도 뚜렷한 독립적인 노동자인데 천둥벌거숭이나 다름없는 중학생에게 프리랜서의 사전적 정의나 단점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출퇴근에서 자유로운 프리랜서.

등하교에 불만이 가득하던 중딩에게 그만큼 매력적인 직업은 없었다. 다시 한번 프리랜서에 푹 빠져들었다. 그렇지만 프리랜서로 살기 위해서는 먹고 살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나에게는 어떠한 능력이 있을까? 나의 해답은 곧 소설이었다.


다른 친구들이 교과서 사이에 만화책이나 인터넷 소설을 끼워 읽으며 몰래 울고 웃을 때 나의 교과서 사이에는 항상 빈 공책이 있었다. 공책은 나의 상상을 현실로 끄집어내는 문이었고 엄마에게 혼이라도 나는 날이면 내가 구현한 상상 속 세상으로 도망쳐 한 줄, 한 줄 펜으로 이야기를 꾸려 나갔다. 공부 잘하는 애들의 상징과도 같던 중지의 굳은살이 내게도 생겼다. 하나의 공책을 빼곡하게 채우면 집으로 달려와 컴퓨터 메모장에 옮겨 적는 게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 온갖 인터넷 소설을 모조리 섭렵한 친구들이 나의 첫 번째 독자였고 편집자였다.


그때부터 나의 장래희망은 꾸준히 작가였다. 글 쓰면 굶어 죽는다는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하기 싫은 일로 돈을 버느니 적게 벌어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열정을 불태웠다. 입 밖으로 내면 언젠가 이루어진다는 말을 주워듣고 ”난 꼭 글을 써서 먹고살 거야.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았고 언니의 유학을 위해 큰돈을 지불해야 했던 부모님은 나 역시 일손을 보태야 하지 않겠느냐며 못마땅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셨다. 글 쓰는 일 따위는 회사에 다니면서도 할 수 있으니 취업만 한다면 지원도 방해도 않겠다는 부모님의 뜻에 따라 내 꿈에 잠시 안녕을 고할 수밖에 없었다. 면접에 합격해 출근일자를 받은 그날, 기쁨보다도 허전한 마음에 방에 틀어박혀 멍하니 앉아있었다. 지금에야 웃으며 얘기할 수 있지만, 창밖에 저물어가는 해가 마치 내 꿈처럼 느껴졌다.

내 나이는 고작 스물 하나였다.

이전 03화 진짜 하고 싶은 거, 그거 할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